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5부, 나는 왜 합기도로 돌아왔나?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예체능을 하라는 말이 있다. 또 인생은 마지막이 행복해야 한다.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된 본인이 생각하는 것은 예체능에서 특히 체육은 젊었을 때 배우는 것이 좋다 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몸이 굳고 관절들이 약해지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것이 쉽지 않다.

아이키도는 부드러워서 나이들어서도 배우는데 무리는 없지만 지도자로 성장하기에는 체력적인 한계가 있다. 젊었을 때 배워야 축적된 경험으로 나이들어서도 프로다운 모습을 보일수 있다. 젊었을 때는 선생이나 선배의 기술을 완벽하게 받아낼 정도로 강한 훈련을 해야 하고 나이가 들면 오랫동안 쌓아온 실력으로 자유자재가 되어야 한다.

사진설명: 30대에는 말이 많으면 안된다. 선생과 선배의 우케를 안전하게 받는 실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본에서 우케를 받는 윤준환 장남의 모습)

그런 과정을 거쳐 뛰어난 실력을 갖춘 노선생들이 많다. 인간관계를 나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선생의 기술을 경험해 보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다. 그것은 대한합기도회가 국제연맹에 가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글은 내가 “왜?” 격투기에서 아이키도로 돌아섰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보았다.

나는 결혼하고, 체육관 사업도 잘되고, 든든한 후원도 받고 있었다. 나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무에타이를 만났을때는 세계최강의 무술을 찾았다는 기쁨이 있었다. 어렵지 않게 전국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확장해 갔다. 직접 시합을 개최했으며 실력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함께 했다.

시합을 개최하면서 매번 느꼈던 것은 40대도 안된 나이에 은퇴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에 대만에서 합기도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격투기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정말 별볼일 없는 합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따를만한 스승도 없는 무술이라고 생각하던 합기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손목꺽고 옆차기! 중학교 시절 합기도 폼사진
고등학교 시절 쌀정곤 폼사진

合氣道가 일본어이고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일본에 가서 일주일이면 모두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몹시 오만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체육관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최고라는데 자부심을 느꼈고 경쟁자는 어떻게든 꺾어 버리려 했다.

시합을 개최할 때 내가 여는 시합에서 내가 키운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진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실제로 선수를 태국에 데리고 갔을때 태국선수에게 초반부터 기선이 제압되고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곤 정말 화가나서 선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태국에 매니저가 내 표정을 보고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 참으라고 했을 정도다.

필자가 MBC정동문화체육관에서 자주 격투기 대회를 열었다.

그런 나의 태도나 행동이 겸손했을리 없다. 앞에서는 예의를 지키며 매너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마초와 다름 없었다. 운동으로만 다져졌던 내가 아이키도로 완전히 마음을 바꾼 것은 커다란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유애호를 언급하며 세계평화를 말하는 것도 특이했지만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선생들의 삶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키도는 격투기 같은 긴장감은 없지만 매우 자연스러우며, 부드럽고, 힘이 있었다.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합기도, 태권도, 격투기 발차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나의 무술이었다.
이전까지 나의 운동은 발차기가 전부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라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 아이키도 안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습득하고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키도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발차기가 위주였던 나에게 발차기 없는 운동을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키도로 시작했을때도 격투기를 계속했다.

일본에서 온 선생에게 위협하듯 후려차는 발차기를 시범보이기도 했고 배우겠다고 찾아온 합기도 관장에게 발차기로 기절을 시키는가 하면 잡지사 기자가 실제 경험해 보고 싶다고 왔을때는 피가 튀게 발로 차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발차기를 할 줄 안다는 사람에게는 더 심하게 차버릴 정도로 발차기는 나의 전부였다.

이전까지 나의 운동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틀리다거나 다른 방법을 가르쳐준 선생이 없었다. 내가 아이키도로만 전문으로 하겠다고 했을때 격투기 관장들은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대다수 생계형으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모집이 유리한 무에타이를 그만두고 전혀 알려지지도 않은 아이키도를 한다는 것이 이상했을 것이다.

상표 특허출원된 무에타이 마크. 필자가 특허권자 였다.


어쩌면 무술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그들의 생각과 반하는 내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후에도 무술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부딪쳐야 했다.
“무술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한국 무술을 두고 왜 일본무술을 하느냐!”
“실전적이지 못하다!”

어느정도 아이키도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서울에 어느 관장은 “윤관장은 격투기를 했던 사람이라 아이키도를 격투기처럼 한다!” 또 부산에서는 반대로 “윤관장은 아이키도를 춤추듯 힘없이 부드럽게만 한다!” 고 비난했다. 그 외에도 “거짓말하고 있다!” “일본무술은 일본에 가서 해라!” “세계본부, 국제연맹 지부도 아닌데 거짓말 한다!” “단증이나 팔아서 돈 벌려고 한다!” 등 음해하는 말들이 퍼져갔다.

내가 아이키도를 하기 전, 그리고 아이키도를 알리기 전까지 누구도 합기도가 일본에서 시작된 훌륭한 무술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지도자가 없었다. 너무 약해 보였고, 일본무술을 하면 마치 매국노라도 되는양 떠들어 대는 편견과 멸시에 맞설만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도전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후 아이키도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일본에 가서 직접 배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이키도를 가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경쟁심으로 자신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먼저 시작한 사람을 헐뜯는 자도 있었다. 그런 자들은 진정으로 아이키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라는 말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SNS에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을 소개하자 직접 고바야시 선생 도장을 찾아간 사람도 있었고, 세계본부를 직접 찾아가거나 메일과 전화로 자신들도 지부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협회도 있었다. 터무니 없는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처음에는 혼자서 그런 것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제는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만큼 성장했다.

지도자들의 자질과 합기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키도는 무에타이 때처럼 하루 아침에 큰 조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운동이다. 지역마다 뛰어난 자질을 갖춘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쉬지 않고 습득해야 할 것들이 많다. 또한 아이키도는 실력과 일치된 승단이 이루어지고 있어 거짓이 없다.

윤준환 중앙도장장의 검술연무 모습

특히 검술은 아이키도 선생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어서 배우기가 쉽지 않다. 또한 검술은 옛 칼싸움의 특성상 지지않으려는 날카로운 이미지가 만들어 지곤 한다. 때문에 선생은 인성이 안좋은 사람에게 위험한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잘못 아무나 가르치게 되면 후회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틈을 공격하는 것, 승자 독식의 구조속에서 습관처럼 상대를 눌러버리는 거친 동작과 자연스럽지 못한 기술들, 이전에 배웠던 낙법이 오히려 부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많다. 세계본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큰아들이 함께 하고 나서야 어깨 부상이 없는 안전한 낙법을 습득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귀저귀 차고 시작한 무술, 장남의 유아시절

아이키도는 몸으로 하는 대화이다. 만약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과 더이상 관계를 지속하며 계속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격해 오는 상대마저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키도다. 나는 아이키도라는 운동을 통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누누히 얘기해 왔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무술이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무술을 배우고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위협하는 마초로 변해 버린 사람도 있다. 나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더 강한 경쟁자들로 부터 나를 위험하게 만들고 좋은 사람들이 멀어지게 하는 잘못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평소 건강을 생각치 않듯이, 강한 사람은 싸움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다. 호랑이 새끼들이 장난치듯 서로 뒤엉키며 놀고 있는 것은 서열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크고 힘센 먹이감 사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기고 지는 것을 생각치 않고 무아의 경지에서 상대를 배려하며 펼치는 대결이 아이키도라고 할 수 있다.

아이키도를 시작하고 느낀 소감을 적어 놓은 필자의 엣세이집

우리의 삶은 경쟁만 있는게 아니다. 서로가 존중하는 배려 속에서 기쁨을 갖어야 한다. 아이키도는 상대의 선(善)을 권장하고 불선(不善)이 발현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선과 불선은 인간이 만들어 내고, 어떤이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진다고 본다.

아이키도는 무도를 통한 인간성 향상의 새로운 이정표로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 기술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무아지경의 뒤엉킴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잊지 않는 바른 몸가짐은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나타낸다.

세상은 선(善)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살만해 지는 것이다. 나는 아이키도가 바로 그런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격투기를 그만 두었다. 아이키도는 세상의 오만과 편견으로 부터 내 중심을 갖게 했으며 옳고 그름에 대한 깨우침을 주었다.

*<1부>처음 아이키도를 만나게 되다. 
*<추억> 힘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