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무리수 –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9) – 完

– 후 기 –

 

 

「러시아 삼보(Sambo) – 한국 삼보」, 「영국 복싱(Boxing) – 한국 복싱」, 「프랑스 펜싱(Fencing) – 한국 펜싱」, 「태국 무에타이(Muay Thai) – 한국 무에타이」, 「일본 공수도(空手道) – 한국 공수도」, 「일본 유도(柔道) – 한국 유도」…

 

이런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어떻게 러시아 삼보와 한국 삼보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국내 사이비 합기도인들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유독) 합기도는 일본 것과 한국 것이 있다!”라면서…

이제는 아예 ‘한국형 합기도’라는 의미에서 K-Hapkido라는 용어까지 만든 모양이다.

사이비 합기도계에 자기 반성과 자정(自淨)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이번에 글을 쓰는 동안 떠오른 비유가 있다. 바로 ‘티눈’이다.

(왜 하필 티눈이냐는 생각에 대체할만한 것을 한참 떠올려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티눈이 오래돼 뿌리가 굵고 깊어지면 그만큼 통증을 느끼는 부위도 점점 넓어진다.

그렇다고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 전체를 잘라내려고 했다가는 생살을 찢어서 피가 철철 흐르고 만다.

이럴 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뿌리 주변에 티눈약을 발라서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 피가 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먼 곳에서부터 뿌리 쪽으로 굳은살을 깎아 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굳은살이 떨어진 자리에 새살이 돋고, 뿌리는 점점 작아진다. 통증도 서서히 약해진다.

하지만 치료의 최종 목표는 뿌리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뿌리를 완전히 도려내야 티눈이 재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이비 합기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이비 합기도는 수십 년 동안 거짓 정보를 만들고 유포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뿌리가 깊음).

또, 선의든 악의든 사이비 합기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과 수련 인구가 꽤 많다. 도장도 웬만한 동네마다 들어와 있다(환부가 넓음).

그러다 보니 전국에 있는 사이비 합기도 도장의 간판을 당장 내리게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직간접적으로 사이비 합기도를 통해 사회적 지위나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생살을 찢어서 피가 흐름).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사이비 합기도가 말하는 ‘두 개의 합기도, Hapkido와 Aikido, 한국형 합기도’ 등의 궤변에 단호히 대처하는 동시에 사이비 합기도인과 일반 대중을 향해 바른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티눈약을 바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다 보면 사이비 합기도 계에서는 양심적인 이탈자가 생기고, 진짜 합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대중도 점차 많아질 것이다(티눈이 말랑말랑해지고, 굳은살이 떨어지고, 새살이 돋고, 뿌리가 작아짐).

 

 

그렇다면 사이비 합기도 문제에서 ‘티눈의 뿌리를 뽑는 것’에 대응하는 결과란 무엇일까.

이것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사이비 합기도 단체가 수십 년 동안 만들어 온 기술체계와 조직을 그대로 지키고 싶다면 무명(武名)을 바꾸는 것이다. 사이비 합기도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무명을 찾아서 독립해 나간 선배들이 있으니 그 양심과 용기를 본받으면 된다.

 

둘째, 도저히 合氣道라는 간판을 포기할 수 없다면, 나머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짜 合氣道(Aikido)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술 체계, 도복 같은 외형은 물론이고, ‘合氣道는 한국의 전통 무예’라는 잘못된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사이비 합기도인들에게는 이 기준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식으로 어중간하게 타협하는 것은 그럭저럭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발에 난 티눈 뿌리를 남겨둔 채 치료를 중단하는 것과 같다.

 

어쩌면 무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합기도의 정체성과 무명(武名) 논쟁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철인28호

< 왜 같은 合氣道끼리 싸우는 거지? >

 

하지만 둘 중에 하나는 분명 가짜다.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나는 사이비 합기도 단체가 『삼일신고』를 들먹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글을 썼다.  앞으로도 사이비 합기도계의 반응과 변화를 지켜볼 생각인데,  크게 이 안에서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1.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삼일신고』를 사이비 합기도의 수련 이념과 원리 부분에서 뺀다 (대신 다른 옛날 경전을 찾아 내용을 가져다 붙일 가능성이 높다.).
  2. 내 글에서 지적한 대로 오류를 수정한 다음,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만약 그렇게 한다면 정말 뻔뻔한 일이다.).
  3. 지금 교본 내용(틀린 글)에는 오류가 없다고 강력히 변호한다(그럴수록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 텐데…).

 

사이비 합기도 쪽의 대응을 보면서 필요하면 후속 기사를 쓰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번에 연재를 하면서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사이비 합기도 측의 오류를 새로 인식하는 수확도 있었기 때문에 자료 조사와 준비 기간을 거쳐서 새로운 글로 돌아올 것이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대한합기도회 관계자 분들과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完>

 


 

<2019.4.5. 바로잡습니다>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1)~(9)」는 잘못된 글이다. 위서(僞書) 또는 위서 논란이 있는 자료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글을 쓴 결과였다. Hapkido계 원로의 생각과 말이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달라서 이를 지적했던 것인데, 돌아보니 경솔한 행동이었다.

 

(1)편에 언급한 것처럼 「삼일신고」가 위서 논란이 있는 경전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제목과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글을 쓰던 당시에 나는 「삼일신고」의 진정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과 무관하게 역사학계에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진위를 검증한 자료도 함께 모으고 있었는데, 이때는 기존 입장을 바꿀 만큼 확실한 것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설령 「삼일신고」가 위서라 하더라도 담고 있는 내용은 소개할만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이 안일한 생각이 잘못이었다. 지난 2년간 추가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누가 어느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각 경전의 내력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합기도신문의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에서 모두 다루기는 어렵다. 다만, 오해나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글의 주제였던 「삼일신고」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만 몇 가지 언급한다.

 

– 「삼일신고」는 대종교*가 창교할 때부터 핵심 경전으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종교에서는 「삼일신고」가 창교자 나철에게 전래된 경위를 ‘1906년에 어느 노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소개한다. 학계에서는 「삼일신고」를 나철(또는 나철이 중심이 된 창교 주역들)의 창작물로 이해한다. 포교와 교육 목적으로 새로 만든 경전에 종교적 신비감을 부여하는 최초의 작업은 여느 신흥 종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종교가 단군교와 분파되었다가 이후 단군교를 비롯해 단군을 숭배하는 종교의 신도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받아 「삼일신고」의 내력이 크게 윤색되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는 ‘「삼일신고」가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부터 전해졌으며, 어느 사서(史書)에 그 존재가 기록되어 있었다. 「삼일신고」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위대한 정신이 담겨 있다.’는 본문 내용은 무시하시기 바란다. 모두 잘못된 정보들이다. 한편, 여전히 「삼일신고」를 신뢰하며 해설이 궁금한 분이라면 본문을 그대로 참고하셔도 좋다. 내력의 진위와 상관없이 본문 해설은 현재 유통되는 것들 중에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해 옮겼기 때문이다.

 

* 1909년 1월 창교할 때의 이름은 단군교였고, 1910년 8월에 교명을 지금의 대종교로 개칭하였다(두 시기는 자료마다 양력·음력 표기가 다른데, 여기서는 대종교에서 공개한 연혁 자료를 따름). 나철이 교명을 바꾼 이유는 창교 초기부터 교단에 친일인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으며 이들이 내분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책이나 문서의 형식이나 체제, 성립, 전래 따위에 관한 사실,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을 서지(書誌)라 하고, 서지 사항을 조작한 것을 위서라고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삼일신고」도 위서에 해당한다. 「삼일신고」를 위서로 본다고 해서 「삼일신고」를 신봉하는 단체 안에서 이 경전이 차지하는 상징성, 권위, 의미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일신고」는 그저 대종교의 창교 정신과 목적에 맞게 창작되었고, 그에 맞게 쓰였을 뿐이다.

 

***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이름이 바뀔 때 창교 멤버 중 하나였던 정훈모는 이에 반발하며 기존 이름을 고수한 단군교로 분파하였다. 이후 대종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총본사를 만주 지역으로 옮겼고, 정훈모의 단군교는 친일 인사를 대거 받아들여 국내에서 활동했다. 조선총독부는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종교 단체가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 대종교와 단군교 모두 탄압했다. 대종교는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덕에 그나마 세력을 보전할 수 있었던 반면, 단군교는 내분과 지속적으로 세가 약화되다가 1936년 7월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따라 해산된다. 그 결과 단군교를 비롯해 해산된 종교의 신자들이 대종교로 유입되었다.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삼일신고」는 대종교, 「천부경」은 단군교, 「참전계경」은 태백교의 경전이었다. 대종교가 예전에는 서로 다른 단체에서 사용하던 세 가지 경전을 ‘계시경전(啓示經典)’이라고 하며 현재의 근본 경전으로 삼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 Hapkido 단체가 Hapkido의 시작을 최용술의 등장 이전으로 끌어올리려 하거나, 합기(合氣)의 원리를 「삼일신고」 같은 경전에서 찾던 경향이 근래에는 보이지 않는다(워낙 문제가 많아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폐기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러한 경향이 살아있던 때에 작성된 Hapkido 자료와 지한재 선생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잘못된 정보를 작성·유포한 것에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 늦게라도 실책을 인지하고 바로잡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도 글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면 바로잡고, 경과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 남기겠다고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