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Ragnarøkkr/무념無念 <조현일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성의誠意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

북구신화의 최고신 오딘Odin은 룬 문자의 의미를 전수받아 깨달음을 얻고는 세상에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바이킹 전사들은 부족의 명예를 걸고 충심을 다해 전투에 임하는 신성한 맹세를 오딘에게 바칩니다. 심지어 전투에서 사망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오딘에게 양도한다는 서약을 하죠.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살아남는다면 오딘의 은총을 받은 것이요 죽는다면 오딘의 버림을 받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마인트컨트롤을 통해 전투의 흥분상태인 베르세르크berserk, 혹은 ‘광전사狂戰士’에 들어가지 못한 불운한 전사들의 영혼은 헬Hel로 추락합니다. 용맹스런 전사의 고귀한 영혼은 아름다운 여전사 발키리Valkyrie의 인도를 받아 에인헤랴르Einherjar로 신격화되고 그토록 원하던 발할라Valhalla 궁전에 입성합니다. 이들은 오딘을 주군으로 삼아 발할라에서 다시 모의 전투를 거듭하고 축제를 벌입니다.

오딘을 비롯한 북구의 신들은 자신들의 거처 아스가르드Asgard에서 매일 전략 회의를 열며 세상의 종말이자 최후의 전투가 될 라그나로크에 대한 전투 시뮬레이션을 치룹니다. 오딘이 인간계인 미드가르드Midgard의 용맹한 바이킹 베르세르크의 영혼을 수집하여 발할라로 불러올려 매일 축제를 벌이며 자신의 수족처럼 싸워줄 전사를 양성하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라그나로크를 준비하기 위해서죠.

신들은 전지전능하지 않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단 한 사람, 만물을 통찰하는 헤임달Heimdall은 예외입니다. 그는 라그나로크의 발생을 예지하지만 사건의 발발을 막을 힘은 없는 불길한 예언자 카산드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무도 라그나로크가 언제 시작하는지 모르지만 전조는 반복되는 차가운 겨울입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인간은 전쟁을 벌입니다.

형제가 서로 비수를 꽂고 아버지가 아들을 참수하며 어머니와 딸이 반목합니다. 태양과 달과 별도 사라지고 카오스의 암흑이 안개처럼 온 세상에 충만합니다. 삭풍이 폐부를 찌르고 고통의 눈물이 얼어버리는 겨울 핌불베르트Fimbulvetr가 지나면 지진이 찾아옵니다. 세상이 흔들리자 늑대 형상을 한 파괴의 신 펜리르Fenrir를 구속하던 쇠고랑이 깨어지며 포효가 울려퍼집니다.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두 눈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입을 열어 세상을 먹어치우며 자신을 구속한 신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홍수가 일어나자 미드가르드에 봉인되었던 뱀의 형상을 한 요르문간드Jormungundr도 신들에 대한 분노로 몸을 뒤틉니다. 송곳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바다에 퍼져 그나마 잔존하던 해양생물을 멸종시키고 그 비말이 하늘을 날던 새들을 떨어뜨립니다. 부패한 동물들의 시체가 해안에 쌓이고 악취가 진동하면 최종 전쟁 라그나로크가 시작됩니다.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를 연결하는 무지개빛 다리 비프로스트Bifrost는 무너져 내리고 헤임달은 걀라르호른Gjallerhorn을 힘껏 불어 최종전쟁의 시작을 알립니다. 기상 나팔 소리에 아스가르드가 진동하면 잠자던 신들은 라그라로크 참전을 위해 무기를 손에 들고 세계수 이그드라실Yggdrasil의 밑둥에 자리잡은 우르드Urd의 샘에 모여 노른Norns의 축복을 받고 임전태세에 돌입합니다. 에시르Aesir 신족과 에인헤랴르가 최후의 전장 비그리드를 향해 달려오며 최고신 오딘은 병사들의 선봉에 서서 묠니르Mjollnir를 든 아들 토르를 비장하게 응시합니다. 오딘은 늑대 펜리르와 대적하고 토르는 요르문간드와 싸우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토르가 묠니르로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내리치자 바다뱀의 머리가 흙바닥에 떨어지지만 죽어가는 와중에도 천둥의 신을 향해 독을 뿜습니다. 토르는 승리에 환호하지만 요르문간드의 맹독에 신음하다 아홉걸음을 걷고 절명합니다. 오딘도 펜리르와 용맹스럽게 싸우지만 늑대의 거대한 입속으로 먹혀들어가 버립니다. 비그리드에서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발할라 전사들은 최선을 다해 전투를 벌이지만 패배는 예정되어 있습니다. 헬의 불굴의 전사들과 에니헤랴르도 얼어붙은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생명의 부질없음에 오열합니다. 신들의 꿈과 베르세르크의 결말은 회색 잿더미입니다.

흘러 넘치는 바다는 모든 육지를 덮고 그나마 남아있던 잿더미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세상은 종언을 맞이합니다. 아스가르드와 발할라 전사들은 처참한 결말을 헤임달의 예언으로 오래전에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펜리르에게 모든 신들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라는 운명을 바꿀 방법은 없습니다. 이렇듯 아스가르드 신화는 특이하게도 여타 신화의 내러티브와는 달리 모든 신들의 절멸로 세상의 끝을 말하는 결정론적인 닫힌 구조를 가지는 이야기입니다.

서사의 반복과 영원불멸의 존재의 영속을 말하는 그리스/로마/인도 신화의 내러티브와는 결을 달리하죠. 결정론은 빅뱅 이후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향하는 일방적인 방향성을 가지기에 인과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최초의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이후 모든 사건들은 인과성의 연쇄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근대 물리학의 근원본질적인 전제조건이 다름아닌 인과성의 결정론입니다.

철학적 논의에서는 결정론이 제기될 때마다 자유의지의 문제를 들어 반박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 있기 마련입니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선택되는 행위의 가치는 결정론적인 관점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주체는 언제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물리학적으로는 자명해 보이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직관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론을 본능적으로 거절하는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변분원리를 통한 목적론적 사유를 통해 부분적으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철학적 문제를 우회할 수 있습니다.

테드 창의 ‘너의 인생의 이야기’라는 SF 소설에는 외계 지성과 접촉하는 언어학자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외계 지성은 언어학자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데, 이들의 언어 체계가 특이하게도 사건을 통시적으로 인지하는 문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의 구조는 현실을 대하는 일반 경험에 의거하기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 다른 사건이 발생할 때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인식하며 언어가 정립되는 과정도 이와 동일합니다.

하나의 단어를 말하고 다음 단어를 순서대로 발화하며 언어를 듣고 이해할 때에도 순차적으로 단어를 접수하여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외계 지성은 사건 발생 순서와 시간의 앞뒤를 무시하고 문장의 모든 단어를 동시에 발화하는 게슈탈트적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계 언어를 습득한 언어학자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낳을 딸이 죽을 운명이라는 미래를 말입니다.

SF에나 등장하는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현대물리학에서는 국소 영역에서의 사건 분석에 있어서 전체 상황을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취합니다. 사건 발생 구조의 단계적인 개별 요소를 읽지 않고 인과 관계의 연속을 따지는 태도가 아니라 국소 영역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해당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을 동시적으로 분석하는 접근법으로서 ‘페르마의 변분원리’라 불립니다.

변분원리는 어떠한 물리현상을 시작점에서 시작하여 종료점에서 완료되는 사건으로 이해하여 두 점 사이의 시스템의 상태를 추론하는 물리/수학적 사유법이죠. 철학적으로는 인과론에 반하는 목적론적 인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체계의 양태의 총체를 이해하려는 목표지향적 태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인과를 따지는 사고방식과는 부합할 수 없죠. 미래는 본질적으로 이미 발생하였기 때문에 사건의 성격은 필연적이며, 일말의 불확정성과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의 언어학자는 자신이 미래에 낳을 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미래를 거부하지 않고 출산을 강행하여 종국에는 딸을 떠나보내고 불행해집니다. 하지만 지난 인생의 순간순간의 가치를 되새기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결정론을 긍정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은 누구나 궁극적인 필연성을 안고 삶을 시작합니다. 언젠가는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필연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운명을 바꿀수 없다는 필연을 안고도 절망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여정의 끝에 파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죽음으로 삶이 종결된다는 운명을 알고도 모든 순간을 기쁘게 수용할 수 있을까요? 언어학자처럼 불행을 예견하지만 후회없이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절멸의 운명을 알고도 라그나로크를 준비하는 오딘과 토르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날카로운 칼날이 목을 향한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무라이의 무념無念과도 닮아있는 듯 합니다.

힘겨운 수련을 마다하지 않는 도우道友들의 태도는 발할라에의 입성을 기다리는 베르세르크를 닮아 있는 듯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성의誠意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딘은 라그나로크를 앞둔 발할라의 전사들에게 외칩니다.

‘무엇을 더 알기를 원하는가Vitoð ér enn, eða hvat?’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