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후기]바다 위에서 둥실둥실, 아이키도-김정윤

저는 지난 10여 년간 특정한 마음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아이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우리’라고 표현하는 상태인데, 마치 바다 위에 온 몸을 맡긴 채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과 같은 상태의 마음입니다. 우리 엄마, 우리 학교, 우리 나라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안온함, 이 시공간에서 완전히 안전하다는 확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믿고 기댈 수 있는 상태 말이죠. 저는 ‘우리’가 마음의 실상이며, 이런 상태에서 우리 안에 잠재된 생명력이 온전히 꽃피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래는 2010년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만들었던 영상 과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제가 찐 공대생인 남편에게 ‘우리’ 감각을 설명하려 애쓰고 있네요.

내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거 되게 좋아하잖아. 일단 아무런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바다에 들어가면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곳까지 헤엄쳐가. 그러면 사람이 엄지손가락만하게 보이거든. 사람들은 거의 안 보이고, 나밖에 없고, 그런데 바다가 되게 깊잖아. 발이 안 닿는 데까지 가는 거야. 그럼 거기 가면 파도가 잔잔해지거든. 파도가 많이 안 치고, 그런데서 내가 하늘을 보고 눕는 거지, 大자로. 그러면 안에 물소리가 이렇게 이렇게 들리고, 하늘도 보이고, 해도 보이고, 물고기가 아래에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또 내 무게가 전혀 안 느껴지잖아. 그러면서 내 모양에 따라 물도 모양지어지고. 그리고 나는 공기와 물 사이에 딱 있는 거야, 그 경계에. 근데 아무 것도 나눠지는 느낌이 아니라 다 날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좋다고.

그러면 내가 나뭇잎 같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그 때 얘기했잖아. 바람 불면 나뭇잎이 한 번 올라가는데 그건 나뭇잎이 올라가고 싶어서 올라간 게 아니라 바람이 불어서 올라간 거잖아.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서 내가 되게… 안에 있는 느낌이 들어. 모든 것의 안에 있는 느낌. 그거는 오빠랑 소파에서 내가 오빠 무릎에 다리를 올리고 누워있을 때 오빠 다리랑 내 다리랑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 그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랑 약간 비슷해. 그래서 나는 온 가족이 몸을 척 걸쳐 놓는 걸 좋아하잖아.

‘다큐멘터리, 민족지학, 그리고 리서치’ 수업 과제 영상 中

Richard Misrach: Untitled(July 26, 2013, 5:21PM), 2013

이제 신촌 도장에서 본격적으로 아이키도를 수련한지 1년 10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저는 아이키도가 ‘우리’ 상태를 표현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동영상을 우연히 클릭한 이후 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지요. 독일 베를린에서 아이키도를 가르치고 있는 울리케 제라크(Ulrike Serak) 6단이 등장하는 아래의 영상을 발견한 겁니다(구글 알고리즘 스릉흔드!).

(10분 35초부터)

영상의 종반부, 울리케는 도장을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있는 호숫가로 향합니다. 옷을 훌훌 벗고 호수 한 가운데까지 헤엄처간 그는 몸의 방향을 ‘전환’하여 하늘을 보고 누운 채로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아이키도는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도 물론 그랬고요. 아이키도가 없었다면 제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키도와 선불교 명상(Za-Zen)은 내면에 영향을 준다고 믿어요. 그것의 심리학적 영향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몸과 마음의 영적인 프로세스를 깊이 알아볼 수 있죠. 아이키도에서 당신은 타인과 굉장히 즉각적인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 더 잘 배울 수 있게 되죠. 어두운 본능이나 강점 같은 것들이요. 당신의 성격의 여러 층위를 이해하게 되어요.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해서 그것들은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아이키도는 당신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하고,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저는 이것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길(道)이라고 생각해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진인(眞人)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성격의 껍질을 벗겨내는 거죠.

진인이 어떤 뜻이냐고요? 저에게 그것은 내 자신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고 그것을 운용하는지 묻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동물과 어떻게 함께하고, 어떻게 환경을 경험하는지, 내가 모든 것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생명, 즉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는지 말이죠. 내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객관적이고 에고(ego)에 기반한 관점으로 관찰하는지 묻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에고에 기반한 관점은 사라지게 됩니다.

<Aikido for everyone>, Ulrike Serak 6단 인터뷰 中

신기하게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키도를 수련하면서 내 마음속 관점을 ‘전환’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도처럼 온갖 마음이 일어나도 저는 그것과 대립한 채 괴로워하는 대신 시선의 방향을 바꿔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현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됐지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선의 방향을 바꿔 찰랑거리는 마음의 바다 위에 냅다 내 몸을 누입니다. 파도가 일어나면 그 위에 눕고, 또 일어나면 또다시 그 위에 눕습니다. 그렇게 바다 위를 부유하는 존재가 되어 저절로 되어지는 불완전한 세계 위에서 둥실둥실 떠다니기. 이것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마음속 파도는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일어났다가 사라지죠.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평안합니다.

신촌도장 김정윤(매거진 에디터 / 펠든크라이스 프렉티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