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지도하는 법-제주지부 김시연

3단 심사때 단도취하기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김시연

얼마 전, 하카마 수명이 다하였다. 무릎 부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초단을 따고 도장 선배에게 물려받은 검도하카마를 입고 수련을 해오다 2015년즈음 아이키도 전용으로 구매를 했으니 나와 9년을 함께 훈련한 녀석이다.

오래되어 낡았거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잘도 버리면서, 유독 도복만큼은 낡았다고, 한동안 입지 않았다고 버리질 못했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과 땀, 추억이 묻어있는 녀석들이기에…

이번에 구멍 난 하카마 역시 버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덧대어 수선하고는 다시 심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단 심사까지는 우리 함께 하자꾸나.)

 

햇수로 13년.

내가 무엇을 이렇게나 꾸준히 오래 해왔던 적이 있을까.

아이키도의 어떤 매력이 날 이렇게나 오래도록 이 무도를 하게 할 수 있었을까.

아이키도를 하면서 나의 가치관과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마지막 (기술)심사인 4단 심사를 앞두고 많은 생각이 스친다.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제 아이키도가 (편안한)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3단을 허락받을 때까지만 해도 난 ‘도장은 매일 가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었다. (직장, 육아 등으로) 도장을 못 가는 날이면 화가 치밀었고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날 흔들었다.

도장에 가는 날은 또 어떤가. 운동량이 성에 차지 않는 날, 기술이 제대로 안 되는 날은 또 그날대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

오늘 도장에 못 가면 내일 가면 되는 것이고, 기술이 잘되지 않으면 아직 내 실력이 이 정도구나 하면 되는 것임을,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위태위태하던 그 시기를 지내고 보니 이제는 도장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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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 논문의 주제는 ‘초심자를 지도하는 법’이다.

사실 아직 내 도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고, 지도라고는 도장장 부재 시 클래스를 몇 번 이끌어 본 경험이 있을 뿐이기에 초심자 지도에 대한 글을 쓰는 데에 적잖은 부담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매번 글을 쓰려고 한글창은 띄웠지만 글이 써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기필코 마무리하리라.)

매번 주는 것만 받아먹다 내가 주어야 했을 때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커리큘럼을 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끄적였던 메모를 가끔 꺼내 보곤 하는데 참 열정이 가득했구나 싶어 웃음이 절로 나곤 한다.

① (아주) 약간의 지도 경험 ② 강습회, 수련캠프 등 국내외 행사를 참가하면서 보고 느낀 점 ③ 평소 내 도장이 생기면 회원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문득문득 떠오르던 생각들을 토대로 초심자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1. 아이키도의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공유하자.

 

기업 경영을 이야기할 때 같이 언급되는 것이 미션, 비전, 핵심가치이다. 이들은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업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게 우선시 되다 보니 대부분 이를 간과한 채 사업에만 몰두하곤 한다.

※참고 . 미션 – 자신이 이것을 왜 하는지, 궁극적인 목적

비전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 계획(어떤 모습을 지향하는지)

핵심가치 – 이것들을 이루기 위해 내가 지켜야 할 기준점

하지만 미션, 비전, 핵심가치는 기업 경영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구성원들의 생각이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비전과 미션, 핵심가치의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자 이제, 기업을 도장으로 바꿔 생각해보자.

 

4단 심사에 응시할 정도로 오랜 기간 수련을 해 왔다면,

자신의 도장을 운영할 정도로 아이키도에 대해 확신과 책임감이 있다면, 각자 나름대로 아이키도에 대한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정립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선생님과 선후배들과 같이 운동하고 소통하며 정립되었을 그 가치관을 초심자와도 공유하고 나누자.

굳이 별도의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다. 수련 중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이따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도장을 찾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디서 봤는데 멋있어 보여서 등등.

그렇게 야심차게 운동을 시작하지만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운동을 하는 게 힘들어질 때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면 계속 운동을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대부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나는 그 해답을 기술이 아닌 선생님과 선배들과 간간히 나누던 대화에서 찾곤 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이키도를 대하는지, 현재를 어떻게 보내고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는지 그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다시 일어설 있는 힘을 얻곤 한다. 단지 기술만으로 맺어진 관계였다면 오롯이 나 혼자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같은 구성원끼리

생각이 서로 같다면(비슷하다면)

생각을 서로 이해한다면

생각을 서로 공감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며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초심자를 위한 커리큘럼을 개발하자.

 

① 처음엔 누구나 다 어렵다. 대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하자.

 

처음 접하는 아이키도 기술이 생소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운동을 해보지 않은 이상 초심자 대부분은 입신, 전환, 회전은 고사하고 왼발, 오른발도 헷갈리곤 한다. 첫 수련 소감을 물으면 “재미는 있는데 어렵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이 “어렵네요.”로 바뀌지 않도록 재미있어 할 만한 요소를 찾아 접목시켜보자.

 

나에게 우케미 지도시간이 주어진 적이 있다.

우케는 기술이 걸렸을 때 상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그 동작을 유지하려고 해야 한다. 제압이 풀리는 순간 바로 다음 공격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중심을 스스로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커리큘럼을 구상하면서 참석자들이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장을 활용한 림보 동작을 추가한 적이 있다.

혼자 힘으로 몸을 뒤로 젖힐 수 있는 자신의 가동범위를 먼저 확인한 후 상대와 같이 (측면)입신던지기, 사방던지기 등을 수련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진행된 수련 중 가장 많은 웃음소리가 들렸던 시간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걸 보니 나에게도 꽤나 재미있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아이키 댄스 역시 좋은 방법이다. 우리 도장에서는 초심자가 들어오고 입신, 전환, 회전을 구분할 정도가 되면 아이키 댄스를 추곤 하는데, 그렇게 헷갈려 하던 초심자도 아이키 댄스를 추면 입신, 전환, 회전을 곧잘 한다. 기술을 한다기보단 춤을 추는 듯한 느낌에 기술에 대한 부담 없이 즐기며 할 수 있는 것이다.

 

② 나게의 기술과 우케의 기술 수련 비중을 동일하게 두자.

 

경우 1. 작고 연약한 나(?)는 간혹 크고 힘이 센 초심자들의 실험대상이 되곤 한다. 크고 힘이 센 초심자가 다른 운동(무술류)을 해봤다면 오히려 쉽다. 공격을 제대로 해오기 때문에 그 공격을 이용해 기술을 걸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크고 힘만 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연약한 나의 손목이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될 때까지 꽉 잡고 있을 뿐이다.

 

경우 2. 아예 힘이 없는 초심자이다(대부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공격 동작만 따라 할 뿐 공격에 제대로 된 힘을 싣지 못한다.

 

두 경우 다 아이키도 기술을 펼치기에는 까다로운 상대이다. 아이키도는 공격하는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안전하게 제압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공격 의사가 없는 상대에게는 기술이 걸리지 않는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 아이키도의 원리를 설명해준 후 제대로 공격할 수 있도록 알려주며 수련을 이어가지만, 막 유단자가 되었을 때에는 상대에게 기술이 걸리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적이 꽤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무리하게 기술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제 초심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아이키도라는 운동이 궁금해서 도장을 찾았다. 몸소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입회를 하고 도복도 입었다. 비슷한 운동(무술류)을 해 봤거나 운동 신경이 좋은 경우는 첫날 이미 아이키도에 매료된다. 내 힘이 무용지물임을, 역으로 이용당하고 있음을 바로 깨닫는다.

문제는 위 두 경우처럼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아 기술을 느끼지 못한 경우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앞에서 하는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뿐이다.

후자의 경우 시일이 더 지나 흥미를 잃기 전에 아이키도의 기술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초심자에게 나게의 기술보다도 우케의 기술을 먼저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케의 주된 역할은 ‘공격자’이다. 제대로 된 공격이야말로 아이키도의 필요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나게의 기술에 치중된 수련을 많이 해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본부 우메츠 쇼 지도원의 강습회에 참가하여 느낀 바가 크다. 하나의 기술에 대해 나게와 우케의 기술 표현을 동시에 설명해준다. 서로의 역할에서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수련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지도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처음 우메츠 쇼 강습회에 참가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지도 방식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합이 맞지 않는 건 나게의 부족함일 수도 있지만 우케의 부족함일 수도 있음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라도 우케의 기술수련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케미 강습회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③ 월 1~2회 OO특집 이벤트를 열자.

 

초심자들이 어려워하는 기술이나 도움이 될만한 기술을 하나 정하고 그 기술만 집중적으로 수련하는 OO특집 이벤트를 해보자. 수신의 날, 손목뒤집기 파헤치기 등

수련이 끝난 후에는 서로 둘러앉아 수련할 때 어떤 고충이 있는지 다음 이벤트에는 어떤 기술에 대한 특집을 해주었으면 하는 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누구나 자신이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받게 되면 자연히 그 행동을 계속해서 하고 싶기 마련이다.

나의 기준에서 판단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다면 기꺼이 칭찬의 말을 건네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정, 즉 점점 나아지고 있는 상태를 계속해서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계속해서 잘해 나가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잘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잘 안 되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 안되는 것이 있다면 긍정적인 면을 먼저 강조한 후에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자.

 

4. 상대방이 원할 때 알려주어도 늦지 않다.

 

초심자, 특히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초심자를 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질문이 없다는 건,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확률이 높다. 초심자가 먼저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알려주어도 충분하다.

도장에 가르치는 사람은 도장장(또는 일시적으로 지도 권한은 위임받은 자) 한 명으로 족하다. 너도 나도 나서서 가르치려 한다면 초심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같은 선생에게 배운 같은 기술이어도 펼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기술 표현이 다를 수 있음을 그들은 아직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5. 힘들지만 계속하는 것. 우리는 지금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련 기간을 돌아보면 기술의 향상은 우상향보다는 J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매번 있다면 좋을 텐데 노력해도 더 힘들어지는 구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해보지만 실력은 매번 제자리인 것 같고 몸과 함께 마음도 덩달아 축 처지는 그런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도장에 나가 수련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몸놀림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아마 이때가 기술적인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이리라. 그냥 조금만 참고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 마의 구간을 넘기지 못하고 운동을 포기한다. 단위가 올라갈수록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기 때문에 스스로 극복할 힘이 생기지만 초심자일수록 이에 대한 내성이 없기 때문에 특히나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초심자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아이키도를 수련함에 있어 힘든 점이 무엇인지 수시로 체크하고,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해결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꼽으라 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계속하기’를 꼽겠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데도 계속하는 것. 우리는 지금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계속하면 할 수 있게 되고, 결국에는 잘하는 날이 올 것임을 믿는다.

 

2023년 8월 어느날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