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무리수 –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3)

– 합기(合氣)의 원리를 『삼일신고』에서 찾으려는

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시도는 왜 잘못된 것인가 –

 

■ 『삼일신고』는 어떤 경전인가

 

『삼일신고(三一神故)』는 우리나라에 유교, 불교, 도교, 기타 종교와 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고유의 심신 수행법, 선도(仙道)의 원리가 담겨 있는 경전이다.

신시 배달국(神市 倍達國) 시대에 환웅 천황의 명으로 우리 민족의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성인의 가르침을 옛 글자로 적은 경전인데, 황제가 이것을 가지고 직접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본문은 366자이며,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 필자(정성진) 주 : 신시 배달국은 고조선이 계승했던 나라로, 18명의 환웅이 1,596년간 다스렸다고 전한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학계와 사회의 통념은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사와 관련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념대로라면 『삼일신고』도 위서(僞書)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고사 논란에서 한발 비켜서서 『삼일신고』의 내용 자체에만 집중해서 보면 좋겠다.

 

기록에 따르면 옛 글자로 쓴 『삼일신고』는 전란으로 사라졌지만 다행히 고구려 시대에 한자로 옮긴 것이 있었고, 훗날 대진국(발해)을 세운 대조영(大祚榮)이 동생 대야발(大野勃)에게 명해 복원한 한자본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삼일신고』의 판본은 1) 발해석실본, 2) 『신사기(神事記)』본, 3) 태소암(太素庵)본,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 1)과 2)는 대종교(大倧敎)를 통해서, 3)은 위서(僞書) 논란이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해서 전수되었다.

  • 세 가지 판본은 일부 글자나 문구의 위치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글자 수(366자)와 내용은 똑같다.
  • 『삼일신고』가 대종교 초대 교주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홍암 나철(弘巖 羅喆, 1863~1916) 선생에게 전수된 경위(클릭)

 

 

 

■ 『삼일신고』의 성격과 내용

 

한편, 『삼일신고』는 ‘지금의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하느님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은 왜 타락했는가, 그리고 인간이 본성(本性)을 회복해 인간완성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사상서, 철학서, 신학서의 성격을 가진다.

 

우리 민족의 창세 신화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기운이 한없이 맑고 성정(性情)이 순수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감(五感)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본래의 순수함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본성(本性)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였고,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깨우치며 수행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합기도가 아무리 좋아도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이 생기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먹고 살기 바빠지자 사람들도 수행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었다.

 

이런 세태를 가만히 볼 수 없었던 왕이 『삼일신고』를 통해 “백성들이여. 당신 안에 깨달음의 씨앗이 있다. 수행하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수행은 귀찮은 것이어서 사람들이 습관을 쉽게 바꾸지 않으니까 살살 꼬셔보기도 한다.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우리 모두 신령스럽고 거룩한 하느님을 봬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빠지는 이유와 과정을 원리로 설명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제시해 준다.

 

 

 

■ ‘하느님 신’을 알아야 한다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삼일신고』 를 보면 독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꼭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삼일신고』의 제목과 본문에 나오는 모든 ‘신神’ 자는 본래 ‘하느님 신’ 자인데 고어(古語)여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귀신 신(神)’으로 쓸 것이다. 이제부터 『삼일신고』에서 ‘신(神)’ 자가 나오면 아래 사진에 나오는 ‘하느님 신’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하느님 신(브레인미디어)

< 출처 : 브레인미디어 >

 

하느님 신

< 인터넷 한자사전에 나오는 ‘하느님 신’ >

 

 

이 ‘하느님 신’을 잘 이해하려면 동서양의 종교관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먼저 서양은 신과 인간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신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는데,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주지만 자신을 믿지 않거나 거역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벌을 내리는 경외(敬畏,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의 대상이다. 인간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동양은 신이 인격체로서 어디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본다.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 따라 꽃이 피었다 지고, 만물이 성장∙소멸∙순환하는 우주의 법칙 그 자체를 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 동서양을 비교하면 대체로 그렇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 ‘하느님’, ‘하나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서 믿는 신(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을 떠올릴 테지만, 사실 이 땅에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느님’ 신앙이 존재했다.

 

우리 조상들은 온누리의 조화를 주관하는 법칙을 하늘에 빗대 ‘하느님’, ‘한님’, ‘하늘님’, ‘한얼님’ 등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성품(神性)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바르게, 그리고 꾸준히 수행하면 누구나 신성을 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에게 신은 무작정 복을 빌거나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마땅히 하나 되어야 할’ 인간완성의 지향점이었던 것이다. 이 인간완성의 경지를 신인합일(神人合一), 성통공완(性通功完) 등으로 표현했는데, 바로 『삼일신고』에 신인합일, 성통공완에 이를 수 있는 수행의 원리가 담겨 있다.

 

『삼일신고』 해석에 들어가면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할 텐데, 이것을 기독교의 신(여호와)으로 오해해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를 자주 봐 왔던 터라 예방 차원에서 조금 길게 설명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