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성의 승화, 아이키도

이성(理性)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 지성(知性)은 심리학에서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즉 이 둘은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가 아닌 성숙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기본 방편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공격성이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이성과 지성이 그것을 적절하게 조절해 왔지만, 경제적인 문제나 개인과 사회가 내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그 공격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사례가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을 스포츠를 통해 그 성향을 승화(Sublimation)하는 지혜를 인류는 축적해왔다. 축구를 유럽에서는 국가간 대리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대리전이라면 충분히 감내할만 하다.

가까운 일본을 예로 들면, 지역 특성상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려왔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모색하면서 서양의 스포츠 역시 일본에 전해졌다. 유술(柔術), 검술(劍術), 병법(兵法) 등의 이름으로 전투 기술을 연마하던 사회 풍조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무도(武道)라는 근대적 교육체계로 흡수되었다. 날이 서있기만 하던 내전중 사무라이들의 행동방식이, 유럽의 신사들이 즐기는 스포츠와 접목하면서 그 공격성을 적절히 승화시켰다고 본다. 물론 군국주의를 합리화시킨 부분도 있다.

이런 근대화된 무도와 스포츠도 공격성을 완전히 승화하지는 못했고, 국가나 조직, 집단의 대리전 양상이 되면서 비신사적인 폭력이 드러나고, 그에 따른 피해 역시 나타났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부터 무도로써 태권도를 하였지만, 결국 더 강한 무언가를 찾아 다녔다. 그러한 과정은 파이터로써 발전은 했지만 공격적인 성향과 함께 부상을 수반하였다. 그 정점에 있을 때 해외에서 아이키도 선생님을 만나면서, 필자의 무도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였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이 지배하던 그 시기에 아이키도를 맞이하였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상대보다 앞서 공격을 하고, 상대의 공격을 간파하여 효율적으로 피하면서 과감하게 공격하는 것만을 생각해왔던 필자였다. 그러나 그러한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노선생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인류의 등장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싸워왔고, 전쟁을 통해서 문명이 발달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폭력은 늘 지양하고 억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성과 지성이 필요한 것이고, 갈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근대적 무술이 폭력과 파괴를 상징한다면 근대적 무도는 상생과 배려가 되어야 한다. 힘을 지닌 국가나 집단, 개인 위주로 이 사회가 움직인다면 그 미래는 결코 달갑지 않다.

공격성은 제한적으로 군대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가 발달한 시민사회에서는 공격성을 합리적인 사유활동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승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그러한 대표적인 방법이 무도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랜기간 아이키도를 수련해 온 입장에서는 다른 격기류와 무도 등에 비해 공격보다는 조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아이키도의 장점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

아이키도

딱히 금메달을 향한 시합은 없지만, 기술을 걸고 받는 과정에서 최상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노력에서 희열을 느낀다. 거기서 긍정적인 사고와 상대에 대한 배려, 조화, 겸손 등 현대 시민사회에 필요한 덕목을 익혀간다고 ​자부한다. 강하고 빠르고 날카로움을 추구하던 내 자신의 변화가 바로 그 증거다.

이미 아이키도 개조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은 ‘진정한 싸움은 무술과 무술의 대결이 아니라, 천지생명으로부터 나를 위배케 만드는 내존재속에 내재하는 마력과의 싸움일 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해 오셨다. 타자와의 폭력적인 대결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아와의 싸움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이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