피그말리온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했던 피그말리온<출처 구글검색>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재능넘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조각상으로 만들고, 안타깝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조각 작품과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조각 작품을 의인화하여 살아있는 여인 이상으로 간주하며, 이 여인과 평생을 같이 하기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천상에서 피그말리온의 예술적 재능을 굽이 내려보며 경탄을 금치 않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조각상을 사랑한 나머지 서서히 광기에 들어서는 피그말리온을 불쌍히 여기고 매일밤마다 기도하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 움직이자 천상의 아프로디테에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엇이든 간절히 원한다면 이루어진다는 이론입니다만, 이러한 다소 망상에 가까운 절실한 기원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주체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심리학의 용어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1968년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과 레노어 제이콥슨의 연구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들의 사회적 실험은 교사의 기대와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의 상관관계를 찾기 위해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학생들의 지능검사를 통해 잠재력과 성취도가 탁월한 학생들의 풀을 확인하고 이들의 명단을 담당 교사들에게만 공개하고 8개월이 지나 학생의 학습 성취도를 다시 검사하는 방식으로 통계적 상관관계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8개월이 지나 명단의 학생들에 대해 학습 성취도와 지능검사를 해 보니 학생들의 점수가 또다시 탁월하게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로젠탈과 제이콥슨이 담당 교사들에게 건낸 명단의 학생들은 학업성취도가 탁월한 학생이 아니라 컴퓨터가 무작위로 선발한 집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잠재성이 있다고 믿었던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행동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능이 평균 이상으로 높은 학생이니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여 정성들여 집중적으로 가르친 결과 평범한 학생이 탁월한 지능 혹은 성적 향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담당교사에게 어떠한 지시나 지침도 하달하지 않았지만, 교사들의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훌륭한 학생을 만들어 낸 셈입니다. 교육 현장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도 피그말리온 효과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떠한 행동 양식을 기대하고 이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도 우리의 기대에 거스르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기대를 하기 위한 행동양식이나 태도를 갖추기 위해 자신도 주체적으로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피그말리온 효과에 따르면, 친구가 약속 장소에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것으로 기대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기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만약 친구가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면, 만약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을 가진다면, 친구는 다음 약속에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자신이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친구도 다음 약속에 시간을 엄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친구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 스스로도 약속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죠. 이전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반복되는 게임에 있어서의 협조/배신의 선택’과도 비슷합니다. 최초의 게임에서 양자가 서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다음 게임에서는 서로 협조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배신하게 되는 메커니즘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반복 게임과 조금 다른 점은 상대에 대한 기대의 여부가 초기 신념을 강화하여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일 것입니다. 경제이론으로서의 게임이론이 게임참가자의 행동의 정당화를 따지는 반면 ‘피그말리온’은 우리의 기대와 신념이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행동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기대와 타인의 행동과의 상관관계를 논할 때 거론되지만 이 효과는 자신에 대한 기대와 행동에도 작용합니다. 기대치와 동기부여의 상관관계입니다. 삶의 기준을 비현실적으로 상향 설정한 개인들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을 비하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자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양식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만, 이 목표의 기준 설정이 객관적으로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거스를 때 개인은 좌절을 반복하게 되어 동기를 상실하게 됩니다.

터무니없이 높은 기대가 목표 달성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거죠. ‘피그말리온’은 감정적 반응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상대가 기대에 맞게 행동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는 특정 방식으로 반응할 권리를 가진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의 예로 돌아가,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친구에 대해, 자신이 약속시간을 지켰을 경우, 친구를 비난할 도덕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상대를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자신이 윤리적으로 우월하며 비난을 하여 상대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어야 시간 엄수에 대한 상대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요? 상대의 행동에 불만을 품는 이유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가 다른 양식으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바탕에는 자신이 그 양식을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무거운 마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문제의 요인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대에게 투영되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스스로 제한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방식 혹은 사고방식대로 상대가 행동할 때에 한해 자신의 기대가 충족된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는 불만과 좌절의 원인을 위장하고 있기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토템, 영화 인셉션 장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Inception’에는 작업 대상의 꿈속에 침투하여 특정 개념을 심는 스페셜리스트 집단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대상의 무의식 깊숙한 공간에 어떠한 ‘생각’을 심어 꿈에서 깨어난 대상이 이 생각에 기반하여 행동 양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작업을 위해 작전회의를 하는 요원들은 도대체 어떠한 개념을 어떻게 무의식에 집어넣을 것인가를 의논하는데, 한 요원이 ‘자신의 아버지를 혐오하도록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심자’고 주장하자, 집단의 리더는 부정적인 개념은 절대로 무의식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의구심을 표하죠. ‘긍정적인 사고만이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단 말이야.’

 자기 자신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향한 기대가 주관적인 신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기준과 기대치가 대상을 가치판단하고 통제하거나 특정 행동을 강요하는 시금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려는 욕구가 이러한 동기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죠. 기대를 거는 상대와 자신이 기대와 신념에 의해 위축되고 실망하여 결과적으로 분노를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면 이 기대는 현실감을 상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ming;NLP이라는 인공지능 연구분야에는 중립성neutra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자극과 상황과 경험은 철저히 중립적이라고 가정합니다. 자극과 상황과 경험을 인지하는 개인이 특정 반응을 보이기 전에는 무엇 하나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반응이 발생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성되고 최초의 반응을 통해 의미가 고착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선택하고 부정적인 관점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변환시키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관점을 생성해 냅니다. 이 중에서도 감정 반응은 무릎반사처럼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범주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기준을 설정하는가를 중요시하는데, 이 프로세스는 뇌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과정에 의해 강화됩니다. 즉 뇌가 가지는 무의식적인 신념을 행위를 통해 확증시켜주어 강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신념은 또다시 강화되는 사이클입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공지능의 학습이 수행되도록 프로그래밍을 하는 거죠.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 자신의 가치 체계와 신념에 따른 확증 편향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은 망양활성체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 불립니다만, 이 영역은 우리가 외부 자극을 인지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이를 학습하는 체계입니다. 이 영역이 확증편향을 만들어 내는 부위이죠. 그렇다면 이 부위를 어떻게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조정할 수 있을까요?

NLP에 따르면, 자동반사행동의 한계에서 벗어나 행동과 상황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야 합니다. 사실 말이 어렵지만 상황을 중립적으로 보고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반추하는 반성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감정적이거나 충동적인 행위가 발현되기 전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정지를 걸어 상황을 다시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자신의 자동반사행동, 다시 말해 처음 느낀 감정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타진해 봅니다. 이러한 습관이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고 부정적인 피그말리온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적 행동이 됩니다.

이수역 중앙도장에서 수련중인 필자

몇 년 전 아직 아이키도가 많이 미숙하지만 도장장님의 허락으로 초보자 클래스의 지도를 담당하게 되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신입회원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자세와 가장 쉬운 동작을 지도하는 클래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도를 따라가는 수련생의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어제 입문한 회원 앞에서 간단한 시범이나마 보여주어야 하는 지도원이라는 역할의 부담감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애로사항을 호소하는 저에게 도장장님은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머릿속에 뿌리깊이 깃들어 있던 확증편향과 부정적인 감정의 사이클과 자신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제 행동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시적인 조언을 받아들이자 긍정적인 감정의 순환과 현실적인 기대치와 목표의 설정이 따라올 수 있었고, ‘부담’보다는 ‘잘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자’는 생산적인 마인드컨트롤이 가능해졌습니다. 망양활성체계에 자신있는 기술을 내 수준과 대상의 수준에 맞추어 적당한 속도로 시전한다는 자기암시를 피드백하자 ‘잘할 수 있다’는 신념이 긍정적인 감정 순환으로 변환될 수 있었습니다.

피그말리온이 그러하였듯,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