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의 양적완화와 탐욕의 연쇄(2-2)-조현일 에세이

2012년 초 미국의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하고 있었고 하위 50%는 6.5%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불균형이죠. 하지만 헤지펀드 운영자가 ZIRP가 소득 불평등을 강화하고 투기적인 부채 버블을 일으킨다고 불평할 리가 없습니다. 이들이 상대하는 자산가들에게 오히려 하이리스크 투자로 일확천금을 벌어야 할 기회라고 광고할 것이고 결국 양적완화로 고위험투자가 수익을 내면 자산가들 뿐만아니라 중산층도 대출을 등에 업고 자산버블에 뛰어들 겁니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양적완화로 6000억 달러가 금융시스템에 주입되었습니다. 미국의 본원통화, 즉 연준이 발행한 화폐는 동일한 시기에 총 7200억 달러가 증가했으며 2011년 여름에는 초과지급준비금이 무려 1조 6천억 달러로 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96,000% 증가합니다.

실리콘벨리은행 (출처:연합뉴스)

모든 방향성이 금융위기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수 년동안 급격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모두들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죠. 급기야 2023년 올해 3월 초 예상했던 은행파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던 은행으로서 코로나19 직후 미국에서 시행된 경기부양정책으로부터 수혜를 받은 기업들이 고객이었죠. 코로나19 기간동안 비대면이 일상이 되자 비대면기술을 연구하는 벤처기업들로 투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이들은 실리콘밸리은행에 예금을 합니다.

은행은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여 수익을 내야 하는데, 호황이라 모두들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 대출이 필요한 고객이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대출이 아닌 다른 투자상품 사냥에 나서게 되고, 유일한 선택지는 장기국채였습니다. 단기대출로 장기투자를 통해 수익을 만드는 은행은 예금만기에 고객들에게 이자를 지급해줘야 하는데, 예금을 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장기국채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죠. 단기국채는 장기국채에 비해 금리가 낮아 마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은행의 유일한 선택지는 안정적인 금리를 보장하는 장기국채였습니다.

결국 실리콘밸리은행은 1년짜리 예금을 받아서 10년만기 장기국채를 사는 장단기 미스매칭을 합니다. 만기가 서로 다른 채권을 교환할 작정으로 매입하지만 금리가 어긋나는 상황을 미스매칭이라고 부르죠.
2022년 이후 고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연준의 갑작스런 금리인상이 시작되었고 유동성이 줄면서 기업들도 돈이 모자라 예금을 회수하려 하였습니다. 장기국채는 중도해지가 불가능하니 이를 현금화해야 했는데,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채의 금리가 크게 올라버렸습니다.

그림출처:연합뉴스 김영은,원형민 기자

금리가 오르게 되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국채의 가격은 하락하고 실리콘밸리은행은 손해를 보고도 보유 국채를 매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기국채의 매각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자신들이 예금한 은행이 디폴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예금자들은 인출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죠. 뱅크런입니다. 이리하여 실리콘밸리뱅크는 불과 며칠만에 파산하고 맙니다.

2008년 9월 세계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금융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자, 연준은 다시 급하게 화폐를 발행하여 불씨를 막았습니다. 곧이어 프라이머리딜러 은행 중 하나인 크레디트스위스가 파산신청을 하고 연준의 지시를 받은 JP모건은 천문학적인 부채를 모두 탕감하면서 부실은행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소모된 화폐도 모두 연준이 신규발행한 달러입니다.

일련의 파국의 직접적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산업섹터의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과도한 낙관, 방만한 은행 경영을 가능하게 한 규제완화, 제도 변화에 따른 장단기 미스매칭,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한 금리의 급격한 상승 등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주식을 비롯한 유동자산의 가격은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주택 가격의 강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파생상품을 설계하기 위한 금융공학은 연준이 계속 화폐를 발행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유동성 확대를 기본전제로 하여 가격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죠.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들이 강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고 글로벌 금융시장도 탄탄하였기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던 겁니다. 일시적으로 주택시장이 살짝 흔들리자 강세시장에 기반한 파생상품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이 촉발되어 각국들은 긴축을 표방합니다.

자산시장, 특히 부동산시장 하락, 금융기관 파산, 신흥국 성장둔화라는 얽힌 고리가 전형적인 패턴이죠.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저성장 기조에서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연준은 또다시 양적완화로 침체를 벗어나려 했지만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었습니다. 아차 싶은 연준은 기준금리를 급하게 인상시키고 이는 장단기 미스매칭과 금융기관 파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간 전세계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은 경험이 없어 대응 매뉴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거대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이들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지 공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플레를 잡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이며 그 결과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40년의 호우시절은 이제 아름다운 과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경기침체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함에 머물러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역사를 돌아보는 의미는 무시무시한 과거를 들추어 패닉에 빠지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장엄한 역사가 주는 메시지를 읽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위기가 어떤 패턴을 가지는지 파악하고 과도한 낙관과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고 현상황과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위기가 언제인지 알 수 있다면 경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위기에 빠진 주체는 마치 천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현상황이 위기임을 너무도 늦게 알아차립니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함에 머물러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경제위기와 파국의 근원에 연준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하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연준을 악마화하며 탓하는 데 머물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제도가 변해도, 보다 좋은 기회가 있다는 유혹에도 어떤 선택이 건전하고 윤리적인지 판단하는 주체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고위험에 아무런 경각심없이 투자할 수 있는 태도가 아무리 연준과 각국의 중앙은행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입니다. 이를 망각하게 되는 건 우리자신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오만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경제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의 오만과 탐욕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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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