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고베 도장 방문기

<섬세하게 서로에게 반응하는 움직임>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 선생님의 도장 ‘개풍관(凱風館)’은 고베 시내의 평범한 주거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고베 중심가인 산노미야 역에서 JR 전철로 10분 거리인 스미요시 역에서 도보로 3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1층에는 도장이 있고 2층에는 우치다 선생님의 살림집이 자리하고 있어서, 선생님의 일상이 아이키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통적인 다다미와 목재가 조화를 이루는 개풍관 도장 내부는 창밖에서 스미는 은은한 봄볕 덕분에 더욱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개풍관의 외관
개풍관의 외관

고베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우치다 선생님과 2번의 아침 수업을 함께 했고, 선생님의 제자분들이 진행하는 수업에 3번 참여했다. 수업은 한 번에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됐고, 수업이 끝나고도 여러 수련생들과 도장에 남아서 함께 그날 배운 기술을 복습했다. 일본어를 못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오히려 언어가 아닌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오롯이 집중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우치다 선생님께서 고베여자대학교 재직 시절에 아이키도 클럽을 이끌어 오신 인연 때문인지 절반이 넘는 수련생들이 여성이었다. 여중여고여대를 졸업한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환경이었기에 마음이 놓였다. 우치다 선생님의 철학에 반해 몇 시간 거리의 타 도시에서 아이키도를 수련하러 오는 분들도 많았다. 60대 할머니께서 너무나 가볍게 전방 수신을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나중에 수련생분께 여쭤보니 70대 할머니도 즐겁게 아이키도를 수련하고 계시다고 한다.

개풍관의 내부
개풍관의 내부

상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기

개풍관 수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대를 소중하게 다루는 손길이었다. 모든 수련생분들이 나를, 나의 몸을 정말로 소중하게 돌봐주셨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린 시절 잠들기 전 할머니가 토닥토닥 해주시는 손길 같았다.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상대방의 몸을 소중하게 돌본다는 것은 상대의 움직임에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내 움직임을 적절히 조절해 양자 간의 조화를 이뤄낸다는 뜻이다. 우케와 나게가 하나의 조화로운 움직임을 함께 완성하는 과정에서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저항이나 부딪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움직임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반복 연습을 통해 형()을 어느 정도 익혔다 싶으면 섬세하게 속도와 세기를 조절해 향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케는 나게의 기술에 수동적으로 당하는 공격자가 아니었다. 상대의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였다. 나게가 기술을 펼칠 때 그의 의도를 몸으로 느끼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영어 전치사로 표현하자면 ‘against’가 아니라 ‘with’, 개풍관에서 우케는 나게와 함께 형()을 완성하는 파트너이자 조력자였다.

똑같은 형을 수련하더라도 내가 상대의 움직임을 어떤 마음으로 다루는가에 따라 큰 질적 차이가 있었다. 같이 수련하는 상대 뿐만 아니라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투명하게 보여졌다.

개풍관의 현판
개풍관의 현판

“개풍관에서는 왜 부드럽게 수련합니까?”

나의 질문에 우치다 선생님은 이렇게 답해주셨다.

“아이키도 수련 목적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상황에는 이유(reason)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있어야 할 때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즉 상황의 이유를 따르는 것이죠. 상황의 이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긴장과 경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의 흐름, 아주 작은 변화를 느끼고 그것에 반응하려면 마음을 투명하게 유지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로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풍관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체 내부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요청합니다. 상대에게 기술을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고 평화로운 동작을 수행하라고 요구합니다. 갈등이나 불편함이 없는 움직임이지요.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오롯이 느낄 때 우리는 공격적이거나 경쟁적이거나 폭력적일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황의 이유를 따른다’는 우치다 선생님의 말씀은 희노애락의 발현이 주어진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 즉 <중용>의 화(和, harmony) 개념을 떠올리게 했다. 부드럽게 움직여야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다.

개풍관 내부의 우에시바 모리헤이 사진
개풍관 내부의 우에시바 모리헤이 사진

“Move big, gently.”

개풍관 스타일 아이키도의 또 다른 특징은 움직임의 동선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일대일 수련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더 넓게 공간을 쓰기 위해서 4개 정도로 조를 짜서 일 대 다 구조로 형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텝을 평소보다 크게 밟으니 작은 힘만으로도 보다 쉽게 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치다 선생님의 제자인 카미키 선생님께서는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수업이 끝난 후 “Move big, gently.”라는 세 마디 영어로 수업의 핵심을 요약해주셨다.

또 다른 인상적인 점은 교육법이었다. 수업 중 내가 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어느 새인가 두 분이 다가오셔서 어떻게 움직여야하는지 그 과정을 차근차근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주셨다. 나는 그들의 시범을 보는 동시에 우케와 같이 움직임을 연습해볼 수 있었고, 훨씬 더 쉽게 형을 채득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한 몸처럼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점이 놀라웠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외국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신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과 개풍관의 모든 수련생분들 덕분에 평생 기억에 남을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와 개풍관에서 배운 것들을 조금씩 적용해보고 있는데 같은 일교를 해도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내 기분 탓인가. 허허허. 오는 9월 말, 우치다 선생님께서 강연을 위해 여러 수련생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신다. 고베에서 함께 수련했던 선생님들을 다시 뵐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고베는 간사이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고, 오사카와 교토를 지하철로 오갈 수 있는 도시다. 다른 아이키도 도우분들도 일본을 방문하실 때 한번 들러보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싶다.

글: 김정윤 / 아이키도 신촌도장

우치다 선생님과 함께 손 하트♥
우치다 선생님과 함께 손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