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기]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초단 심사를 준비하며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는 늘 운동장 구석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떨기 바빴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운동과 친해질 기회도 의지도 가져보지 못했지요.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뿐이라는 농담이 제게 딱 들어맞았습니다.

큰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퇴행성 허리 디스크 관련 증상으로 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하반신이 마비될 정도로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시술과 물리 치료 이후 다행히 마비 증상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완치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즉각 경고에 가까운 신호가 오곤 했고요.

평생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근력을 키우고 자세를 교정하는 운동을 찾아 헬스장과 각종 체육관을 기웃거렸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허리가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습니다만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곳저곳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다녔던 곳은 헬스장이었습니다. 나름 자세와 요령을 익혀 집에서도 꾸준히 근력 운동을 했습니다. 몸에 힘이 붙고 가동 범위가 넓어지는 걸 보며 기쁘기도 했습니다만 운동 싫어하는 성격은 변하지 않더군요. 허리에 경고등이 켜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만 겨우겨우 운동을 하며 버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다른 운동을 찾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년, 아마 30대의 마지막 가을이었을 겁니다. 소위 ‘헬스’라고 불리는 신체 단련 방식의 도움을 크게 받긴 했지만 도무지 재미를 붙이지 못해 곤혹스럽던 참이었습니다. 중량과 횟수, 식이 제한, 신체 사이즈와 인바디 측정의 굴레 속에서 늘 스스로를 다그치는 느낌으로 운동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활력을 얻기보다 오히려 서서히 지쳐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해 보니 도무지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도(道)’라고 끝나는 운동입니다. 검도, 유도, 태권도, 합기도, …… 이름에 도(道)라는 거창한 글자가 붙은 걸 보면 필시 신체뿐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우습기도 합니다만 그때는 나름 절실해서 그랬던가 봅니다.

대한합기도회 안양오승도장

당시 어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곳에 꾸준히 다닐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집 가까이에 성인이 운동할 수 있는 도장이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때 발견한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안양오승도장입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집에서 도보로 1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키도’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지만 집에서 가깝다는 장점이 컸기에 곧바로 방문 약속을 잡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문의 전화를 드리고, 아이키도 도장에 처음 방문했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첫 방문인데도 선생님께서는 ‘운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오세요’라고 하셨고, 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하얀 도복을 입은 다른 분들 사이에 섞여 엎어져 뒹굴고 있었습니다. 긴 상담도 인바디 측정도 연회비 할인 이벤트 소개도 없었어요. 그저 같이 움직이며 똑같이 한 시간 운동을 하고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몸의 구석구석을 모두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첫날의 강렬한 체험(?)을 마치고서, 아이키도라는 이 생소한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인지 결정할 일이 남았습니다. 다소 당혹스럽긴 했지만 생각보다 격렬해 보이지도 위험해 보이지도 않아 안심이 되었습니다. 운동하시는 분들의 표정도 밝아 기분이 좋았고요. 무엇보다 앞으로 뒤로 구르고 나니 ‘아, 내 몸에 이런 부위가 있었지’ 새삼 달리 보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몸의 구석구석을 모두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입회 결정을 하고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신기한 마음에 자주 출석을 하고 싶어 애를 썼지요. 그러나 살림과 육아를 도맡고 있는 입장이라 평일 저녁 시간을 비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 퇴근이 늦어 아이들 봐줄 사람이 없을 때, 식구가 아플 때, 양가 대소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집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에는 어린 아이들 걱정에 외출 자체를 삼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욕심만큼 도장에 자주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개인적으로 수련 일기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날그날 수련 내용과 느낌을 적어 개인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엇서한손’이 뭔지 ‘오모미’가 뭔지 아는 용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초심자의 눈으로 본 수업은 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신기한’ 것들이었고, 일기는 물음표로 가득했습니다.

도장 예절과 용어, 기본자세를 익힐 즈음이 되니 수련 일기에 한탄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눈이 뜨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기술을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저 멀리 앞서가는 선배님, 선생님들의 동작을 보고 나면 제 동작은 바람 빠진 풍선 인형의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갈 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져서 가끔은 힘이 쭉 빠지기도 했습니다.

힘이 빠질 때 선생님과 도우분들의 격려에 자주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매일의 수련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며 등을 토닥여 주셨습니다. 한참 마음이 무거울 때 <무도의 가치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근심을 덜기도 했습니다. 아이키도라는 운동을 예전의 다른 활동들처럼 수행 역량의 성장이라는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성숙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구나, 조급한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승단을 허락받고자 애를 쓰고 있는 지금은 덕장에 매달린 황태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노랗게 말라가는 황태와 지금의 제가 어딘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이키도 실력이 늘지 않아 근심했다가 어느 날은 이제 조금 알겠다며 기뻐하고, 이내 또 다른 벽에 부딪혀 끙끙대다가 출구가 보이는 것 같으면 또 반가워합니다. 이런 제 모습이 예전에는 한심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리라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노랗게 잘 마른 황태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서 참으로 귀한 음식이 되지요. 저도 그렇게 잘 익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성적이고 겁 많은 아줌마가 아이키도를 배운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일단은 아이키도가 뭐냐고 되묻는 경우가 가장 많고요. 간략하게 설명도 하고 영상도 보여주면서 소개를 하면 무섭지 않으냐, 위험하지 않으냐 재차 묻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위험한 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게 되는데요. 선생님과 도우분들을 만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익히 느껴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함께 수련하는 도우의 심사 모습

승단 심사를 앞둔 지금, 조금은 아득합니다. 익힌 것보다 미처 익히지 못한 것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새삼 스스로가 부족해 보이고요. 그러나 초단 승단은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고들 하십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더욱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스스로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차분히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늘 듣는 말씀처럼,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매일의 수련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 09. 15.
안양오승도장 / 송 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