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왜 나는 왜 합기도를 선택 했을까?

나는 격투기를 했던 사람으로서 무에타이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한무에타이협회 초대 회장으로서 내가 만들어 놓은 아래 표에서 보는 훈련과정표는 지금도 이용되어지고 있다. 무에타이는 과히 입식타격에서 세계 최고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합기도(Aikido)를 선택 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합기도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아래 표에서 보듯 싸움에 임했을때 인간과 동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번째가 직립보행이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는 것이 다르다. 두번째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석기시대 돌이나 동물의 뼈로 만든 도구에서 부터 시작된 칼은 전쟁과 국방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세번째는 본능적으로 싸우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직립보행, 도구사용,생각(선악구분) 가장 인간적인 전투자세

위와 같이 싸움에 임했을때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모습은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도구를 사용하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의 역사는 싸움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화력을 가진 총이 등장할 때까지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서 검(劍)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옛 무사들은 교학체계로서 검술은 항상 유술을 함께 수련해 왔다.

고대전투 장면

검술과 유술을 함께 수련하는 것은 검을 소지하지 않았거나 전투 중 검을 놓치거나 혹은 부러졌을때 적의 칼을 방어하기 위해 반듯이 필요한 무술이었다. 총이 나타나기 전까지 검은 가장 효과적인 싸움 수단이었다. 현대에 와서 강력한 격투기들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긴장감은 옛 검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진: 연합뉴스

현대에 오면서 옛 검술은 누구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서 검도가 되었다. 그리고 유술은 유도가 되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옛 무사들은 검술과 유술을 함께 수련하며 서로 보완해 왔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기를 하는 검도가 되고나서 검도는 경기에 집중되면서 유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 유술을 잃어 버렸다. 그렇다면 유도는 어떤가?

사진:스포츠조선

유도는 올림픽 종목으로서 그 위상을 전세계에 떨친지 오래다. 격투기로서의 실전성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옛 유술이 현대스포츠로서 유도가 되면서 옛 무사의 전투방식인 검술은 관련이 없게 되었다. 좀 쉽게 표현하자면 검을 버렸다. 유도와 검도는 서로 전혀 연관이 없는 종목으로 굳혀져 버린것이다. 검도와 유도는 독립적인 그 자체로도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합기도 검술수련

상호 보완적으로 연관되어 발전해온 검술과 유술의 형태에서 어느 한쪽을 잃어 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발전시켜온 무술이 바로 합기도라는 운동이다. 옛 유술은 무사들의 비장함이 있어 공격하는 적의 팔을 부러뜨린다던지 허리를 꺽어 버린다던지 다시 공격할 수 없도록 하는 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합기도는 매우 부드러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게 독특하다.

합기도 유술수련

고대로부터 시작된 유술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유술이 합기도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합기도를 움직이는 선(禪)이라 하기도 한다. 합기도는 검술과 유술이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술적 움직임은 검술로 설명이 가능하다. 몸으로 표현하는 움직임의 원리가 검술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무사들은 검술과 유술을 함께 수련했다. 합기도는 옛 형태의 무술이 현대화된 스포츠다.

옛 무술이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것에 비해 합기도가 부드러워지며 안전해 질 수 있었던 것은 합기도를 만든 창시자의 종교적인 신앙심에 따라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유애호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공격해오는 상대마저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합기도 창시자의 창조적 작업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었다.

합기도 창시자의 수련모습

합기도는 단순히 상대를 굴복 시키기 위해 완력이나 폭력성을 기르는 운동이 아니다. 합기도 창시자는 모든 창조물과 자신이 하나임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나서 비폭력주의를 토대로 합기도를 만들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용서,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적 이상을 개인간 갈등 해결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폭력 일변도인 무술들과 큰 차이를 갖게 된 것이다.

사진: 구글 늑대사냥 이미지 캡쳐

자연환경에서 늑대가 사슴을 공격해서 죽이는 것은 적개심이나 분노가 일어나서가 아닌 오직 굶주림을 해결해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먹잇감이 된 동물은 자신을 죽인 동물이 존속되도록 영양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사냥하는 동물(늑대)은 사냥감인 동물(사슴)이 고등 동물로 진화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살아남은 약한 동물은 더 강해지려 하고 그 수를 늘리려 애쓴다. 한쪽의 생존은 다른 한쪽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서로가 의존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나의 성장을 위해 타인의 희생이 전제되는 것은 진화도 아니며 상호 공존일 수도 없다. 같은 사람끼리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자기방어 체계의 왜곡이고 결국에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스포츠가 심신을 강건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폭력성이 길러지면 인간관계를 헤치고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합기도는 서로의 진화를 돕는다.

합기도는 옛 무술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위험하게 하지 않고 서로의 기술적 정신적 발전을 위한 진화에 기꺼이 서로가 희생하며 돕는다. 합기도는 무술이다. 따라서 상대를 검으로 베어 버리듯 강한 공격을 할수 있다. 하지만 위험스런 공격을 자제하고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함으로서 윤리성을 갖는다. 참조 글을 확인하기 바란다.

[참조: 합기도의 실전성과 윤리성]

기술적으로는 검술과 유술을 배움으로서 배우고 습득해야 할게 많다. 기본기에서부터 응용변화까지 단기간에 모두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모든 합기도 기술이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상대를 대하는 기술적 윤리성과 함께 완벽하게 되기란 쉽지 않다. 만약 합기도 기술만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격성을 지닌 타무술을 섞게 되면 합기도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게 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도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라는 책에서 그점을 지적해 놓았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안 티시에 8단

합기도는 인격을 완성하는데 뛰어난 운동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크리스티안 티시에 8단 선생이 지난해 한국에 와서 멋진 시범연무를 보여 주었을때 그의 온화하고 신사적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동안 봐왔던 무술인에 대한 강한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워 하곤 했다. 합기도는 그런 운동이었다. 합기도는 별도의 인격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운동 그 자체가 인격을 향상 시킨다.
합기도는 IOC 조직인 AIMS와 GAISF 종목으로 이미 세계화되어 있는 무예이다. 따라서 종주국을 주장하며 어느 한 나라의 무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속좁은 열등의식에서 나온 행위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전에 태권도 선수였으며 격투기 선수였다. 그리고 무에타이를 한국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랬던 내가 합기도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이무술 저무술을 찾아다니며 좀 더 완벽해 지려고 했던 나에게 더이상 기웃거릴 필요가 없는 무술의 완성을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