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불능지구(2-2) – 조현일 에세이

출처: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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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지편향 혹은 앵커링효과anchoring effect라 불리는 심리성향 때문에 표본이 대표성이 떨어지더라도 처음 한두 가지 사례만 보고 심적 모형을 구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편향’을 지구온난화의 이해에 적용하면 오직 자신의 세계에 한정된 경험으로 ‘지구의 기후는 아직은 온화’하다고 안심하는 심리상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인간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상황을 목도하면 불안을 느껴 이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어 불확실성을 조우하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불확실성은 문제의 설정 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히 구체적인 자극에 해당하기에 일반적으로는 해결하려는 의욕을 꺾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킵니다. 얼핏 보기엔 기후변화와 위기는 (점차 확실시되고 구체적으로 변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거대하고 모호한 문제이기에 인간의 문제해결욕구를 불러일으킬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는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의 인류는 본성을 거슬러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상황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에 인간중심적 사고를 이유로 드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나 문제를 이해하려 할 때 인간은 자기스스로를 기준에 놓고 생각하려는 반사적 경향을 보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가지고 기후문제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심각한 아이러니가 발견됩니다. 기후문제는 지구 환경의 문제이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는거죠. 인류의 존망이 걸린 존재론적 위기에 대하여 ‘우리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단정하는 허망한 오해죠. 환경론자와 기후학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건 인간일 뿐 지구가 아니라는 지적을 합니다. 평균기온이 2도나 4도 정도 상승한다고 지구가 존재하지 못하는 건 아니죠. 오히려 이러한 미세한 변화에 우리가 적응하지 못하고 절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나리오는 인간중심주의에 기반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구상에 가지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라고 자부하는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석탄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은 경제학계의 주류이론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좌파의 지론에 불과한 이론도 아닙니다. 경제학자 케네스 포메란츠Kenneth Pomeranz는 저서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김규태, 이남희, 심은경 역/ 에코리브르/ 2016)에서 중국, 인도, 중동의 제국에 비해 변방에 불과했던 유럽이 19세기에 들어서자 독보적인 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유럽이 세계 경제의 주도를 잡는 ‘대분기’의 근간이 되었던 소재가 다름아닌 석탄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포메란츠의 주장이 좌파이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석탄만으로는 유럽의 대분기 이후의 부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만, ‘화석자본주의’의 기본틀이 기후문제와 연관될 때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니 논의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제환경주의자가 이 논의를 따라 던지는 질문은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자본주의는 이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웰즈는 기후위기의 원인제공자라고도 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양극단의 답이 도출될 것이라 말합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생태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치할 것이라는 예상과 시장은 절대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양분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사회주의’라는 ‘반동’적 용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어 이 용어를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사회학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저서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국내발간서 제목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김소희 역/ 모비딕북스/ 2021)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위기에 맞서 융통성 없이 둔하게 반응하는지 설명합니다. 어떤 형태의 위기와 재앙이 닥친다해도 자본주의체제는 맹목적으로 더 크고 많은 권력과 자본의 투여를 요구할 뿐입니다. 자본주의체제는 일단 재앙이 발생하면 충격요법으로 대중에게 최면을 걸고 이를 기회삼아 이익을 축적하고 자본의 지배를 고착화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자본주의체제에 치명적으로 기능할 것인데, 클라인은 몇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기후재앙에 대응하는 자본주의체제를 지배하는 금융엘리트의 충격요법이 어떠한 부정적 반향을 가져올 지 예상합니다.

출처:네이버 포토뉴스
출처:네이버 포토뉴스

기후재앙은 허리케인, 홍수, 폭염, 가뭄 등의 재난으로 세계경제를 농락하고 농업생산량을 반감시킬 것이며 노동생산성을 위협할 것입니다. 먼저 세계적인 경제침체로 영구적인 불경기가 국가경제를 유린할 것이고, 이어 특정 정치조직이 주도하여 기후재앙에 대응하는 프로토콜을 만들 것이기에 당연히 유산자계급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어, 가난한 계층이 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에 소득불평등 혹은 계급간 경제 격차가 심화되고 노골화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금융엘리트의 대응방식(포퓰리즘)으로는 일단 유산자계급은 피해를 덜 보거나 클라인이 예상하듯 오히려 이익을 축적할 텐데, 이에 따라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소득격차가 심각한 사회에서 이러한 압력은 금융엘리트 계급도 예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죠. 정당한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누구에게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상위 1%의 소득계층의 소비로 낙수효과가 사회전체를 살찌울 것이라는 꿈꾸는 듯한 정당화의 핑계는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경제학자들의 많은 연구결과가 침체 이후에 나타나는 불균등한 회복속도가 계층간 갈등을 심화해 왔으며,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소득이 또다시 금융엘리트계급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층간의 압력을 해소하려는 정치적인 접근방식이 다름아닌 ‘포퓰리즘’이죠. 2018년 일어난 세계적 대침체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격렬한 포퓰리즘이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방면에서 나타났으며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던 이들조차 회의론과 자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총체적인 체제 붕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이죠. 주지의 사실이지만 코로나19와 기후재앙의 압력으로 기축통화를 휘두르는 미국 이외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명백한 자본주의체제의 기능부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미국은 자신들의 달러를 무기화하여 위험을 타국에 위임하는 극히 위험한 경제정책을 구사하였기에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전략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출처:네이버 포토뉴스
경기침체 (출처:네이버 포토뉴스)

경제성장은커녕 마이너스 성장이 일반화되고 자연재해, 가뭄, 기근, 전쟁, 난민,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 화석연료를 태워 축적한 산업시대의 풍요의 회복력도 곧 한계에 봉착할 것입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3.7도 상승하면 그 피해액은 551조 달러에 달하고 2100년 즈음에는 세계의 평균소득은 23%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전 세대의 대공황에 필적하고 2018년 대침체의 10배에 달하는 충격이 닥쳐올 것입니다. 포퓰리즘 정치로 겨우 연명하던 금융엘리트는 이 충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좋으나 싫으나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체제에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포퓰리즘이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 정치와 경제의 틀이 무너지는 총체적 재앙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기후재앙에 대한 오늘날의 대중의 일반적인 태도는 ‘기후무관심climate apathy’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기후는 원래 변화무쌍하며 화석연료를 더 태우건 아니건 상관없이 온난화는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납득해 버리거나 현실적으로 기후재앙을 막을 예산이 부족하다는 방어적 논리를 펼치거나, 무절제하게 지구의 자원을 낭비한 인류에게 마땅한 결과라며 왜곡된 안락함을 공감하거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무감각한 의식상태를 취하려는 태도가 ‘기후무관심’입니다.

기후재앙으로 무너지는 지구생태계와 인류를 바라보며 절망하며 집단붕괴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기후재앙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가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후재앙 저지의 골든타임을 이미 놓친 인류에게 유일한 선택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뉴욕에서 열린 ‘기후주간’ 회의에서 ‘차선책으로 선택할 행성이 없으니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주의 탄생과 역사를 이해하고 수백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를 망원경으로 들여다보고 양자세계의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잘난’ 인류이지만 아직 이 조그만 행성의 기후 피드백체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온난화의 역동적인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못난’ 인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살짝 뒤집어 보면 기후재앙의 체계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인간 통제를 벗어난 ‘초과물’이 아니라 인간 행동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가 보다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일종의 ‘처벌’로 간주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이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합의하고 집단자살을 향해 전진한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더라도 극단적인 언어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삼가해 봅시다. 극단적인 상황이니 이를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전환해 봅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듯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출처:오펜하이머 영화한장면
출처:오펜하이머 영화한장면

기후재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양가적이어서 지구의 기후라는 초과물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코페르니쿠스 이후 다시금 슬픈 진실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만, 또다른 교훈은 거대한 기후시스템이 불과 지난 30년간의 인간활동으로 불안정에 빠질 만큼 연약한 체계이며 이를 초래한 인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시사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지구의 지질역사가 ‘인류세’라 불리듯 인류는 지구를 초토화시킨 주체이기도 하지만 더이상의 손상을 멈추고 (이전의 피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고통을 분담하며 책임을 나눌 수 있는 혹은 나누어야만 하는 윤리적 주체이기도 합니다.

기후재앙에 대해 숙명론적으로 체념해버리는 간단한 선택지로 절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자기도취적으로 세계의 중심이라 오만한 태도를 유지해 온 만큼 오히려 개개인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이라 자부하고 재앙의 확산을 능동적으로 막는 ‘이기적’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주인공은 원폭실험의 성공을 확인하고는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되뇌입니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이니라.’ 인류는 세상의 파괴자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파괴를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듯이 인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탄소의 소비를 줄이는 친환경적 삶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는 지속적 태도에는 ‘적응하는 마음adaptive mind’이 요구됩니다. 압력이 큰 환경 변화에 민첩하고 창의적인 결단력과 회복력으로 대응하는 성향과 기량을 ‘적응’이라고 부르죠. 적응이 이루어지면 생활습관과 의식이 변할 것이며, 이에 따라 행동도 적응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인류의 유일한 선택지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지구를 선택하고 친화적이고 적응적인 태도로 필연적일 지도 모를 재앙을 늦추는 의식의 전환입니다.

 

<거주불능지구(2-1)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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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