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합기도와 실전의 의미

한국형 합기도 시합(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30여 년을 알려왔지만 아직도 ‘합기도(Aikido)’를 격투기와  같이 링에서 시합을 하는 격투 기반 무도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키도를 소개하는 글에서 격투기와 비교하는 댓글 들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이해가 부족함을 실감한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편견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유투브 영상에 합기도(Hapkido)가 태권도와 같이 시합을 하고 격투기 대회에도 나오다 보니, 이른바 한국형 합기도와 구분을 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한 오해다. 글로벌 무도계와 나아가 체육계가 합기도라 인정하는 아이키도(Aikido)는 격투 기반의 시합을 하지 않는다. 타격기 기반의 합기도(Hapkido)를 상상하고 합기도(Aikido)를 배우러 왔다면 오산이다.

그렇다면 아이키도는 싸움을 못하는 운동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공간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한편 시합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무에타이나 주짓수 같은 운동을 선택하는 것을 권장한다. MMA 등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 관심을 가진다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영화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 장면

아이키도는 내란이 끊이지 않던 일본의 사무라이가 사용했던 검술과 유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무술이다. 제한적인 환경과 장비나 피지컬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였을 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움직임을 찾고자 한다. 전란의 시기가 아닌 법치 위주의 민주 시민사회로 가고자 하는데 있어서, 유도나 검도가 제한적 대련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무술 근대화 과정의 성공적 사례다.

한편으로 아이키도가 전장에서의 움직임을 좁은 의미의 도장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발전한 것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전근대사회에서 실전을 현대사회에 적용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실전과 제한적 공간과 룰에서 이루어지는 시합 내에서의 경기력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제한적 환경에서 뽑아내는 능력에 대한 노력의 과정과 성취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열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경기장 밖에서 표출하고자 하면 민주 시민 사회의 부적응자일 뿐이고, 사회로부터 격리 당할 수 밖에 없다. 

근대적인 교육체계를 도입하고 제한적 시합 방식을 만들어 성장하고 있는 유도와 검도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아울러 시합은 하지 않지만 비폭력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찾고자 하는 합기도 역시 그 가치를 현대 무술계, 나아가 체육계에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양에서 기원한 스포츠에서 예를 들어 보면, 맞대결이 이루어지는 복싱과 레슬링만 실전이라고 하고 맞대결이 없는 기계체조나 피겨스케이팅을 두고 실전에 소용없다고 하는 바보는 없다.

2019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종목인 합기도(Aikido)

최근 모 방송국에서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팀을 이루어 경쟁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다. 흥미를 위한 경쟁이 필요하다 보니 실전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과연 그것이 실전일까? 그 가까움의 정도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정말 실전이라면 실탄으로 무장하고, 나이프나 냉병기를 이용해 치명상을 입혀야 실전아닌가? 결국 이 예능은 엄밀한 의미의 실전이 아니다. 생사를 결정하지 않으니 그렇다. 한편 가장 실전이기도 하다. 숨겨져있던 그들의 능력을 공식/비공식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장이 되었으니 그러하다. 

작금의 실전은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이다. 절대무림고수라 한들 코로나와 정면승부를 벌여서 이길 수는 없다. 마스크와 백신이 창이고 방패인 시대다. 실전의 의미는 시대와 환경과 함께 변화한다. 처해진 시공간에서 실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고립되고 약화될 뿐이다.

<참고글>
https://aikidonews.co.kr/archives/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