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마추어와 프로

격투기 시합에 출전한 필자 1985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막연하게나마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술의 관점에서 아마와 프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마추어는 참가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 실적이 달라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가 경기 결과를 컨디션 탓으로 돌리고 있다면 스스로 자질 부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일반 스포츠보다 무술 경기는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과거 격투기 시합에서 상대의 턱뼈에 큰 부상을 입혔다. 경기장 매트에서 구급대원에게 실려 병원으로 이송한 상대 선수가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에도 재수술을 해야만 했다. 운동을 업으로 삼던 나(프로)에게 취미삼아 시합에 오른 상대(아마추어)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던 것이다.  서로의 욕심과 무지가 불러온 사고였다. 

시합에서 가벼운 부상이 대부분이지만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무에타이 시합에 오른 선수가 경기중 쇼크로 쓰러져 구급차로 이동중 사망해 버린 사고는 실제 눈앞에서 목격한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서 격투기 사망사고를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 기사다. 비록 아마추어대회를 표방하더라도 무술경기에 아마추어리즘으로 참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시합장에서 누군가를 상대할 때는 한치의 실수가 없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보호장구가 발달하고 심판의 역량이 향상되어도 여타 스포츠에 비해 위험도가 높다. 태권도가 전자호구를 개발하고, 발차기와 주먹 가격에 특정 부위에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영상은 발차기로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음을 누차 접하고 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스릴있고 통쾌할지 모르지만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슬픈일이다.

아마추어도 즐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와 룰은 끊임없이 보강되어야 하고, 지도자와 심판의 자질 향상 역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합기도는 오랜세월 수양을 통해 지도자(프로)가 된다. <사진은 윤준환 중앙도장장>

합기도 같은 무술은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다 기술이 잘 먹히는 것은 일반 수련생들이 느끼는 경험이다. 매번 실수없이 잘하는 사람이 프로이고 합기도에서 프로는 지도자를 말한다. 합기도는 지도자의 기술과 아울러 품격을 중요시 한다. 

합기도협회는 전국적인 연무대회를 열고 그 대회를 통해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눠서 연무시범을 보이게 한다. 프로는 연무를 통해서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실제 프로가 지도하는 수련에 참여해 보면 그 지도자만의 특별함이 나타난다. 아마추어는 연무를 통해서 때때로 박수를 받는다. 항상 잘하는 프로가 되려면 오랜 세월을 요구한다.

합기도가 타무술과 구분되는 것은 기술은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고 안전하며 힘이 있다.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기술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공격해 오는 상대마져도 절대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하며 완력을 사용하지 않아 그만큼 부드럽다. 또한 기술이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면에도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몸을 돌리는 것은 허리 중심의 이동을 통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기술을 펼치게 하며 상대의 급소같은 약한부위를 타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는 지침이 있다. 결국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타격기와 같은 쉬운 길보다는 좀 어렵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일상 생활에서 상대와 부딪힘이 있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면서 좀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

합기도는 기술의 숙련과 함께 인격적인 품성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훌륭한 무술이다. 모든 회원들은 좀 더 완벽해 지기 위해 수련한다. 그것은 항상 잘할 수 있는 실력과 함께 좀 더 좋은 품성과 인격을 갖추는 것이다. 일반회원에서 지도자가 되는 과정은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하는 명언이 합기도가 추구하는 깨달음이다.

합기도에서 심사는 어느 이벤트보다 중요하다. 성품과 실력이 단위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최고 단위인 8단이 허락[允許]하면 그 선생이 가르치는 합기도장은 그 지역의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갖추는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그 위상이 널리 떨쳐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협회가 생계형으로 단증을 생산한다면 합기도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