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역사(2-1) -조현일 에세이

<사진:구글캡처>영화의 한 장면

우리가 오늘날 종교라고 부르는 체계의 대부분은 본래 우리 인간 삶과 터전의 영유가 다른 생명을 죽이는 폭력에 의존한다는 비극을 인정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종교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의식은 인간이 폭력의 용인이라는 불가해한 딜레마와 직면하도록 돕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고대 수렵인은 먹잇감에게 진정한 존경과 경의, 심지어 애정을 품고 수렵에 임할 때 온 힘을 다해 죽였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자신들보다 물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월등히 우월한 사냥감을 죽여왔습니다. 수렵인들은 오랜 세월 물리적으로 우월하고 사나운 동물과 사투를 벌이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걸고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에는 동료 수렵인을 보호할 각오가 되어 있는 긴밀한 유대 조직으로 발전해 갑니다. 이러한 수렵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 유대 조직이 오늘날의 현대 군대 결성의 씨앗입니다. (O’Connell, ‘Ride of Second Horseman, p.33)

물론 조직적인 수렵은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많은 역사가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조직이 가지는 감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조직 수렵에 동원되는 개개인이 사냥에서 경험하였던 강렬한, 하지만 모순된 형태의 흥분입니다. 공동 수렵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우리 뇌의 변연계가 담당하는 기능입니다.

생명이 있는 대상을 죽인다는 생각은 감정이입을 자극하고 그 결과 수렵의 습격 행동 자체가 이루어질 때 감정이입을 통한 신경 체계의 흥분상태가 조장됩니다. 이때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대량 방출됩니다. 세로토닌은 종교적 경험과 연계되는 ‘환희ecstacy’의 감각을 담당하는 물질입니다.

수렵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농경사회와 산업사회가 이어졌지만, 상당히 왜곡된 방식으로, 폭력은 자연스러운 종교활동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었던 전사warrior 집단은 전투를 거치며 동료 전사들과 강력한 감정적 유대를 경험하고 타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완전하고 순수한 이타주의를 자발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투 자체에 목적과 의미를 집중시켜 더 완전하게 ‘살아있다’는 자극적인 느낌에 도취되는 엑스터시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은 극히 부자연스러운 행위이지만 우리의 파충류 뇌와 인류의 본성에 끈질기게 잔류해 있습니다.

<사진>영화 ‘고지전’ 한 장면

‘뉴욕타임즈’의 종군기자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전쟁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힘’이라고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전쟁은 그들과 우리라는 흑백의 그림을 보여준다. 전쟁은 특히 자기비판적인 사고를 중지시킨다. 모두 지고의 노력 앞에 고개를 숙인다. 전쟁으로 인해 생기는 고난이 더 높은 수준의 선을 위해 필요할 것이라는 신념 체계가 설득력을 얻기만 하면 우리 대부분은 기꺼이 전쟁을 받아들인다. 인간은 행복만이 아니라 의미도 추구하기 때문이다.

비극적이지만 전쟁은 때때로 인간사회에서 의미를 얻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Chris Hedges, ‘War is a Force that Gives Us Meaning’, NY, 2003, p. 10)

유럽의 고대 전장에서 항상 전위부대로 선발되었던 노르드의 전사들 중에는 통제불가능한 신들림과 격노에 휩싸여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이 있었고 이들은 ‘베르세르크’라 불리었습니다. 역사가 힐다 데이비드슨은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7세의 ‘비잔틴 궁정의례서’에 묘사되어 있는 와리아기 친위대의 고트 의례와 광전사(베르세르크)의 전형적인 예라고 주장합니다. 와리아기 군은 동물의 가죽과 가면을 쓰고 출전의례를 치루었는데, 곰의 가죽ber-셔츠serk를 뒤집어 쓴 전사들의 춤이 바이킹의 베르세르크 의식과 관련성을 보입니다.

<사진> 조선일보 기사 구글캡처

베르세르크는 전투 뿐만 아니라 고된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베르세르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며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베르세르크 상태에 들어간 전사들은 몸을 떨면서 이가 부딪히고 오한을 느끼며 얼굴이 부어오르고 얼굴색이 변합니다. 이와 동시에 엄청나게 성급해지고 격렬한 분노의 광기에 빠진 베르세르크는 들짐승처럼 울부짖고 자신의 방패를 물어뜯어 씹으며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피아구분없이 베어넘깁니다.

베르세르크가 종료되면 정신이 흐려지고 무력감이 뒤따르는데, 이 후유증은 며칠간 계속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늑대나 곰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유는 적군에게 공포를 심기도 하지만 전투중 아군이 베르세르크에 근접했다고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한 표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투 광기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는 귀향군인들의 과다각성과도 비슷한 상태이죠. 이들은 뇌의 심층부에서 촉발되는 공격적 충동에 온몸을 맡기고 정신에 완전한 자유를 주는 전투의 순간에 자신이 존재의 가장 기본적이자 냉혹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으며, 삶과 죽음의 역학과 자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최전방을 지원하여 자원하는 서로 얽힌 수많은 동기 가운데 하나는 일상에서 느끼는 권태와 목적없이 흐르는 듯한 삶의 무의미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자가 수도자와 고행자가 되도록 몰아붙이는 강렬한 느낌도 이와 동일한 허기일 것입니다. ‘전쟁은 매혹적인 묘약이자 우리가 결의를 다지고 대의를 부여받는 주체이다. 우리는 고귀해진다.’ 베르세르크는 약물에 도취되었건 술에 쩔어있건 상관없이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고귀함을 강렬한 경험을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합니다.

전사가 전장에서 우주와 연결된 강렬한 감정을 맛볼 수 있지만, 잔인한 살육전 이후에 내적갈등을 해소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동족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강한 금기가 있다는 사실이 잘 입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족살해금기는 ‘종의 생존을 돕는 진화적 전략’(Il Eibb-Eibesfeldt, ‘Human Ethology’, NY, 1989, p. 405)이라는 설은 오랜동안 지배설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역사의 시작과 함께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전쟁에 군인들을 내모는 군주들은 전투 행동을 적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신화로 미화합니다.

<사진출처>크라우픽

이제 전장에 나가 살육해야 하는 적이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며 질서와 선에 맞서는 존재라고 믿기 위한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 육군 준장 마셜S. L. A. Marshall과 역사학자 팀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근접전투를 목격한 4백 개 이상의 보병 중대 소속 군인 수천 명을 면담했습니다. 보병대원 가운데 적을 향해 직접 총을 쏠 수 있었던 사람은 15%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그 행동을 피하려 했으며, 들키지 않고 빗나가게 하거나 재장전을 하는 복잡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Lt. Col. Dave Grossman, ‘On Killing; The Psychological Case of Learning to Kill in War and Society’, NY, 2009, pp. 3-4)

문화사가 조애나 버크Joanna Bourke는 능률적인 군인이 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는 호된 입문의식을 치루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개인은 분해되어 능동적/능률적 싸움꾼으로 재조립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교의에는 비인격화, 제복, 사생활 부재, 강요된 사회관계, 빡빡한 일정, 수면부족, 군의 관례에 따른 재조직화 의례로 인한 방향감각상실, 자의적 규칙, 엄한 처벌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크는 야만화 방법은 사람들에게 죄수를 고문하라고 가르치는 체계와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Joanna Bourke, ‘An Intimate History of Killing; Face to Face Killing in Twentieth Century Warfare’, NY, 1999, p.67)

전장에 나가 죄의식없이 싸우기 위한 군인은 자의건 타의건 자신이 마음 속에서 괴물화한 ‘적’과 동일한 정도로 비인간적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괴물화한 적과 동일한 괴물화한 군인(전사warrior)은 맥락에 따라서 혹은 대중의 태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쟁을 찬양하는 문화의 틀 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월남전 참전 장병들이 귀국하여 괴물화한 자신의 인격에 스스로 파탄에 빠지거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배척된 사례가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전사는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더럽고 오염된 공포의 대상입니다. 영웅인 동시에 두려워해야만 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필요악이 되는 겁니다.
<2-2에서 계속>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

윤준환 편집장
대한합기도회 사무국장 및 대한합기도회 중앙도장 도장장 2013년 러시아 월드컴벳게임즈 한국대표로 참가 세계본부도장에서 내제자 생활을 했음 ※ 중앙도장 위치 ※ - 서울시 동작구 사당로 28길 6 (3층) - 4.7호선 총신대입구(이수)역 9번출구 도보 3분거리 - 수련문의 : 02 - 3444 -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