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평화가 도대체 뭐냐고!”-(김다인의 수련일지)

“평화, 평화가 도대체 뭐냐고!”

짧은 인생의 화두가 항상 ‘평화’였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러 전세계를 다니고, 매일같이 명상과 몸수련을 하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 공부하며 세상 만물과 조화로운 삶을 꿈꿔도 막상 밤이 되면 가족들한테 전화해서 너무 힘들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울던 때에 우울과 같은 아픔을 세차게 겪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열심히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와서 오랜만에 쉼과 회복의 때를 보냈습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어쩌다가 아빠 승급심사를 구경하러 처음 신촌도장에 따라갔던 날 아빠가 심사보던 모습보다 마음에 많이 남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작고 단단해 보이는 한 여성분께서 상대방에 맞춰 슥슥 부드럽게 수신하시던 모습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하고 생각했었죠. 저렇게 곧은 자세와 단단한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은 뭔가 다를 것 같았습니다. 일단 멋있었어요..ㅎㅎ 그래서 수련시간에 찾아가 함께해 보았습니다. 보는것 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서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그리고 추천으로 읽게된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분의 글에서 나오는 어딘가 여유롭고 차분한 마음가짐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경험을 해오신 어른이시기에 그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습니다만은, 제 생각에 저분이 저렇게 간결하지만 무게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실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해온 수련에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바로 합기도(Aikido)였죠.

저는 모든 관계와, 세상과의 평화를 지켜야한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살려 애썼는데 막상 제가 모든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은 잔뜩 긴장한채로, 분노하고, 혼자 힘들어하면서 평화는 무슨 다 때려치고 혼자 살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자기 몸뚱아리 하나 평화를 지키는 것도 어려운데 관계의 평화, 가족의 평화, 세상의 평화는 어찌 이야기 할까요.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매일 벌어지는 조그만 갈등부터, 세대, 남녀, 이념같은 사회적 갈등부터, 기후위기와 앞으로의 인류에 대한 논의들 속에서 너무 많은 갈등이 매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 합기도란 무도는 나를 공격한 상대도 배려해야 한다니.

철학에서 느껴지는 강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궁금하고 간절한 마음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신

수련을 시작하고 제일 어려웠던 것도, 제일 재미있었던 것도 수신이었습니다. 원채 겁이 많아서 어릴 때는 구름사다리도 못타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점프해야 할 때에는 꼭 돌아돌아 안전한 길만 택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도장에서는 기술을 하려면 어떻게든 굴러야했습니다. 온전히 나를 믿고, 나를 던지는 상대방을 믿고, 푹신한 도장바닥을 믿고 휙! 선배님들의 다양한 지도와 무한한 격려, 혹독한 트레이닝 끝에 수신이 짜릿하고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합기도의 재미도 한층 더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도장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순간은 항상 힘든 순간입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헉 거리면서 몸을 일으킬 때나, 나게에게 강력하게 던져져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상대에게 붙잡혀서 기술이 풀리지 않을 때, 기술이 어렵게 느껴져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도장에서 실존하는 모습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순간보다는 끝도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련을 하면 할수록 그 고비의 순간들을 즐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숨이 차도 죽지는 않겠지~’,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아유~ 아직 실력이 많이 모자라서 그렇지~ 도장장님처럼 오래하면 한번은 성공하겠지~’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제 모습이 보일 때 참 재미있습니다. 아직도 어렵게 힘주고, 문제해결을 혼자 힘으로 하려고 끙끙거릴 때면 도장장님이 슬그머니 오셔서 ‘힘빼요~ 단순하게 움직이세요~ ’하시긴 하지만요.. 아직도 제 몸과 마음은 습관처럼 잔뜩 힘을 주곤 하지만, 그만큼 ‘아차! 힘을 빼야지’하고 생각하는 횟수도 늘어났습니다.

이런 것 뿐만 아니라 근 2년간 합기도 수련을 해오며 제 모습은 참 많이 변화했습니다. 일단 우울증은 말끔히 잊고 마음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생활에서 다른 여러가지 노력들을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열심히 한 것이 합기도 수련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제 몸과 마음을 가장 크게 바꾼 수련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뭘 하든 ‘나는 합기도인이니까’라는 마음으로 하면 없던 용기도 차올라서 참 많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밤에 어둑한 골목길 지나다닐 때도 그렇고, 친구를 사귈 때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10년 넘게 다닌 학교를 미련없이 정리한 것도, 지금 직장 입사도(곧 있을 퇴사도!) 합기도가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습니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결정하고, 그래 한번 해보지 뭐! 하고 부딪혀보고, 그 안에서 깨져도 보고, 다시 일어서도 보고, 다시 도장 와서 스트레스도 풀면서 젊은 날의 패기를 단단히 붙들어줄 쿠션같은 존재로 합기도가 있어서 참 든든했습니다.

이전이라면 이런저런 두려움으로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는데, 수련을 하면서 제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 첫 직장에서의 시작과 끝도 합기도와 함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전보다 한 주 수련량이 줄어 아쉬웠지만! 앞으로 퇴사 후에는 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선배 언니들의 합기도(Aikido) 연무

합기도의 진정한 매력은 이 수련이 결국에 ‘도(道)’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끝없이 변화하고 끝없이 할 수 있으며, 끝없이 새로워지고 나날이 발전합니다. 그저 기를 합하여 도를 이루면 될 뿐이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듯 합기도를 수련하다보면 어제 내가 가졌던 합기도에 대한 고집을 깨야합니다. 내가 인지하는 몸(신체)과 내가 모르는 내 안의 힘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그렇게 나날히 조금씩은 ‘조화로운 도(道)’에 가까워지고 있을거라 믿고 수련하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이 수련이 계속되길 바래봅니다. 초단까지 많이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초단심사 응시를 앞두고 김다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