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型은 그 자체로 실전일 수 없다

80을 바라보는 대선배의 노련함이 실전이다.

에피소드 1.

일본에서 대선배의 상대가 되어 사방던지기(四方投げ)를 하려고 할 때, 흐름을 꿰고 있는 선배의 반격기(返し技)에 의해 전혀 기술을 펼칠 수 없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그 선배를 잡고 힘으로 바짝당겨서 버티며 해보라고 했다. 선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사방던지기를 했고 나는 종잇장처럼 던져지고 말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낀 순간이었다.

 

에피소드 2.

미국에 지도하러 갔을 때, 현지에서 합기도장(Hapkido)을 운영하고 있는 지도자가 매너없이 흘겨보고 있었다. 자신도 합기도 8단이라며 관절기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며 내 지도 내용을 폄하하는 듯한 언급을 반복했다. 자신이 지도하는 방식의 사방던지기를 보여주었는데 형태만 알고 있을뿐,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았고 다이사바키(体捌き)를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내가 오류를 지적하자 화를 내며 당신이 해보라고 하며 나를 잡았다. 그의 팔에 똑같은 사방던지기를 했고 그는 힘으로 버티며 당겼다. 그순간 그의 팔꿈치와 어깨에서 ‘으드둑!” 소리가 나며 뼈와 근육이 분리가 되는듯한 소리가 났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손을 놔주었고 그의 팔은 무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술은 형(型, 가타)을 가지고 있다. 기본 기술을 조합한 단순한 형에서부터 구미타치(組太刀)처럼 난이도가 다양한 동작을 조합한 형도 있다. 태권도의 품새(혹은 틀), 중국무술의 타오루(套路, 투로) 뿐만이 아니라 검도와 유도도 본(本)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무술은 고유의 형을 개발하여 교학(敎學)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형의 숙달 정도와 이른바 실제에서 효율성이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형은 실전을 추구하지만 그 자체가 실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입신던지기를 익히고 사방던지기를 배웠다고 해서 실제에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형이 실제 효력을 발휘하려면 경험있는 선배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형은 문파나 가문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자산을 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형을 익히는 과정에서 얻는 가치는 무한하다. 그러나 맹목적인 암기는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고류검술을 배우면서 스승의 모습을 닮아가려 하지만, 노력해도 안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분카이(分解)를 통해서 움직임의 미묘한 차이를 체득하게 된다. 그것은 스승과 선배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태극권 투로를 아무리 반복해도 퉤이서우(推手, 추수)를 통해 느껴보지 않으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다.

형은 누가, 언제부터, 왜 만들기 시작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경험과 철학이 풍부한 문파일 수록 형의 가치는 현실에 가깝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미학적으로 뛰어났다. 반면에 가끔 안타까운 일은, 형을 위해 형을 만드는 경우를 본다. 특히 신흥 무술에서 그런 점이 많이 보인다.

영화 액션에 어울릴듯한 동작을 형에 집어 넣으려고 하거나, 한국 전통 무술을 자처하면서 중국이나 일본의 기법을 끼워놓기도 한다. 심지어 외래 무술의 형을 이름만 바꿔 전통 무술이라는 거짓부림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고민이 없는 형은 존재의 가치와 힘을 잃어버린다. 그 형의 수련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맹목적인 형은 실전에서 공허하다. 그래서 가슴으로 감동을 주는 선배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선배들이 포진되어 훈련할 수있는 정통한 조직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키도 세계본부에서 승인하는 아이키도 한국 대표조직 (사)대한합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