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키도 수련 후기 – 이창희 3단

이창희 (대구초심도장, 공무원)

세월이 15년 넘게 흘렀습니다. 수련을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채우지 못하였는데 세월은 그저 강물처럼 흘러, 이제 회사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거실에서 자는 대학생 아들놈의 허벅다리를 만져보니 저보다 훨씬 튼실합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늦은 나이로 아이키도에 입문하여, 하얀 띠를 매고 넘어지는 것과 입신 전환 회전 등의 보법과 허리 세워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왜소한 저의 몸놀림에 도장장님은 무기술을 10년 해보고 그만두든 계속하든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약골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출생 한 달도 안 돼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리는 의성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대구의 한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삿짐을 풀고,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가 죽지 않고 숨을 쉬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합니다. 어릴 때 로터리 부근에서 동무와 길을 걷다가 까닭도 없이 한쪽 무릎에 굉장한 통증이 오면서 길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낯선 아저씨가 괜찮다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말을 듣고 통증을 참으니 괜찮아졌습니다. 지금 그 아저씨는 어디 메에 계실지. 술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동무와 놀다가 팔도 여러 번 빠졌습니다. 저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밤을 끙끙 앓으며 다음날 어머니를 따라서 침(?)놓는 집에 가서 치료받고는 했습니다. 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학교 정문 앞에서 교복을 입은 누나들이 팔던 소년동아일보에 실린 만화, 구멍가게에서 팔던 롯데 껌 만화, 동네 만화방에서 김기백 화백의 만화 등을 탐독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 친구의 집에서 최배달 선생의 만화 일대기를 보며, 어렴풋이 무도 수련에 동경하는 생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때 밥을 제때 챙겨 먹지 않아서 그런지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 무렵 객혈을 했고, 교정의 벚꽃이 필 무렵 학교 건강검진에서 결핵이 심하다는 보건소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약은 무료로 받아 복용했지만, 영양제는 사 먹지 못해 그 서러움은 바람에 띄워 벚꽃의 분분한 낙화에 실리어 보냈습니다.

고류검술 훈련

운동에 소질은 없으나 이래저래 좋은 인연으로, 아이키도와 고류검술을 수련하다 보니 어느덧 머리에는 벌써 서리가 반 내렸습니다. 근래 관절과 체력의 한계라는 엄살이 늘어 열정은 잦아들었지만, 평생 아이키도와 고류검술과 동행할 작정이오니.

지금도 어설프지만 처음 입문해서 배울 때, 도장장님이 어떤 동작을 설명하셔도 도장을 찍듯 바로 그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었고, 동작을 비슷하게 흉내는 내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가끔 나중에 깨닫게 되는 이해가 스스로 깨달았다는 만족감에 도취하기도 하는데, 실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 이전에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는 사실. 아이키도와 고류검술은 꾸준하게 몸으로 체득되어야 비로소 나중에 이해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여 동작의 의미를 몰라도 운동에 소질이 없어 바로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익혀가고자 하는 항심(恒心)이 수련에서 중요한 듯합니다.

아이키도 수련 후 도복을 수의로 삼아 죽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코로나 판정을 받았습니다. 입사 후 가장 긴 휴식을 취했습니다. 처방 약 복용 이틀째 밤에는 자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들기도 하여, 아이키도 수련 후 도복을 수의로 삼아 죽고 싶었습니다. 딸내미가 아빠 돈 더 벌어야 한다는 말에 정(情)이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뒹굴어도 개똥밭이 신선계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성경 출애굽기에는,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자손들이 뒤에서 애굽(이집트) 군사가 추격해오자 모세를 원망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차라리 애굽의 노예로 살았으면 광야에서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땅을 치며 모세를 원망하며 절망합니다. 고대 자유민들은 자유의 대가로 직면하는 전쟁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예들은 전쟁에서 열외인 대신 노동의 질곡에 묶였던 것 같습니다.

자유, 검을 든 무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이키도와 고류검술을 수련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무사의 자유의 양면성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면에 은연중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검 한 자루가 현실 세계의 속박을 부정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상징이기를. 물질의 한계 너머의 이데아에 닿게 하옵기를. 선후배님들과 바라옵기는 반백 머리가 올백이 되고 눈썹마저 흰 서리가 올 때까지 아이키도와 고류검술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신촌 본부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