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사와 관계맺음(2-2) – 조현일 에세이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3,31 ~ 1650,2,11)


문화는 곧 기술이며, 도구는 곧 문화가 됩니다.

카프는 자신이 논리 (혹은 기존 철학계에게는 궤변) 전개를 그치지 않고 밀고나가며 기존의 철학 거장들의 반석처럼 단단하게 구축된 철학사유들에 날카로운 칼날을 겨눕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내적 반성과 성찰이 자기 인식의 방법론이라고 주장하며 근대철학의 인식론을 구축하였지만, 카프는 데카르트의 반성과 성찰이 실체가 없는 공허한 사유라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테크놀로지는 자연적인 신체기관의 복제물의 제작활동이며 인간이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자기 성찰과 반성이 아닌 외부적인 객관화의 물질화, 즉 완성된 ‘도구’라는 결과물을 통해서만 자아인식이 가능하다고 역설합니다.

데카르트적 시공간 연장(시공연속체時空連續體) 내부의 대상에 대한 사유와 고찰은 고립되고 상실되지 않고 언젠가는 자신이 지나온 궤적을 되밟아 인간의 문제로 회귀하게 마련입니다. 마치 검술의 교학체계인 수파리守破離의 연쇄고리가 무한히 반복되듯 화두가 인간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사유와 고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데카르트가 기획한 철학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는 명언에도 나타나듯이 자연의 모든 사물에 대한 사유의 주체는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그저 자연적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인간의 의식은 자신의 외부를 자신의 내부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유를 하여 자신의 현존재가 다른 현존재와 구별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기의식을 고양시킵니다. 이 내용은 중학교 철학수업(당시에는 ‘도덕’ 수업이라 불리었습니다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배운 내용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나면 관념이 주인공이 되어 인간의 ‘신체’라는 유기체와 이를 둘러싼 물질세계는 사유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맙니다. 자기의식의 과정에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사유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인 영혼과 자아를 다른 인간의 영혼과 자아와 비교하는 과정만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인간의 육체 조직과 물질계를 배제한 관념적 사유는 카프가 말하는 자연과 인간과 인간의 도구를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인간의 개념과는 대척점에 서 있죠. 신체 존재의 확신으로부터 자신을 인식한다는 카프의 ‘재인식 과정’도 빠져 있습니다. 카프는 자기파악과 노동을 통해 신체의 존재를 확인하고 도구를 통해 자신을 재확인하는 과정만이 총체적 인간 존재의 확신으로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앞서 언급하였듯이, 문화는 곧 기술이며, 도구는 곧 문화가 됩니다. 문화가 순수한 인간 정신의 객관화의 추상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신체의 투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어와 국가 체제도 모두 신체의 확장적 표현형이라는 거죠.

이제 앞서 제시한 신체 기관의 ‘투사投射projection’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투사’라는 용어는 대포 탄환을 의미하는 ‘투사체(프로젝타일projectile)’과 같은 어원을 공유하지만, 건축과 비지니스 사업도 ‘프로젝트’라고 부르듯이, 밑그림을 그리는 기술, 즉 ‘계획’과 ‘기획’이라는 부차적인 의미도 가집니다. 신체의 외부 대상에 대한 감각의 관계를 설명하거나 표상 형성과 관련하여 심리학자는 이 용어를 내적인 대상을 외부로 옮기는 행위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 손으로 흔적을 만들고 기존의 사물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사물을 생성하는 존재입니다. 손가락으로 과일을 따고 주먹으로 딱딱한 코코넛 껍질을 때려 깨고, 이빨로 가죽을 물어뜯고, 두 발로 중심을 잡으며 걷는 등의 행위를 하기 위한 인간의 숙련은 인간의 조상인 원시인이 적대적 자연환경과 거대 야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발한, 삶을 위한 투쟁을 벌일 수 있도록 부여된 물리적 신체조건의 증거입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뇌가 발달한 인류는 투쟁을 위해 필요한 신체적 강점보다는 조화로운 정신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진화는 방향성이 없으니 그저 인간은 이렇게 진화해 온 것 뿐 정신 발달에 특화된 진화의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구글서치 천랑성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맹수의 특징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도구, 특히 무기의 개발이 기여하였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어찌되었건 인간의 맹수적 기능은 도구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빨은 언어기관이 되었고 할퀴고 뜯는 손톱과 발톱은 오히려 손가락과 발가락을 보호하는 덮개가 되었으며 직립자세를 통해 개체들이 서로 얼굴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교적인 생활방식으로 변모해 왔습니다. 또한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개개인이 발명해 낸 새로운 도구의 형태를 설명하고 개념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인간의 손을 들여다 봅시다. 기관투사의 가장 직접적인 예가 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도구로서의 손의 구조와 움직임으로부터 손을 모방한 인위적인 도구가 탄생하였습니다. 손은 손바닥, 엄지손가락, 손가락으로 분절되면서 펼친 손, 잡으려는 손, 펼친 손가락, 모은 손가락, 접은 손과 뻗거나 굽은 전체 팔뚝의 근원형식을 가지며, 돌을 쥔 손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손과 팔의 뼈의 강도 이상의 재질을 도구화하여 손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강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손을 모방한 첫번째 도구는 돌망치였습니다. 망치가 주먹으로부터 형상화되어 손톱과 앞니의 형상과 복합되어 도끼로 진화했습니다. 날카로운 손톱의 검지는 기술적으로 복제되어 송곳이 되었습니다. 평평한 치아는 줄과 톱으로 복제되었으며, 움켜쥐는 손과 여닫는 치아는 집게와 모루로 표현되었습니다. 망치, 도끼, 끌, 송곳, 톱, 집게는 손을 복제한 초기의 원시 도구로서, 국가 사회 문화의 성립에 기여한 기관의 근원복제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용방법이 익숙해진 사용자는 이 도구로부터 자기인식의 과정을 거쳐 신체와 정신을 확장하였습니다.

이스탄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칼들, 사신으로 왔던 사무라이의 장비와 칼 그리고 유럽의 칼, 이슬람의 칼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가 주목하는 대목은 ‘칼’의 발명입니다. 다른 도구들이 모두 신체 기관과 근친성을 가지는 반면, 인간의 신체에 ‘칼’을 닮은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칼은 도구를 사용하는 와중, 특히 도끼를 사용하다가 도끼의 날을 날카롭게 갈아 때리거나 자르는 동작이 아닌 ‘베는 동작’을 추상화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신체의 기관 투사가 아니라 추상적인 정신 투사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칼은 다시 인간의 인식에 피드백을 발생시켰을 것입니다.

도구는 기관의 본질적 특성과 모양과 움직임을 직설적으로 모방할 수록 조작이 더 쉬워지는 반면 칼은 그 반대의 피드백이 걸리는 관계로 도구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 도구(무기)입니다. 들어올리고 자르고 두드리고 돌리는 운동을 위해 손이 자신의 특성에 따라 대상을 다루게 되면 대상은 형태와 반발력과 팔과 손 운동의 특성에 순응하여 손과 팔이 가하는 작용에 맞추어 반응하게 됩니다. 이러한 손과 칼 사이의 재귀적인 피드백은 결국 대상과 기관 사이의 일치를 이루어냅니다.

개코원숭이는 돌을 집어 던지고 막대기를 잡고 때리기는 하지만 언제나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는 단순한 동작만을 보이며 행위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칼을 든 인간은 찌르고 휘두르고 때리는(斬) 도구로부터의 피드백으로 베는(斷) 동작을 만들어내면서 이 동작을 정신의 확장형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칼을 발명한 인간은 칼을 사용하는 자기인식 과정을 통해 칼의 형태를 오늘날의 타치의 형태로 계량해 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칼로부터 정신을 향한 재귀적인 영향을 불가피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칼은 인간 정신의 표현이자 자기인식의 도구이며, 나아가 재귀적 인식, 즉 끊임없는 관계맺음의 대상인 것이죠.

칼은 인간 정신의 표현이자 자기인식의 도구이며, 나아가 재귀적 인식, 즉 끊임없는 관계맺음의 대상

이제 우리가 계고 중 칼을 뽑기 전에 예를 취하고 납도를 하고 다시 예를 취하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이 망치, 끌, 가위가 아닌 ‘칼’이라는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며 정신과 육체와 무기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고, 우리는 이 관계에 예를 표합니다.

이전 승단심사후기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우리가 도장에서 예를 표하는 대상은 배려와 감사의 대상인 수련인 서로간이기도 하지만, 도장이라는 공간과 자기자신, 그리고 개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예이기에, 자신이 스스로 손에 들고 있는 무기와 도장, 무기와 자신, 그리고 무기와 상대의 무기 간의 관계에 대해 예를 표함으로써 이를 자기인식의 계기로 삼는 기회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의 표현은 유물론적이거나 관념론적이라는 범주를 떠나 자신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맺음’에 대한 확인이자 찬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키도 이가라시 도장(合氣道 五十嵐 道場)

 

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