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칼럼]나이에 따른 실력의 변화

<일본에서 연무, 윤준환 지도원이 고야나기 선생의 기술을 받고 있다>

무도(武道)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떼어내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제자들이 스승이 가진 실력과 철학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제자(內弟者)는 뛰어난 제자로서 선생의 기술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선생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자라는 뜻이다.

나이에 따라 표현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가령 20대에서 40대까지는 가장 활동력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예를 들자면 위 영상에서 보는 거와 같이 연무를 보일 때 선생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펼칠수 있어야 하고 제자는 안전하게 수신을 받아내야 한다.

만약 제자의 실력이 부족하게되면 선생은 제자의 안전을 생각해야 함으로 충분한 실력을 펼치지 못한다. 만약 제자가 점프를 하면서 멋있게 낙법을 하면서 선생을 돋보이게 도와주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제자가 스턴트처럼 일부러 점프를 하며 날아가는 것은 선생의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수밖에 없는 진짜 기술을 보여주고 제자는 안전하게 착지해서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다. 유투브에 올라온 호신술 영상들을 보면 말도 안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면 한쪽 손이 꺽일 때 반대쪽 손이 휴일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반격할 수 있지만 그냥 당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였다면 기술을 걸려고 하다가 펀치나 발길질로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다. 기술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을 어린이 사고 수준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기초적인 상식도 없는 기술을 호신술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아직까지 그런 사이비 호신술을 가르치는 합기도장이 많은게 사실이다. 오래 되어도 바뀌는게 없이 유도나 주짓수 같은 타종목을 섞어가며 살아남으려고 한다. 다른 무술을 이용해서 해결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합기도의 본래 모습과 깊이가 없어지고 타무술을 모방하게 된다.

합기도는 합기도만의 기술적 독창성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합기도(Aikido)를 시작하는 것은 합기도만의 기술적 독창성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쓰러지고, 던져질 수밖에 없는 기술을 펼치고 있는 상대로 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착지하고 반듯하게 세울 수 있는 수신(守身)을 훈련해야 한다. 진짜 실력있는 제자라면 스승이 마음껏 실력을 펼칠 수 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합기도는 시합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므로 안전을 위해 공격 유형을 정하고 하는 특징이 있다. 그 외에는 어떻게 기술이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미리 짜여진 각본처럼 순서를 정해 놓고 꺽으면 제자가 일부러 낙법을 해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진정한 실력이 아니고 기망(欺罔)이다.

먼저 선생의 실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게 수신을 연습하고, 위에 설명한 사이비 호신술의 잘못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술에 빈틈을 없애야 한다. 몸이 유연한 시기인 40대까지는 선생이 진짜로 던져도 안전하게 받아 낼 수 있는 실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50대부터는 기술을 펼치는 역할로서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선배가 되면 후배에게 선생이 전수해 준 기술을 가지고 여러 면에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노인(노사부)이 되면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대체로 관절이 약해지면서 움직임이 불편해지고 생각대로 안되는 것이 많다.

그런 현상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올바른 수련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앞서가는 사람이 해야하는 역할이다. 개조(開祖)는 이전에 없던 무(武)의 길(道)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다. 합기도(合氣道)는 무도의 또 다른 길(깨달음)이며 우리는 그 길에서 더 큰 깨달음을 위해 걷는다. 

선생이 마음껏 기술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생의 기술을 받고 있는 성주환 지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