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와 능지의 에로티즘(2-2) -조현일 에세이

인류의 진화  <출처:미래경제뉴스>

바타유는 라스코 벽화를 예술의 탄생 이전부터, 즉 인류 이전의 영장류가 의식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서 각성하게 되는 필연적인 폭력과 죽음의 이미지로 해석합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사물들을 만들고 창조하고 지속적으로 도구들을 만들고 사용하던 네안데르탈인들은 어느날 불현듯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였습니다.

돌을 깎아 만든 도구들은 시간이 흘러도 버티지만 자기들 안의 무언가는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 이 각성에서 폭력에 공포를 느끼고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고인의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라스코의 남자 표상이 사냥에서 죽음에 이른 시체이건 황홀경에 빠져있는 샤먼이건 해석에 상관없이 이 표상들은 폭력과 죽음이 선사시대 전인류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인식이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방증하고 있다는 거죠.

인류 최초의 장례 네안데르탈인 <사진출처:Brunch>

제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문학가이기도 한 바타유는 젊은 시절 사제를 희망하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1920년대 초 신앙을 버리고 파리국립고문서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의 길에 들어섭니다. 학업을 마치고 마드리드를 여행하던 중 황소의 뿔에 눈이 찔린 투우사가 죽어가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이 사건이 ‘계시’가 되어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경험하는 형언하기 힘든 공포와 전율을 자신의 철학적 주제로 삼기로 합니다.

이후 존재의 내면을 뒤흔드는 불안, 죽음, 공포는 ‘에로티즘’이라는 이름으로 바타유 사유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존재가 문화를 얻는 대신 상실한 가치의 연속성과 융합을 되찾는 주제로서의 에로티즘은 바타유의 인간이해/자기이해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폭력에 마주서는 불연속적이자 유한한 인간 존재의 연속성을 지향하는 철학적 테마를 탐구한 ‘에로티즘L’Erotisme'(1959), ‘눈 이야기Histoire de l’oeil'(1928), ‘하늘의 푸른 빛Le Bleu du ciel'(1957), ‘불가능L’Impossible'(1962) 등 다양한 저작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에로티즘이 본질적으로 폭력의 영역이며 그 결과물인 죽음은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매혹적이라는 테마를 펼쳐낸 ‘에로스의 눈물Les Larmes d’Eros(윤진 역, 민음사, 2020)’입니다.

라스코 벽화

바타유는 이 저서에서 라스코 벽화가 폭력에 의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잔혹한 에로티즘의 체험을 표상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종교적 에로티즘을 표방한 디오니소스교 시대와 에로티즘을 단죄하여 역설적으로 권력을 부여한 기독교 시대, 그리고 중세와 프랑스 리베르티나주, 20세기 현대미술에 나타나는 에로티즘 회화를 분석하며 에로티즘의 역사를 강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마지막 장 ‘결론을 대신하여’에 등장하는 ‘능지형을 당하는 중국 죄수’ 사진의 충격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무심히 넘기다가 이 사진을 보고는 재빨리 서고에 돌려놓고 화장실로 뛰어가 한참을 게워내고도 동공이 떨릴 정도로 공포에 떨면서 다시는 바타유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능지陵遲’의 이미지는 끈질기게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04년 가을, 왕웨이친王維勤은 방책이 쳐진 수레에 태워져 북양군北洋軍 병사들과 형부刑部에서 파견한 관리의 인솔을 받으며 베이징 성내에서 시작하여 선무문宣武門을 지나 남쪽 채소시장 교차로의 마지막 여정을 떠납니다. 마침내 도착한 죄수를 처형하기에 앞서 형부 관리가 범죄내역을 ‘대청율례大淸律例’가 규정하는 죄목으로 선언합니다. 율례의 범위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인 ‘능지’를 구경하기 위해 상당한 병사들과 구경꾼들, 그리고 프랑스인 사진사들이 모였습니다.

사형집행인인 회자수가 왕웨이친의 변발을 삼각대에 묶고 가슴 부위에서 시작하여 이두박근과 허벅지살을 시퍼런 날붙이로 저미기 시작했습니다. 회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능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형벌인지 잘 알고 있고 유족의 슬픔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배려의 의미로 관리가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심장을 찔러 즉사를 시켰습니다. 율례에 정한 능지형은 머리가 잘리기 전까지는 살아있어야 하지만요. 능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사지가 절단되고 팔목과 발목, 팔꿈치와 무릎, 어깨와 엉덩이의 순으로 분해됩니다.

<판화 출처:한국역사연구회> 『수호지』에 나오는 능지에 처하는 장면.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全書)』 수록, 명나라 간행).

칼질은 3300번, 신체부위는 36개로 나누도록 율례가 정해놓았기에 회자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합니다. 능지의 목적은 시체를 뼈도 추스리지 못하게 완전히 분해하여 장례도 치루지 못하게 하는 데 있죠. 모든 작업이 끝나고 회자수는 군중을 향해 외칩니다. ‘샤런러!(殺人了; 사람을 죽였다!)’ 왕웨이친은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질렀길래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까요? 대청율례는 국가가 최악의 범죄로 간주한 중죄에 대해 특별한 형벌로 처벌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율례 287조는 ‘동일한 가문 사람들을 3인 이상 살해’한 범죄는 단순히 여러명을 살해한 것 이상으로 숙원이나 복수를 의미하며, 제사를 모시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하고 하나의 가계의 명맥을 위협하는 중범죄이기에 국가최고형인 ‘능지’로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왕웨이친은 권력가인 자신에게 반기를 든 다른 가문에 군인을 동원하여 삼족을 멸하려 하였습니다. 287조가 충분히 적용될 만한 범죄였으며, 피해자의 유족들은 왕웨이친의 갈갈이 찢긴 사지를 발로 밟고 물어뜯어 분을 풀었습니다. 형법의 취지인 ‘정의의 구현과 복수의 실현’이 구체적으로 실체화된 예이겠습니다.

‘능지’는 본래 경사가 완만하여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넘어갈 수 있는 구릉을 의미하는데, ‘천천히 고통스럽게 수천 번의 칼질로 죽인다’는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죠. 과다출혈과 쇼크로 형집행이 완료되기도 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아편을 투여하여 고통을 덜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죄인들이 약물유도 엑스터시로 살짝 미소를 짓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벌어지죠. 바타유는 능지를 우리가 선사시대 이래로 잃어버린 세계와의 연속성을 되찾으려는 목적의 희생제의와 비교합니다.

후기 구석기 말기에 이르기 전까지 인류는 전쟁을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인적 살해는 있었지만, 절멸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적/집단적 대립은 없었죠. 서로 죽이는 싸움의 증거는 후기 구석기 시대 한참 이후로, 인간 사회는 이때부터 문명사회로 돌입하기까지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일단 시작된 전쟁은 집단간의 대립에서 비롯되었지만, 처음부터 물질적 이득을 위한 체계적 방식으로 행해지지는 않았으며 승자가 패자를 말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쟁 ,대량 학살의 공포

포로는 학살되었으며 아이들만을 데려와 자신의 아이들로 키웠습니다. 자신의 진영의 머릿수를 늘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문명사회로 진입하면서 개인적 살해를 금지하자 극단적인 폭력은 일상에서 멀어졌습니다. 원론적으로 인류는 19세기를 지나며 이성에 기대어 폭력의 양상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는 갑작스럽게 전인류적인 규모의 양차 세계전쟁이 이어지면서 폭력의 분출이 정당화되고 급증합니다.

바타유는 전쟁의 잔혹성이 커지고 문화적 규율이 강압적이 되어가면서 전쟁의 승자들이 누렸던 파렴치한 안도감과 위안의 몫은 줄어들었으며, 보다 빈번히 일어나게 된 대량 학살에는 오히려 양측 진영 모두에게 진창에 빠진 공포가 더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합니다. 전쟁을 기계화하면서 인간 정신은 현저히 노화되었습니다. 폭력의 세계는 이성에 굴복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폭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맹목적 난폭성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의식과 관념을 통해 얻으려 하였습니다.

바타유는 집단생활을 통해 피비린내나는 몸싸움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이 규범적으로 금지된 문명사회에 있어서의 존재의 고립과 불연속성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인 ‘에로티즘’을 존재를 소외시키는 경계를 침범할 때만 일어나는 ‘폭력을 동반하는 찢김(파열)’이라고 정의합니다. 희생 제의는 다름아닌 ‘찢김’입니다. 바타유의 에로티즘은 질서와 타협하여 신의 축복을 받는 에로스가 아닌, 종교 이전의 죽음의 불안이라는 ‘악마적’ 양상이며, 희생 제의는 죽음의 광경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에게 그 불안이 전파되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바타유는 이러한 희생제의의 폭력성이 ‘현기증 일어나는 까마득한 공포와 도취 상태’에서 현실 경계 너머의 ‘성스러움le sacre’에 눈뜨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분석하고 있죠. 이 논의를 한층 밀고나간 바타유는 수려한 문장을 동원하여 ‘지속적이지 않은 모든 것(폭력에 의한 죽음)’에 대한 이성의 두려움이 극단적 폭력 발생 순간에 느끼는 ‘종교적 황홀경과 에로티즘’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타유는 극단적인 폭력에 의한 죽음과 황홀경이 동전의 앞뒤처럼 연계되어 있는 철학적 이미지를 이용하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우리 자신의 의식이 눈을 뜨도록 종용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광기 <영화 ‘조커’ 한 장면>

폭력에 의한 죽음의 공포에의 대립항으로서의 광기, 그리고 수반되는 명징한 의식… 능지형의 사진을 분석하는 바타유는 극단적인 폭력에서 ‘전복顚覆’이라는 무한한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는 광기어린 끔찍한 폭력은 이성을 완전히 ‘전복’시켜 마치 아편에 취한 왕웨이친과 같이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메커니즘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통찰을 바탕으로 종교적 황홀경과 에로티즘이 극한의 공포라는 완전히 상반된 대립항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죠.

저는 모든 무도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 다르지 않게 극단적인 폭력, 즉 상대를 향한 살의를 형形을 통해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목검을 들었지만 날이 서있는 도검을 들었다고 상정하니 정면타건 정면베기건 무기를 들건 아니건 상관없이 공격성은 언제나 충분히 발현(상티망 뒤 부아)되며, 기술을 시전하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폭력에 대한 공포와 극복이 수반되어야만 계고(훈련)가 성립할 수 있죠.

바타유가 말하는 에로티즘적인 황홀경(혹은 전투 직전의 베르세르크의 엑스터시)은 무도의 극단적 공격성이 발현되는 순간에 우리 몸이 반응하며 아드레날린을 분출할 때 발생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선사 석기시대의 생과 사를 오가는 전투상황과 완전히 동일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공격성의 자유로운 온오프On/Off의 유연함과 강도intensity의 조정의 개입controlled violence입니다. 이러한 공격성의 조정과 개입이 전투상황의 시뮬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계고를 수행하는 무도인을 심각한 부상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세이프가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것은 자신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히지 않고 공격성을 통제하는 것이 평화의 기술이다.  -합기도(Aikido)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아이키도를 특별한 무도로 만드는 차별적인 특성
상대의 품위와 신체적 안전에 대한 배려

상대가 공격성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다른 무도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아이키도에는 기본 함의에 담겨져 있는, 배려 행위의 존재가 아이키도를 특별한 무도로 만드는 차별적인 특성이며, 바타유의 극단적 폭력에 대한 황홀경과 상대의 품위와 신체적 안전에 대한 배려가 우리 모두가 계고를 이어나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