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 명칭 형성과정

합기도 개조(開祖)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시연모습

이번 글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배운 다케시타 이사무씨의 일기와 1926년 전후의 우에시바 개조에 대한 활동을 통해서 ‘합기도’라는 명칭이 년도 별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와세다 대학의 시시다 후미아키씨의 1992년 무도학연구 논문과 그 외 자료에 올라온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1883년 12월 14일 우에시바 모리헤이 와카야마현 타나베에서 태어남

1902년 19세 때 사업을 하면서, 아사쿠사에 살고 있던 기토류 사범 도바리 다키사부로 문하에 들어가 고류 유술을 배움. 동시에 간다 이이다마치의 신음류 도장에서 검술 배움.

1906년
 이후 야규류 나카이 마사카츠 사범의 도장에서 고류유술을 배워 면허를 취득

1907년~1909년
24세부터 26세 때, 아버지가 자택에 세운 도장에서 다카기 기요이치 씨로부터 강도관 유도를 배웠음

1913년 우에시바의 대동류유술 선배인 사가와 네노키치가 다케다에게 배운 기술을 기록한 노트에 <합기를 건다>라는 말이 보이고 있어 대동류 유술에서 합기라는 말이 기술적 의미로 쓰이고 있었음. 사가와 네노키치는 다케다 소가쿠가 죽기전 종가 자리를 이어받은 사가와 유키요시의 아버지 임.

대동류합기유술 부흥의 조(祖) 다케다 소가쿠의 시연모습

1915년 2월 북해도 엔가루(遠輕)에서 신문기자인 요시다 고타로의 추천으로 다케다 소가쿠를 만남

1920년 3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야베로 이주. 자택 일부를 개조하여 도장을 열고, <우에시바숙>이라고 이름 붙임.

1922년 우에시바가 아야베에 있던 당시 스승인 다케다 소카쿠와 그 아내가 아야베에 와서 반년 동안 있었음. 우에시바의 권유로 다케다는 대동류유술에서 대동류합기유술로 호칭을 바꾸게 됨.

“우에시바가 오랜 옛날부터 전래된 언령학을 연구하는 데 몰두, 자신의 무술을 뒷받침해줄 정신성을 탐구한 끝에, 언령의 기성, 기식, 기합에 근거하여 기심체 일여의 경지를 지향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종래의 무술인 <대동류 유술>에도 더욱 정신성을 부여할 것을 제언하였는데 소카쿠 또한 그 뜻을 살펴서 여기에 새로이 <합기>라는 말을 더하게 되니, 다이쇼11년(1922년) 처음으로 <대동류 유술>을 고쳐 <대동류 합기유술>이라 호칭하기에 이르렀다.” “바꿔 말하면 오늘날 말하는 <합기>는 모리헤이의 언령학 연구로부터 생긴 것으로 이해된다”(깃쇼마루 1982년<합기술>)

8월에 목록<합기유술 비전오의> 수여, 같은 달 ‘대동류합기유술 교수대리’ 자격부여. 이때 처음으로 <합기>라는 단어가 사용됨.
-우에시바 깃쇼마루 탄생,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정식으로 ‘합기무술’ ‘우에시바 합기무술’로 호칭하기 시작함. <합기>는 종래 항간에서 쓰이고 있던 <합기>라는 말과는 본질적으로 뜻하는 바가 다른 새로운 해석을 주장(깃쇼마루 저, 합기술)

만주 오지에서 수행

1924년 41세 때, 만주와 몽고의 오지로 나감.

1925년 해군 대장이었던 다케시타 이사무 씨가 12월 1일부터 우에시바에게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유력자인 친구(군 장교, 장관 이상, 작위 수여자, 기업가, 황족들)에게 추천하고 견학시키며, 제자로 입문시키고, 후원자로 만듬. 이 시기에 ‘우에시바류’ ‘우에시바 합기술’으로 호칭하기 시작함.

1926년 아야베에서 도쿄로 상경

1927년 대본교 데구치 오니사부로의 권유로 “오로지 무도가로써 살아갈 것을 결의하고” 가족 모두를 도쿄로 옮김, 당구장을 개조한 도장에서 각계 명사를 지도하기 시작

1928년 우에시바 후원자 다케시타 이사무 씨에 의해 동호회인 <상생회>가 만들어지고 2월부터 상생류 합기유술이라고 칭하면서 대동류로부터 독립

1929년 6월 14일의 <합기무술 간담회>(참석자 약20명)에서 <합기무술>이라는 명칭이 선언되었음.

1931년 다케시타 등의 조력으로 전문도장, 황무관(皇武館, Kobukan) 도장개설을 위해 자금이 모임, 지금의 신주쿠에 탄생한 황무관 도장은 현 합기회(合氣會,Aikikai) 본부도장의 전신.  이 당시에 “술”에서“도”로 눈을 뜸에 따라 “~도”라는 명칭이 알려지기 시작

1936년 무도계에서 창시자로써 실력과 명성이 높게 평가받으며 그의 기심체(氣心體)와 독창적인 신기는 무도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정식으로 <합기무도>로 호칭

1942년 ‘합기무도’라는 명칭을 고쳐 정식으로 ‘합기도’라고 하였음. 전쟁 중에 이아마에 은신, 싸우지 않고 투쟁을 해결한다는 무도를 완성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수련과 기도의 나날에 몰두

1943년
 ‘아오모리’에서 디케다 소가쿠 84세로 타계. 숨을 거둘 당시 그의 아들인 다케다 도끼무네와 제자인 야마모토 가꾸요시가 함께 임종을 지켜보았다.

현 신주꾸 위치에 자리잡은 ‘재단법인 합기회’ ‘합기도세계본부도장’

1947년 황무회 재단이 합기회 재단으로 재편성

1948년 2대 도주인 깃쇼마루의 노력에 의해 ‘합기회’가 재단법인으로 인가

1969년 4월 26일, 합기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타계

1976년 국제합기도연맹 총회 개최

1984년 국제합기도연맹 GAISF 회원 종목으로 승인

현 합기도세계본부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