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달인 나카츠 헤이자부로우

『대동무』에 실린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온 이가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 최용술)가 분명하다고 기술하였다. 서술 내용을 살펴보건데, 상당 부분 허구로 추정된다. 그 일례로 다케다 소카쿠(武田惣角, 상게서에서는 미나모토 마키요시(源正義)로 표기)의 어록(語錄)에서 발췌하였다고 하는 내용을 소개하였다.

​”우리 집안 3대가 이은(이어온) 大東武*를 네가 잇는 구나…….”

“‘大東武’ 야와라는 본래 너의 나라 것이었다.”

“내가 죽거든 너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북(한나라)으로 가라.”

“네가 대(代)를 이으면 암살을 면키 어렵다.”

“네가 죽으면 大東武의 대(代)가 끊어진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제자, 너는 나를 닮았어······.”

또 合氣道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가 다케다 소카쿠 선생에게 거금 1만엔을 내놓으면서 대동류합기유술을 달라고 했다는 글이 있다. 다케다 소가쿠 선생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돈으로 사겠다고 말했다는 것처럼 기술하였다.

홋카이도 개발단장으로 가있던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다케다 소카쿠 선생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북해도 신문기자인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郎, 대동류 교수대리)라는 사실은 대동류 쪽과 합기도 쪽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대동무라는 이 책에서는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 최용술)가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다케다 소카쿠에게 소개해 주었다고 하며 요시다 아사오를 일본 대동류 쪽에서 요시다 고타로라고 바꿔 놓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케다 소카쿠는 대동류합기유술 종가(宗家)의 대(代)를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최용술)에게 주었기 때문에 요시다 아사오에 의해서만 종가의 대를 이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요시다 아사오를 요시다 고타로로 바꾸고 사진에서 얼굴을 지워 이름과 함께 그 흔적을 지워 버림으로서 대동류합기유술이 한국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위 글에서 흔적을 지웠다는 사진에 대해서는 우연하게도 이번에 새로 나오는 비전(4월호)잡지에 지워진 얼굴의 인물에 대한 특집기사가 나왔다.

요시다 아사오의 흔적을 지웠다고 하는 사진의 주인공이 비전 4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 표지에는

『발견! 다케다 소카쿠 – 우에시바 모리헤이 직전 “알려지지 않은 달인” 나카츠 헤이자부로우의 대동류합기유술』 이라고 나와 있다.

‘대동무’라는 책에서 특별히 사실이라고 할만한 내용을 나는 찾지 못했다.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가 사실처럼 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에시바 모리헤이와 다케다 소카쿠 선생이 처음 만났을 때 최용술씨의 나이가 11세(15세? 기록이 정확치 않음) 였다. 그당시 30대 였던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10대였던 최용술이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다케다 소카쿠가 가르치는 강습회에 참석한 최용술씨가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보고 “선배”(일본에서는 ‘선배’나 ‘선생’ 단어 그 자체가 존칭이다)라며 인사 하는 것을 봤다고 하는 글이 격투기 관련 책에 기술되어 있다. 또 최용술 선생이 다케다 선생에게 모쿠로쿠(目錄)나 교사면허 같은 자격증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고 10일씩 치러지는 강습회에 한번 참여한 기록만 있다고 한다.

다케다 소카쿠 선생은 신문기자인 요시다 코타로(吉田辛太郞)에 의해 북해도에 활개를 치고 있던 야쿠자와 낭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다케다 소가쿠를 오게 해야 한다고 시장에게 간청해서 불러오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 북해도 개발단장으로 와있던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신문기자인 요시다 고타로에게 부탁해서 다케다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다케다 소가쿠가 북해도 온가루라는 시골에 와서 묵었던 곳이 호리카와 야스무네(堀川泰宗)가 운영하던 히사다 여관이었는데 야스무네는 대동류에서 유명한 호리카와 고도(堀川幸道)의 아버지다. 여관에 다케다 선생이 찾아왔을 때 그의 유명세를 알고있었던 야스무네는 선생에게 대동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다케다 소카쿠(武田惣角)

이후 여관 한쪽에 다다미 18개를 깐 수련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다케다 선생은 2년동안 대동류를 지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스무네는 친구였던 사가와 네노키치(佐川子之吉)와 함께 배웠다고 한다. 네노키치는 일본의 마지막 달인으로 소개되고 있는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 선생의 아버지다. 유키요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다케다 선생의 합기를 경험했다고 밝힌바 있다. 때는 1915년(大正, 다이쇼4년) 2월로 사가와 선생이 10살 무렵이다.

그때 북해도 개발단장으로 온가루에서 멀리 떨어진 시라타기라는 곳에서 살고있던 우에시바는 신문기자인 요시다 고타로(나중에 극진공수도 최영의 총재에게 대동류를 가르친 선생)의 추천으로 다케다 소가꾸 선생을 만나서 시라타기에서 온가루까지 통학을 하며 배웠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다케다 선생은 죽기전 사가와 유키요시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의 종가(宗家)의 대(代)를 이어 주게 된다. 사가와 유키요시는 후에 다케다 선생의 아들 도키무네(武田時宗)에게 종가를 되돌려 주었다. 대동무 책에서는 최용술씨가 다케다 소카쿠로 부터 종가의 대를 이어 받았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