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기여(2-2)-조현일 에세이

앞서 우리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측은지심과 동정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능력, 즉 관점 전환과 역지사지의 역능이 다름아닌 인간의 추론능력에서 기인하는 공감기제입니다. 이러한 인지적 공감은 타인뿐만아니라 동물, 혹은 더 확장되어 기계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동물권리운동에서 나타나는 반려견/반려묘를 향한 감정적인 연대와 SF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로봇과 인간과의 우정과 사랑의 테마가 좋은 예가 되겠죠. ‘마음이론’은 ‘나’라는 주체는 타인의 마음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는 철학이론입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이다보니 욕망, 믿음, 사고와 같은 타인의 정신상태의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이 전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타인의 행동이 특정 정신상태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이해하는 능력을 ‘마음이론’이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론은 나도 마음이 있고 상대도 마음이 있다는 믿음이 전제가 되는데, 이러한 근거 없는 믿음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가 20세기의 발달심리학과 현대철학에서 초유의 관심사였습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일반적인 발달과정을 거치는 3세에서 5세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거짓 믿음 테스트false-belief test’를 시행하는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이 테스트는 ‘나’라는 주체가 가지는 세계관과 지식이 타인이 가지는 세계관/지식과 충돌할 때 타인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이를 거짓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살펴보는 실험입니다. 간단히 말해 상대가 거짓말을 할 때 그 말이 거짓말임을 구분해 낼 수 있는가를 보는거죠.

대부분의 5세 아동이 ‘거짓 믿음 테스트’를 문제없이 통과하지만, 앞서와 마찬가지로, 자폐아동은 이 테스트를 쉽게 통과하지 못합니다. 타자의 행동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상대의 거짓말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대의 마음을 읽고 행동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은 인류에게 국한된 신의 선물이라고 보아도 좋을까요?

권모술수

마음이론과 같은 진화적응은 영장류를 비롯한 사회를 형성하는 군집 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진화생물학자도 있지만 아직 의견이 분분하여 정설이 세워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단순 군집 종種에서 나타나지 않는 극도로 복잡한 커뮤니케이션과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영장류와 인간은 복잡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요건들을 갖추기 위해 권모술수 전략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가설에는 상당히 힘이 실려 있습니다.

소위 ‘마키아벨리 지능가설Machiavellian Intelligence Hypothesis’이라 불리는 적응이론입니다. 영장류의 고등인지가 사회생활의 특유한 복잡성에 개체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가설로서, 개체 앞에 놓인 물리적인 문제 해결이나 먹이를 찾고 도구를 만드는 행위보다는 복잡한 사회구조가 진화압력으로 작용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생태적인 문제, 즉 먹고 자는 생존을 위한 진화압으로 고등인지가 발생하였다는 기존의 가설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마키아벨리 지능가설은 다양한 상황에서의 변화로운 동맹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서 다른 개체를 이용하고 기만하거나 보다 큰 이익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제3의 개체와 동맹을 맺어 타자의 파멸을 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포괄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타자의 감정을 공감하는 인류의 역지사지 능력은 호모사피엔스의 독특한 정신적 특성입니다. 하지만 앞서 러시아 군의 예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공감에는 작업반경이 특정되어 있어서 많은 사회 갈등이 공감 부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공감을 느끼는 내집단의 범위가 어디까지 설정될 것인가에 따라 갈등이 미연에 방지되기도 하고 첨예한 갈등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어떤 경우에는 공감의 반경을 기존의 외집단으로까지 확장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공감의 반경을 한정하여 내집단만을 향하는 경향도 동시에 작용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인류의 공감 반경은 도덕률과 인지상정에 따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혈연 선택과 호혜성, 타집단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내집단을 향한 편애 등과 같이 이타성의 적용범위를 한정하는 내집단중심주의內集團中心主義parochialism라는 압력이 작용하며, 도덕적 기초와 직관, 역겨움 등도 작동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이러한 압력을 제어하고 공감의 반경을 확장하여 지역 사회 혹은 국가 차원으로 공감을 확산하여 왔기에 문화와 문명을 성취하고 구축하였으며, 그 바탕에는 인지적인 차원에서의 공감이 작용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지적 공감이 극단적으로 확장된 형식이 ‘공리주의’라는 철학 사상으로 정리되었죠.

타자를 향한 이중차원에서의 공감(감정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은 자연스럽게 행위로 이어집니다. 주체가 감정적이건 인지적이건 상관없이 진정한 공감을 한다면 곧바로 거울뉴런이 발화되어 자발적인 행위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정의를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행위를 ‘배려’로 규정하려 합니다.

배려

진정성을 갖춘 배려가 되려면 공감이 전제조건

다만 진정성을 갖춘 배려가 되려면 공감이 전제조건이 될 것입니다. 눈앞에서 수신하는 초심자를 있는 힘껏 내던질 것인가, 아니면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부드럽게 수신할 수 있도록 속도와 힘의 강도와 높이를 상대에 맞추어 조정할 것인가의 의사결정은 우리 모두가 계고(稽古) 와중에 순간적으로 내려야하는 판단입니다.

먼저 자신의 초심자 시절 느꼈던 고통을 떠올리며 완급을 조절하는 공감은 상대의 고통에 대한 감정적인 공감이 될 것이고, 상대의 기술수준을 재빨리 파악하여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는 공감은 인지적인 공감이 될 것인데, 특히나 계고에서는 이러한 감정적/인지적 공감이 통합된 총체적인 공감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감은 서로 손목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수련이 이루어지는 아이키도의 특성상 직접적이자 순간적으로 정보화되어 상대에게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다름아닌 ‘배려’의 진정한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아이키도의 계고에서 이러한 배려의 진정한 발현과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어떠한 기술도 시전될 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저는 공감에서 그치지 않는 보다 넓은 의미의 배려는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이 필수적이라 주장하고 싶습니다. 공감은 충분히 이루어지지만 행위로 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음이론을 갖춘 인간이라 하더라도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죠. 배려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계고가 다름아닌 배려의 연습이 되겠죠.

계고(稽古 Geiko)

앞서 공감의 행위의 작용 반경을 언급하였습니다만, 이러한 배려가 도장이라는 내집단에서만 국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고를 초월하여 개개인의 생활과 외집단, 즉 직장이나 가정, 나아가 지역 사회와 국가의 보다 거대한 반경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공감과 배려의 외연적인 확산을 ‘기여寄與’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는 성인이라고 자부하며 의미있는 사회적인 기여를 꿈꾸지만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저에게 공감하고 저를 배려해 주세요. 그럼 당신은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하고 계시는 겁니다.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