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착각과 자기기만(2-2)-조현일 에세이

그리스 로마신화 ‘이카로스’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을 것이니라.’

사회의 도덕적 권위자들은 언제나 오만과 기만을 경계해 왔습니다. 성서는 자기기만을 경멸하고 오만을 대죄로 취급하며 오만을 부리지 않는 자가 지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을 것이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오만을 금기시하였습니다. 오만한 이카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 깃털이 녹아 추락사하였습니다. 이후 계몽시대의 시인 볼테르는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음흉한 해악이라 비난합니다.

20세기에 들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에이브러햄 매슬로와 같은 정신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자기기만을 정신적 결함으로 규정하고 치료와 교정의 대상으로 못박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저물며 이론이 아닌 실제로 환자의 심리와 행위를 담당하던 임상심리학계의 전문가들은 이전 시대의 심리학이 교과서대로 실제 임상에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발견합니다.

깊은 좌절을 겪은 뒤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들, 심각한 문제를 안고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대하며 슬기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연인과 배우자와 삶의 동반자를 얻고 삷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모두 ‘낙관적인 자기기만’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1970년대의 임상심리학 연구자들은 실제적인 통계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타인을 더 잘 돕고, 더욱 지적이며, 문제적 상황을 보다 잘 통제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는 실증적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의 실패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좋은 결과와 성공을 훨씬 쉽게 기억해 내었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높게 자신의 성공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철학자가 미덕으로 삼았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추고 ‘낙관적인 자기기만’을 지양하는 도덕적 인격자들은 절망 이후에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시달리며 일상을 힘들어하고 좌절을 겪고는 회복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이리하여 임상심리학계의 권위자들은 1970년대 말 자신들의 이념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 ‘기만’이라는 용어를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꿉니다. 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자기기만’은 작업 수행과 절망과 좌절에 대한 회복에 보다 유익하다는 사실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스스로, 의식적/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기기만’ 행위는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과연 괜찮을까요? 심각한 뒷탈이 있거나, 자기기만에 의해 자기모순에 빠져버리거나, 자가당착으로 무대포같은 인간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요? 자, 여기서 어감을 조금 조정할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거짓말’이라는 말 대신 ‘이야기fabulation’ 혹은 내러티브와 같은 용어를 사용해봅시다.

방향바꾸기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거는 (실상과 다른) 이야기의 디테일과 방향을 살짝 바꿈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수집한 드라마틱한 결과물을 ‘방향바꾸기Redirect’라는 저서로 풀어낸 버지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팀 윌슨Tim Wilson에게 물어본다면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미래에 대한 적응을 방해하는 행위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작은 ‘자기기만(거짓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윌슨과 같은 긍정심리학자들의 노력으로 90년대에는 드디어 심리학계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저널인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보고서’에 긍정적인 마음가짐의 미덕이 명문화되기에 이릅니다. ‘별 근거는 없더라도 막연하게 자신의 미래가 낙관적일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혜택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낙관론은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게 해주며,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불어넣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북돋우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동물의 사회라고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어찌되었건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 사회 이외에는 확실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박쥐들의 사회를 아무리 열심히 관찰한다고 해도 확실히 이해하는 건 근원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박쥐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 인간으로 사는 방식에 국한하여 이야기한다고 해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있는 듯합니다. (정글의 삶도 가혹할 것입니다.)

경쟁

심지어 요즈음의 초등학생들도 세상이 근원적으로 냉담하고 치열하며 가끔 가학적이기도 하고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할 수 있어야만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터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기는커녕 상당한 운이 필요하고,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 명을 상대로 피튀기는 경쟁을 해야 하며, 질병과 재해와 같은 자연의 무자비함에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종국에는 철저하게 존재가 부정되고 파괴될 운명이라는 기정사실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주장을 저서에서 인용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밀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거짓말 혹은 자기기만이 살벌한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목적과 목표를 추구하며 노력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이러한 역경 속에서 가끔 우리에게 우연한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긍정심리학의 권위자인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을 사사한 심리학자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저서 ‘그릿(김미정 역, 비지니스북스, 2016)’에서 개인의 성공은 재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자기절제, 그리고 목표달성을 예측할 수 있는 역량에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과 기업가와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십여 년을 연구한 더크워스는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끈질긴 투지grit가 성공의 열쇠라고 결론내립니다.

밀러의 주장과 살짝 결합하여 정리해보면, 더크워스의 ‘그릿’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목표에 맹목적으로 뛰어들게 하고 역경과 좌절에 맞서서 정면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게만 본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혹은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이 ‘능력’은 까놓고 말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결함’에 다르지 않습니다.

계속 노력해 나갈 수 있는 투지와 끈기가 필요하다

다름아닌 긍정적인 착각이죠. 그러니까 이들의 용어들을 뒤섞어 다시 정리해보면 긍정적 착각을 가지는 사람이 역경과 좌절을 경험한 뒤 목표를 상실하고 우울해 하며 낙담하여 염세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려는 목표가 성취되리라는 증거가 하나 없는데도 계속 노력해 나갈 수 있는 투지와 끈기.
누구에게나 역경과 좌절은 벽장 서랍 속의 빛바랜 사진첩처럼 잊을만하면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극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향한 약간의 긍정적인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짓말이 그리 죄악은 아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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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