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이가라시 선생의 신년사

이가라시 카즈오 8단 선생

“루틴”이라는 말은, 럭비의 고로마루 선수가 한 독특한 동작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의미는 “습관적인 동작”이라는 것. 배우도 무대에서 얼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사람 인(人)’을 쓰고 삼킨다고 합니다. 또 스포츠 선수나 스모를 잘 관찰하면 모두 각자 독특한 “루틴”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수련 전에 정좌해서 하는 묵상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루틴을 하면서 긴장감이나 들뜨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시합의 이미지를 머리 속과 몸 안에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단어로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사전에 시간을 들여 영감이나 이미지를 반복해 떠올려 자신의 마음 속과 몸 안에 그림을 그려 넣어,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모판의 오오요코즈나 하쿠호가 2017년 나고야 대회에서 은퇴 회견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코즈나 스모선수로서 문제가 된 오오제키 쇼다이와 한 시합에 대해 “나는 모래판에 오르기 전날부터 대전 상대와 어떻게 싸울지를 과거에 싸웠던 경험을 토대로 머리에 떠올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쇼다이와 한 시합만은, 몇 번을 시뮬레이션 해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쇼다이의 강렬한 타격과 밀어붙이기를 튕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합 당일, 모래판에서는 시작선에서 모래판 끝까지 맞붙기로 했습니다. 시뮬레이션한 대로 쇼다이와 간격이 생기고 그의 강렬한 타격과 밀어붙이기를 간신히 피해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품격이 요구되는 요코즈나 스모”에 대해 질문하자 “요코즈나는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래판에서는 독해집니다. 하지만 모래판을 벗어나면 순둥이 요코즈나가 됩니다.”라고 진지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승부사의 말입니다. 그리고 잡지 인터뷰에서 요코즈나로서 제일 알찼던 때에 대해 묻자 “대전 상대가 너무 잘 보여,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서울강습회에서 지도하고 있는 이가라시 선생 모습

프로야구 자이언츠 팀을 일본 시리즈 9연패로 이끈 가와카미 테츠지 감독도, 현역 절정기 때에는 “투수가 던지는 공이 멈춰 보이고 공의 실밥이 보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와카미 테츠지 선수는 내가 어릴 적에 가장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였습니다.

합기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님도 “검의 달인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그리고 권총도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흰 구슬이 총알보다 먼저 작은 돌처럼 날아 오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위기 상황에 놓이면, 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뇌가 고속 촬영 상태가 되어, 실제보다 체공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지게 되고, 그만큼 관찰 능력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요코즈나 하쿠호나 가와카미 감독, 그리고 우에시바 선생님이 체험한 것은, 위에서 말한 상태가 몸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12월 중순, 스웨덴에서 열린 월드컵 모글 경기를, 우연히 TV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보았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남녀 모두 일본인이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특히, 여자 금메달은 십수년 전에 우에무라 아이코 선수 이래 처음으로, 17세의 고교생입니다. 그렇게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점프나 턴을 하면서 빠른 스피드로 타고 내려오는 경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나도 젊었을 때 스키를 조금 타봤지만, 당시 스키 경기는 점프, 회전, 직활강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2월에는 동계 올림픽이 중국에서 개최 예정입니다만, 최근에는 하계 올림픽처럼 경기 종목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접골원에 치료하러 들렀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고 모글 스키 경기는 무릎이나 허리에 부담이 많이 걸릴 것 같았기에, 마스키 카츠토시 원장 선생에게 “선수는 무릎이나 허리가 안 아플까요? 몇 살 정도까지 경기에 나갈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이든 할 수 있어요. 나도 지금은 높은 점프나 활공은 하기 어렵습니다만 타고 내려오는 건 아직도 잘합니다.”라고 해 놀랐습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비탈길과 싸우면서 타는 게 아닙니다. 사이좋게 몸 전체로 흡수하면서 타기 때문에 허리나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습니다.
탈 때는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머리로는 앞으로 지나갈 5~8번째 관문까지 빠르게 떠올려, 시뮬레이션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 그렇게 이미지를 떠올린 대로 타고 내려옵니다. 지금 당장만 생각하면 도저히 탈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모글 경기 후에 테니스 연습을 하면 아직 뇌가 고속촬영 상태를 유지하는 탓인지 테니스 공의 솔기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2월 중순에 스케이트보드 일본선수권 여자 스트리트 결승이 있었는데, 우승한 것은 12세의 아카마 선수였습니다. 2위로 들어간 것은, 도쿄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에 빛나는 14세의 니시타니 선수입니다.

금·은·동에 빛난 것은 모두 중학생입니다. 게다가 출전 선수 중에 최연소는 9세입니다. 놀랍습니다. 선수 나이가 엄청 낮아졌습니다. 마스키 선생도 “이런 경기를 시작하는 것은 공포심이 적고 신체가 유연한 아이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울YMCA 유도장에서 실시한 이가라시 선생 강습회

합기도 수련에도 이미지, 시뮬레이션, 영감이 중요합니다. 수련할 때는, “상대 움직임의”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선의 선, 후의 선을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기술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머리 속, 마음 속에서 미리 준비(이미지, 시뮬레이션)하는 게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극으로 말하면, 원작·각본이 있고, 감독의 연출 아래 리허설을 거듭해 완벽을 목표로 무대에 오릅니다. 루틴, 이미지, 시뮬레이션이란 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해외 지도를 나갔을 때 고바야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생각납니다.

①정좌하고 묵상을 한다
②묵상을 마치면 먼저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참가자의 얼굴을 볼 것
③첫 기술은 후면기부터
④다음에 좌기를 한다.

합기도 지도를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면, 훌륭한 원작·각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키가 큰 북유럽 사람과 처음 함께 수련하고 지도하는 자리에 귀중한 조언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해외지도를 고바야시 선생님의 원작·각본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도·무술에는 “기·심·체”에 대한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로 “몸은 내면의 기에 따라 움직이고, 기는 마음이 가는 곳을 따른다. 그러므로 마음이 변하면 기가 변하고, 기가 변하면 몸이 변한다”가 있습니다. 또 “기는 마음의 문”이라는 말도 정말 좋아합니다.

합기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님은 “무(武)는 사랑(愛)이고, 합기(合氣)의 합(合)은 사랑(愛)이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인 바그너는 “나는 음악을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나는 합기도를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2년 1월
이가라시 카즈오 8단

“나는 합기도를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로는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