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티망 뒤 부아Sentiment du bois

유럽의 정치귀족들은 대부분 검술의 달인이었다. <사진출처: 동아일보 인터넷>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순간의 기억의 단편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 요즘은 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활기넘치는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회백질은 아마도 순간순간을 확연하고 깔끔하게 저장하고 있었나 봅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부 시책의 일환으로, 혹은 당시 문화교육부라 불리던 관청의 반강제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올림픽 종목의 운동을 체육시간에 필수적으로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면허는 커녕 운전대도 잡아 본 적이 없었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쇳덩이를 페달 하나 발목 동작 하나로 내달리게 할 수 있다는 낭만에 사로잡혀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저는 산업디자인과를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죠. 인문계를 지망하는 친구들과 언제나 함께 수업을 받다가도 분기에 한번 치루는 모의고사를 위해서는 예술대학 지망은 임시반을 따로 만들어 시험을 치루었습니다.

인문계와 예체능계 지망은 시험치루는 과목이 서로 달랐기에 시험지를 따로 나누어 주기가 성가시다는 학사담당 선생님의 결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전교생 중 예체능계는 몇 안되었기에 서로 지망하는 대학은 달랐지만 예체능지원 학생들은 분기에 한번씩 모의고사 시즌이 되면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3월의 마지막주 고2의 첫번째 모의고사를 치루기 위해 긴장된 마음으로 OMR 카드에 이름을 쓰고 미리 깎아놓은 연필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모의고사의 점수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면 제가 원하는 대학을 지망할 수 없었기에 몸과 마음은 초긴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정신상태와는 관계없이 교실 창밖의 청명한 봄하늘에는 솜사탕같은 구름이 떠있었고 아직 차가운 봄바람에 벛꽃잎이 흩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아, 아름답구나, 하지만 난 입시생이니 이 아름다운 풍경도 맘껏 즐길 수가 없도다. 오호통재라… 라고 중얼거리며 설익은 감상주의에 빠져 있는 그 때, 비릿한 땀냄새를 풍기며 제 뒷자리에 앉아있던 ‘칼잡이’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야, 너 ‘상티망 뒤 페르’가 뭔지 알아?’
제가 선택한 제2외국어는 가장 쉽게 출제되어 쉽게 점수를 확보할 수 있는 독일어였기에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학교에서 ‘칼잡이’는 거친 놈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그냥 질문을 무시해 버리기에는 나중에 옥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먼저 엄습했더랬습니다.

‘어, 나 독일어라서… ‘상티망’이면 프랑스어로 ‘느낌’인가… 잘 몰라… 묻지마라…’
‘치, 똑똑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모르냐?’
‘칼잡이’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펜싱부 주장이었습니다. 공부에 자신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려는 놈들이나 가입할 것이라는 편견에 빠져 있던 저는 펜싱부의 입에서 프랑스어 표현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칼잡이’는 지난 주에 우리 학교에 원정왔던 다른 학교 일진을 간단히 제압했다는 소문도 들은 바 있어, 그냥 넘어갔다가는 후환이 두려워졌습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모두들 시험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해방감에 떡볶이를 먹으러 몰려갔지만, 저는 프랑스어 사전이 비치되어 있는 학교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제가 흠모하던 사서 누나도 계셨기에 아까 ‘칼잡이’가 물어보았던 질문을 다시 기억해 내어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릴 때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았던 바 한번 들었던 단어를 몇 시간동안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사서 누나는 프랑스어 전공이어서 ‘상티망 뒤 페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쉽게 찾아주셨습니다. 요즘이라면 스마트폰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었겠지만, 89년 당시는 단말기 검색은 커녕 도서관 카드에서 책의 위치를 찾아 해당 서적을 대출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단어 의미 하나 겨우 알아낼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상티망 뒤 페르sentiment du fer; 칼날이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감각. 칼과 검술가의 혼연일체의 상태. 근데 네가 이 단어를 어떻게 알게 된거야?’

‘상티망 뒤 페르; 칼날이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감각.’

메모지에 단어의 의미를 옮겨 적고 며칠 뒤 학교 창고 건물의 펜싱연습장을 찾아갔습니다. ‘칼잡이’가 저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다음 모의고사에서 자리배치가 불운하다면 또다시 ‘칼잡이’를 만나게 될 테고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질책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 선제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몇 년 남지 않은 고교생활을 순조롭게 마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제가 연습장에 들어섰을 때 펜싱부는 한창 연습중이었습니다. 우리 학교로 오기 전에 대학부에서 활동했었다는 코치 선생님이 프랑스어로 소리를 지르며 훈육에 한창이셨고, 예의 ‘칼잡이’도 길다란 금속제 칼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두블 아타크 앙 티에르스tierce! 그럼 너는 팡트 드 미즈로 받아야지! 넌 피하고 다시 앙 카르트quarte! 파라드parade하고 플뢰레 막으면서 동시에 팡트 앙 카르트! 어이구, 바보야, 팔을 찔러야지! 어딜 노리는거야?’
연습이 끝나고 ‘칼잡이’가 벤치에 앉아있던 저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어이, 예체능! 여기서 뭐하냐?’하며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상티망 뒤 페르’의 의미가 적힌 메모지를 건내고는 약간 수줍은 얼굴로 물었습니다.

‘나도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
같은 학년이었지만 어른스럽던 ‘칼잡이’는 메모지의 내용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코치에게 다가가 ‘저 예체능도 칼싸움하고 싶데요. 시킬까요?’하고 물었고, 그날 오후부터 ‘칼잡이’와 마찬가지로 냄새나는 방호복을 입고 플뢰레를 들게 되었습니다. ‘칼잡이’는 파다하게 퍼진 소문과 얼굴 생김새와는 달리 친절한 놈이었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 연습을 도와주기로 했죠.

‘손등을 위로 하고 오른쪽 하단 방어, 스콩드seconde, 플뢰레 돌리면서 찌르는 척하며 아타크 포스attaque fausse, 흠, 나쁘지 않군.
오른쪽 하단 막으며 옥타브octave, 손바닥 돌려 왼쪽 상단 방어하며 카르트quarte하고 캥트quainte. 내가 찌르면 반격하면서 콩트르 아타크contre attaque, 다시 찌르면 플뢰레를 흘리면서 파라드parade, 동시에 왼쪽 상단 방어하며 프림prime! 그리고 투슈touche, 너 죽었어.’

몸 움직일 줄만 아는 무식한 놈인줄 알았는데, 프랑스어를 그렇게 능통하게 구사하다니 속으로는 많이 놀랐더랬습니다. 고3이 되며 본격적인 입시에 돌입하자 더이상 펜싱연습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칼잡이’는 이후에도 복도에서 저를 만나면 플뢰레를 찌르는 시늉을 했고 저도 파라드로 맞서는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칼잡이’는 졸업앨범에 ‘칼로 일어선 자 칼로 진학한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고 저도 원하던 대로 산업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나중에 대학 펜싱부 코치가 되었다는 풍문은 들었지만, 다시금 ‘칼잡이’와 대련할 기회는 없었죠. 돌이켜보면 짧지만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상티망 뒤 페르’의 기억도 서서히 흐려져 갔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상식과는 반대로, 가장 번화가에 셋방을 얻어야 합니다. 버스를 제시간에 타야하고 끼니를 쉽게 해결해야 하며 평수 작은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운타운이 최적의 입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던 밴쿠버의 번화가 아파트 지하에는 ‘고무술’ 학교가 있었습니다.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섞여 있는 캐나다인들에게 고무술이란 다름아닌 펜싱이죠.

펜싱

‘칼잡이’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플뢰레를 잡아보니 그동안 재료 공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엄청난 탄성과 회복성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수입한 최고급 플뢰레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건 제가 ‘칼잡이’에게서 배웠던 자세가 현대 프랑스 스타일이 아닌 17세기 스페인 방식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펜싱 용어가 모두 프랑스어였기에 ‘칼잡이’가 스페니쉬였다는 건 생각도 못했었죠.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검술교관은 동양인이 고전적인 스페인 스타일 펜싱을 캐나다에서 하고 있으니, 신기하게 여겨 필요없는 관심을 보였습니다. 제게 수련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며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Arturo Perez-Reverte가 쓴 ‘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라는 소설의 일독을 권하였고, 당장 도서관에서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2002년 스페인 최고 권위의 학술원의 최연소 정회원이 된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는 우리나라에도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뒤마 클럽’, ‘항해 지도’, ‘남부의 여왕’의 작품이 번역출간된 바 있으며, ‘검의 대가’는 레베르테가 1988년 발표한 첫번째 장편소설이었습니다. 무명이었던 레베르테가 전업작가로 성공하게 된 전환점이 다름아닌 ‘검의 대가’였습니다. 스페인에서 초판 10만 부, 전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992년에는 페드로 올레아 감독이 영화로 각색하기도 했으니 소설로는 대성공이었죠.

‘검의 대가’는 1868년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무대로 배신, 권모술수, 협잡이 넘치는 험한 세상을 오로지 명예로운 검 하나로 버티며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검술교관 돈 하이메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매혹적이지만 어두운 구석이 있는 미모의 여인 아델라 데 오테로가 돈 하이메의 검술을 배우고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테리로, 당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과 계략, 그리고 살인의 음모의 소용돌이를 의연히 버티어 나가는 검술가의 초상을 통해 금권주의가 판치고 정치적 야욕이 난무하며 명예와 성실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오늘날의 도덕적 빈사상태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돈 하이메는 스승인 뤼시엥 드 몽테스팡의 고전 검법을 사사하여 파리 검술 아카데미의 지도원이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공격의 존재에 대한 돈 하이메의 질문에 스승은 이렇게 답하죠. ‘완벽한 공격이란 존재하지 않아. (…)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한 공격은 부지기수로 많다고 할 수 있다. 목적을 달성한 모든 공격이 완벽했다고 할 수 있으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지. 어떤 공격이라도 그에 맞는 적절한 동작으로 방어할 수 있으니, 훌륭한 두 검술가들이 공격을 주고 받는다면, 그 결투는 영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늘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취미인 ‘운명’이 그만 끝을 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둘 중 하나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만들겠고, 결과는 상대가 먼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운명의 장난에 대비하여 얼마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법.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수 밖에.’ 하지만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스승의 오랜 경험에 의한 결론에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성배’인 ‘방어가 불가능한 (확고부동한) 완벽한 검법’의 시퀀스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성배’인 ‘방어가 불가능한 완벽한 검법’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 검법의 발견… ‘검의 대가’의 마지막 장은 아스타를로아가 정성들여 가르친 수제자이자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여인 아델라 데 오테로와의 돈 하이메의 진검승부입니다. 이 여자는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에게 완벽한 검법인 ‘최후의 성배’를 배우고 이 검법으로 마드리드의 정치가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던 암살자였습니다. 당시 마드리드의 정치귀족들은 대부분 검술의 달인이었기도 하거니와 검술을 빌미로 정치가들에게 접근하여 암살 기회를 노리던 그녀의 비열한 전략이었죠.

중요 인물들을 돈 하이메가 가르친 ‘최후의 성배’ 검법으로 살해한 아델라 데 오테로는 모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스승을 직접 죽이려 합니다. 훌륭한 스승에게 배운 아델라 데 오테로는 이제 스승의 검에 대등하게 맞설 정도로 실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플뢰레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돈 하이메의 검술교습소에 울려 퍼집니다. 아델라 데 오테로는 두 다리를 단단히 바닥에 고정하고는 돈 하이메를 향하여 아타크 포스를 날립니다. 플뢰레를 낮춰 캥트. 미처 캥트를 취하기도 전에 돈 하이메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아차리고 결정타가 오기 전에 왼손으로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여자의 칼날을 막아냅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펜싱에서는 왼손은 몸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서만 사용할 뿐 방어에는 동원되지 않지만, 돈 하이메의 스페인 고전 검법에서는 왼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검을 막아냅니다.

저도 ‘칼잡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상대가 빗겨낸 플뢰레나 레피어의 날을 잡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막상막하의 결투가 이어지며 여인에게 연정을 품었던 돈 하이메는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돈 하이메가 가르드를 취하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뇌리에 희망의 빛이 스칩니다. 얼굴 쪽을 공략하자 여자가 앙 카르트로 막았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이었지만 분명 빈틈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각의 시간. 다음 동작을 지속적으로 취하는 동안에도 아스타를로아의 훈련된 감각은 시계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작동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은 사라지고 모든 감각은 직감에 기반한 마지막 공격에 집중합니다. 계산이 잘못되었다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역공으로 돈 하이메의 심장이 날카로운 플뢰레에 관통되겠죠.

돈 하이메의 공격에 아델라 데 오테로도 더 안정된 자세로 파라드 드 카르트parade de quarte. 곧바로 가르드를 취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단지 가르드를 취하는 시늉을 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얼굴과 어깨를 뒤로 젖히면서 칼날을 상대방 팔 위를 지나 얼굴을 향하여 저항없이 질렀고 돈 하이메의 플뢰레의 칼끝은 아델라 데 오테로의 오른쪽 눈을 뚫고 지나가 그녀의 두개골에 박힙니다.

파라드 드 카르트, 팔 위로 앙 카르트, 파라드 드 티에르스. 깊숙이 카르트. 반 바퀴 돌며 파라드. 어깨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낮게 카르트. 팔 위쪽으로 카르트. 파라드 아 프림. 앙 스공드. 빛바랜 카펫 위로 심지가 타들어가 꺼져가면서 남은 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잔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카펫을 피로 흥건히 적시고 있는 검은색 실크드레스의 여인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스며드는 햇살을 받아 카펫의 올이 연붉은빛으로 빛납니다.

파라드 드 카르트. 앙 프림. 팔 바깥쪽으로 스공드second. 앙 옥타브. 팔 위에 카르트로 눈을 향해 찔러 들어간다… 시간의 흐름이 정지하고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침잠해 버린 고요와 정적만이 감도는 검술 연습실 한가운데 노인이 거울 앞에 서 있습니다. 손바닥의 베인 상처에도 관심없이 말없이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고 신경을 집중시켜 아델라 데 오테로의 보랏빛 아름다운 눈을 관통했던 검술 동작을 복기합니다.

모든 동작들을 차례대로 정확하게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완전히 자기 자신에 몰두한 채, 주변의 모든 것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동작의 시퀀스를 각인합니다. 절대적 정교함. 수학적 정확성으로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동작들의 단계를 직접 실행에 옮기며 돈 하이메는 만족의 미소를 짓습니다. 마침내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공격법, 최후의 성배를 터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제가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국면이기도 하지만 섬뜩하기 그지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배신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그토록 흠모했던 보랏빛 눈동자가 플뢰레에 뚫려 뇌수가 흘러나오고 선혈을 뿜어내고 있는 시체가 아직 경직되지도 않은 펜싱연습실에서 돈 하이메는 최후의 성배의 시퀀스를 복기하면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그로테스크의 극치가 유려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미장셴에서 어떤 독자는 공포를 느끼기도 하시겠지만, 나이가 들어 쇄약해가는 육체를 저주하면서도 완벽한 공격법을 완성시키지 못해 초조한 노년의 검술교관의 성취에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독자도 계시겠죠.

‘너 ‘상티망 뒤 부아’가 뭔지 알아?’

아델라 데 오테로는 돈 하이메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수줍게 질문합니다. ‘선생님은 몇몇 검술가들만이 보유하고 있다는 특별함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 뭐라더라… 전문가들이 하는 말로는, ‘상티망 뒤 페르…’ 맞나요? 흔히들, 그건 타고난 검술가들만이 터득할 수 있다고들 하던데요.’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제자에게 상티망 뒤 페르를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그건 일종의 육감입니다. 말하자면, 플뢰레 위에 놓인 손가락의 촉감을 칼끝으로 전이시킬 정도의 육감 말입니다. …

그건 상대방의 의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특별한 직관과도 같은 것이지요. 때로는 상대방이 어떤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먼저 그 동작을 간파하기도 합니다. (…) 그걸 갖추는 데에는 그야말로 평생이 걸리지요.’ 제 작업실 겸 클럽의 옆 건물에는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이신 남현희 선생의 펜싱클럽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가끔 지나가다가 창문 곁에 멍하니 서서 지도원과 제자들의 펜싱 연습을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아련히 떠오르는 고교시절의 ‘칼잡이’의 기억과 놈이 추구했던 ‘상티망 뒤 페르’라는 단어가 뇌리에 떠오르며 어줍잖은 우수에 젖기도 하죠. 한겨울에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머리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던 ‘칼잡이’ 그놈은 지금쯤 상티망 뒤 페르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제 손에 쥐어져 있는 칼은 목검이니 굳이 말하자면 상티망 뒤 부아sentiment du bois가 되겠군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칼잡이를 만난다면 그놈은 분명 물어볼 겁니다. ‘너 ‘상티망 뒤 부아’가 뭔지 알아?’ 상상해보니, 부끄럽게도 ‘아직 멀었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