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절

출처:겨울왕국 한 장면
출처:겨울왕국 한 장면

 

1부,  70%로 살기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용과 싸우는 ‘왕자’라니..

맙소사!!!

보자마자 알았다. 저건 거짓말이다.

 

뭐 지금처럼 인터넷만 뒤지면 공주의 외모를 볼 수 있던 시대도 아니고.

공주가 미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좀 배운 왕자의 지적 수준에서 모를 일도 아니고.

용, 드래곤이라고 하면 초능력, 육체적 능력, 마법까지

그야말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와 ‘돈 많은’ 왕자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현실적 동기를 너무 설명하지 못 하고 있다.

‘공주’라는 단어가 설명하는 것은 ‘부자’라는 것 뿐

같은 부자인 왕자가

드래곤과 싸우는 미친 모험을 하면서 갈구할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뭐 그 전에 ‘사랑하던 공주를 용이 납치해 감’ 이라는 전제가 깔리면 모를까?

왕자가 ‘드래곤 뒤에 있는 공주’를 원한다는 것은 진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중, 고등학교 때 즈음이었을 듯)

 

만약 ‘드래곤과 목숨을 걸고서라도 공주를 구해내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왕자가 아니라, 가난한 기사였겠지.

‘공주’라는 신분은 돈을 보장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부터였나 보다.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어쩐지 참 비참한 일이었다.

–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라.

이런 말은 그게 제일 빨리 돈 버는 길일 거야..라는 말로 들였다.

가정을 해보자.

내가 평생 펑펑 쓰고도 남을 돈이 있다면,

뭐 동화 속에 나오는 (정쟁도 없고, 국제 정세의 변화 등의 위험도 없이)

그냥 평화롭고 부유한 귀족의 자녀였다면 말이다.

목숨을 걸고 최고의 검사가 되는 수련을 하고 싶었을까? 해야 될까?

밤을 새워가면서 회계, 법률의 전문가가 되려하고 있었을까? 하려고 할까?

 

‘최고의 경지’란 그런 것이다.

나머지 모두를 포기해야만 가질 수 있는 그런 경지.

칼 한 자루로 초능력,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운동장보다 더 큰

드래곤의 목을 따버리는 것이 목표인 검사를 상상해 보라.

회계니, 악기니, 과학이니 따위에 눈 돌릴 여유 따윈 당연히 없다.

 

그즈음에 나는 이미 깨달았다.

전문가라는 논리는 가난한 자들의 논리였구나.

진짜 부자라면 교양인이 되지 전문가에 목숨 걸지 않겠구나.

 

아쉽게도 나는 가난했고, (뭐 지금도 가난하지만)

일정 수준의 경제적 능력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내 능력의 70프로로만으로도 생계는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귀족의 자녀들처럼 풍족하게 다양한 분야를 누리고, 즐기고, 배울 수 없더라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의 30프로쯤은 먹고 사는 것 이외에 소비하자.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30%쯤의 시간은 낭비하고 살자.

뭐 이런 것이었다.

 

한 순간의 충동적 생각이, 아주 오랜 시간 쌓이면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고, 그 자체 그 사람의 일부가 되나 보다.

 

여전히 그러하다.

이제 최선을 다하려고 해도, 최선을 다할 수가 없다.

절박하려 해도, 절박해지지 않는다.

 

출처:네이버
출처:네이버

 

2부,  탐욕의 시절에 들어서다.

70프로만으로 살아야 하는 내게 당황스러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IMF를 즈음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단지 외국자본의 유입이 본격화 되었다를 넘어서,

문화가, 사회적 의식이 급격히 배금주의로 흐르기 시작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나는 것은 어느 공중파의 새해 인사다.

‘시청자 여러분 새해에는 모두 부자 되세요’

이 멘트를 공중파에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당혹감과 유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모두들 아쉬워하던 돈, 그러나 입에 직접 담기에는 뭔가 캥기는 듯한 느낌

허세로라도 돈에 관심 없는 듯 한 말투를 써야 했던 불편함을 위트 있게 뚫어주는

그 인사말은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받았다.

나도 그 인사말이 좋았다.

어색하긴 해도, 솔직한 듯한 느낌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기폭제 같은 느낌.

 

문제는 그 기폭제가 아주 폭발적이었다.

농담처럼 말하던 돈 얘기 (물론 속으로는 본심)가

점점 자연스럽게 진지하게 말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엔 노골적이게 되고,

노골적인 것이 당연시 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지 않다.

 

부동산 ‘투기’라는 단어가 이 시점 즈음에

부동산 ‘투자’라는 단어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 1, 2년쯤 두 단어가 같이 사용되다가 3년차 즈음엔 ‘투자’가 된다.

이제 1가구 2주택이 숨길 일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추천해 줄 일이 된다.

(이전에는 박통, 전통 때조차 ‘투기’라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해서 지인에게도 쉬쉬 하며 몰래 아파트 투기 했었다.)

숨겨둔 돈이 많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재산이 많은 것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멘트가 히트를 칠 당시만 해도 그랬다.

낯선 사람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충고를 했을 때,

– 저 사람 뭔데 저런 충고를 해?

라고 물으면

– 어디어디 교수님이야.

이런 식의 답변이 그 사람의 말에 설득력을 주곤 했다.

(물론 내가 그런 답변에 납득했던 성격 좋은 놈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IMF에서 10년쯤 지나고 보면

– 저 사람 재산이 **억이야.

라고 하면, 듣던 사람들이 납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돈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 온라인에서 통장 잔고로 자신의 말에 권위를 보여주는 모습은,

뭐 우습지도 않다.

벌써 십년도 훨씬 전부터 그런 거였다.

그 사람의 재산이 그 사람 말의 권위를 보장해 주는 시대였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돈 벌기에 올인 하기는

이제 십 수년 전보다 훨씬 가치가 높아졌다.

내 통장의 잔고는, 내 재산의 평가액은

실제의 나보다 훨씬 많은 평가를 안겨다 준다.

 

출저:구글, 경남신문
출저:구글, 경남신문

 

3부,  그리고 각자도생의 시절이 왔다.

 

내 느낌으로는 4대강 사업으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이다.

아찔할 만큼 빠른 속도로 개인적 욕망의 시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돈이 숭배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돈이 문화와 제도를 다시 뒤덮기 시작한다. 당당한 모습으로!

철도도, 수돗물도 민영화를 해야 돈이 된다고 한다.

그 돈이 국민의 돈이 될지, 어느 개인의 돈이 될지,

어느 집단의 돈이 될지 따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돈이 되니까’ 민영화라고 말한다.

IMF 시절 ‘한시적’으로 도입한다고 하던 비정규직은 이제 사회의 지탱점이 되고,

파견근무제, 아웃소싱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라고 말한다.

유연한 고용, 성과연봉제 등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제도가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고 한다.

어느 곳에 있어도 언제라도 짤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해고의 염려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9급 공무원 시험에 몰려드는

수많은 공시생들이 대변하는 지금 시절의 모습 속에는

회사나 조직에서의 역할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지켜줄 수 있는 윗사람들을

쳐다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믿을 것은 돈과 권력뿐이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감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일의 가치와 의미, 책임과 의무 등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모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벅차고, 그것이 가장 높은 가치가 된다.

100퍼센트를 쥐어짜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시대.

개인의 욕망이 사회와 조직의 윤리를 넘어서는 시절이 지금이 아닐까 한다.

4대강 사업의 수주를 맡은 기업들은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아우성이다.

나라 돈은 무한정 들어갔는데, 공사는 부실하다고 난리인데,

막상 그 일을 한 회사는 손해를 받다고 하니 중간에 돈은 어디로 갔을까 싶다.

 

공중파의 시청률은 나날이 떨어져 간다.

뉴스도, 드라마도, 예능도 점점 재미가 없다.

낙하산 인사로 영입된 이사가

시청률이 검정도 안 된 새로운 예능에 도장 찍을 일 없다.

그냥 기존 예능프로 시청률 유지하면서,

나를 이 자리에 앉혀준 사람과 내가 다음에 옮겨가게 될 자리를 위해서

지금의 자리를 이용하다가 곧 떠난다.

회사는 적자라도 경영진은 흑자인 채로 다음 회사로 떠나면 된다.

당장 부대의 전투력을 올리는 것보다 퇴임 후의 돈벌이가 더 걱정인 누군가는

부실한 국방장비를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

희대의 다단계로 자수성가(?)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누군가는

지금 그가 가진 조 단위의 재산으로 인해 여전히 법과 경찰을 잘 피해서

살고 있거나 잘 죽어있다.

(생사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

배임이어도 되고, 사기이어도 되고, 불법도박이어도 된다.

‘현재 자신이 가진 돈’이 가장 많은 혜택과 안정감을 주는 시절이다.

각자 도생의 시절이라 할 밖에.

부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개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사회,

서로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개인의 욕망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고,

위협에 시달린 이들은 더욱 날카로워 지고, 더 노골적이 되는.

모두가 내 가족을 위해서

숨 가쁘게 돈을 쫓고, 개인적 욕심에 매달리기에

오히려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는 더욱 불안해지기만 하는 그런

시절에 살고 있는 듯 하다.

 

1234-078

 

4부,  한 걸음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

 

어느 날 ‘먹고 산다’는 문제에서 조금 더 물러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 뿐인데,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아이키도 도장을 찾았다.

이상한 세계가 있었다.

드래곤에게 잡혀간 공주를 구할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단련하는 이들.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닌데 더 강해지려고 하는 이들.

더 강해지고 싶은 데도 누군가를 넘어서고 싶으면서도

스승에게 예를 다하는 이들.

후학을 지도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를 단련하는 이들.

오로지 자신의 증진에 순수하게 관심을 갖는 이들의 세계와 문화는

내가 알던 세계와는 너무도 달랐다.

드래곤이 없으면 시합이라도 만들어야

누가 더 쎈 지 확인하고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합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수련하고, 때로 연무하는 것만으로도

누가 더 많이 노력을 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고,

같이 수련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문화였다.

반드시 정해진 시합, 시험을 통해서 승패를 가려야만 공정하다는 식의

세상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어쩌면 아주 낯선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도 낯설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러하다.

단 한 번의 시험이나 시합의 결과가 더 많은 진실을 보여주진 않는다.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보아 온 이들이 있다면

시합에서의 한 번의 실수가 기량의 부족인지,

기량에 관계없이 벌어진 일인지를 더 잘 판단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시합이나 시험 따위 없어도

늘 함께 해 온 경험 속에서 그 사람의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이들에게 어느 한 순간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목표하는 곳은 훨씬 높은 곳이어서,

지금 승리나 패배에 관계없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니

지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스승을 공경하고 제자를 존중한다는 정말로 신기한 현상도 있었다.

어릴 적 동화책이나 만화책에서나 봤을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사라졌을 법만 세계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의 선생님이 있고, 그 선생님의 선생님이 있다.

직계가 될 수도 있고, 직계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잘 정리된 계보에 의해서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고

서로 존중한다.

누가 더 쎈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서로의 기술과 경험에 대한 것들을 더 궁금해 한다.

해외에서 초빙한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초빙된 선생님은 세미나에 참가한 이들을 고마워한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고,

자신의 위치에서의 예를 지킨다.

웃긴 이야기이다.

어느 회사이든, 공조직이든 누구나 다 말하는 문화지만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조직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좋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니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도 않을 것이고

때로는 누군가를 뛰어 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이들도 없지 않을 텐데,

조직의 문화와 분위기가 이런 행동들을 절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유로는

남들 위에 선다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직위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기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키도에는 돈이나 권력 같은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육체, 기술, 기량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다.

비교하고, 승부를 가르기 위한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있고,

물질적 이익에 관계없이 존경하고, 존중받는 예의가 있다.

그래서 좋다.

살벌한 각자도생의 시절에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가꿀 수 있고,

이를 함께 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이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하는 곳에서 지켜야 할 나의 자리, 역할이 있다는 것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이곳에 있는 이들은

탐하지 않아도 게으르지 않고,

싸우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아도 멸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빛나 보이는 이 소중한 분위기가

각박한 세상에 큰 그늘로 있어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