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민족주의를 넘어서-정승화

2019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프랑스 사범 크리스찬 티시에 선생의 지도 모습

아래글은 2014년8월12일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강사이며 신촌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정승화씨가 남긴 아이키도에 대한 생각과 글이다. 아이키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 옮긴다.(유사 합기도와 구분하기 위해서 ‘아이키도’로 표기)

 

무술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키도 정신

-정승화(연세대학교 강사)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 중에는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적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한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숱한 이민족의 침입과 수난을 겪었고 20세기 초 급기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약한 민족의 설움과 ‘한(限)’이 민족주의적 정서와 민족공동체 의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또한 수난의 역사를 통해 사회 전반에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관념이 강조되어 왔고 무인과 무술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 무술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가 존중되었기에 무술인이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키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들은 한국의 민족 무술도 훌륭한 것이 많은데 왜 일본 무술을 수련하는가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키도를 수련하는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아이키도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무술이지만 이것이 ‘일본 무술’인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적자생존이라는 제국주의적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에서 약자가 된다는 것의 억울함과 한을 경험하며 한국은 강한 민족 국가의 수립의 열망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전통의 발굴과 복원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정책을 시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태권도와 택견을 비롯한 많은 전통 무예들이 한국 무술로 복원되고 장려되었다.

유구한 우리의 역사적 전통이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과 식민사관에 가려 사장되거나 폄훼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하고 복권시키는 작업은 문화와 정신적 측면에서의 식민지 유산의 극복의 과제와 동일시되었다. 전통 무술의 재구성 과정에서 복원된 ‘우리’ ‘고유의’ ‘민족’ 등의 수식어를 갖는 다양한 무술이 발굴되었고 각각의 무술은 우리 민족의 호연지기 혹은 민족의 정기를 담고 있는 ‘민족 무술’로 상찬된 것이다.

이와 같은 무술 민족주의의 발전은 ‘합기도’의 역사에 관한 논쟁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일부 합기도 수련자들은 유술과 합기의 기술이 신라시대에 일본의 건너가 일본에서 발전하였다가 이것이 아이키도로 재구성된 것이기에 합기도의 원류가 한국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일본에 대해 지기 싫어하는 마음과 한국 전통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뒤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 동안 형성된 식민사관-한국은 열등하고 문화가 덜 발전하여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에 대적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악착같이 우리의 것이 일본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찬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문치주의를 표방하였던 한국은 무인 가문이나 전통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였다. 따라서 가문의 전통이나 불교나 도교 등의 종교적 종파의 전통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어 온 무술의 역사적 전통 유산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빈곤하였고 그 마저도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단절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공백은 종종 신비주의적인 민족적 자부심으로 채워지곤 한다.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의 축적 속에 발전해온 전통을 무시하고 신비적인 민족 기원의 신화를 통해 신화적인 힘의 상상적 발현이 곧 현재를 형성하였다는 식의 탈역사적인 시각에 빠지게 만든다.

아이키도는 창시자가 있는 일본 무술이다. 하지만 아이키도는 일본의 여타의 민족주의적 무술과는 다르다. 아이키도가 훌륭한 것은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이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일본 제국주의의 참상에 대한 반성과 호전적인 무술에 대한 회의, 평화를 위해 무술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고민하면서 고안해낸 ‘평화의 무술’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제압하는 것,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함부로 휘둘리지 않을 만큼은 강해져야 한다는 정신은 일본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 속에서 평화를 위해 일본 무술이 나아가야할 바를 고민한 그 반성과 성찰의 결과인 것이다. 무술은 강함에 대한 추구를 담고 있다. 일본의 무술인들-전부는 아니더라도-에게 제국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강함에 대한 일방적 추구가 공멸의 길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반성하게 하였다.

한국에서는 약소 민족의 애환을 강함에 대한 추구 속에서 극복하고 약자의 강자되기 위한 전략으로 무술이 옹호되었기에 호국적 무술, 민족주의적 무술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의 여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의 무술 민족주의는 식민지배의 경험과 그 극복의 역사적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국제질서 안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민족의 찬란한 전통과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라는 힘쎈 민족에 대한 환상으로 자신의 왜소함과 열등감을 감추는 손쉬운 전략이 되었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피식민지인에게 민족적 열등감을 부여하는 식민사관은 인식론적 폭력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기 위해 민족적 자부심을 내세워 우리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민족 간 대결과 경쟁의식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또한 민족주의는 민족공동체에 대한 애착의 정서만이 아니라 민족의 안과 밖을 가르는 포섭과 배제의 동학이기도 하고 한 공동체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기 위해 지배엘리트에 의해 이용되고 조장되는 통합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같은 민족국가는 근대 시기를 통해 서서히 형성된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이다. 또한 한국의 많은 전통은 ‘발명된 전통’이기도 하다. 민족주의는 종종 외부의 적에 대한 적대감으로 내부적 일체감을 강화하므로 배타적이 될 위험이 있고 내부적으로 동질성을 강요함으로써 획일성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민족이 그 자체의 지고한 가치로 표상되는 곳에서는 종교 근본주의나 쇼비니즘과 같이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로 발전한 위험이 상존한다.

특히 각국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충돌하면 근거없는 민족자부심이 편협하고 호전적인 상호비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땅에서 나온 것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신토불이’라는 구호나 한국의 무술이 세계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자부심은 근거없는 자민족우월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가 민족주의적인 정당성으로 관찰되면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 그리고 외국인이나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키도는 무술이 호전적 민족주의와 결합했을 경우의 위험을 경계하고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발전한 무술이다. 나는 아이키도를 수련하면서 민족주의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일본의 역사와 문화적 저력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일본의 무술을 배운다는 바로 그 위치-한국에서 아이키도를 수련한다는 것과 일본의 무술인들과 교류한다는 것은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배우며 민족주의적 경쟁이 아닌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무술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함께 고민하면서 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관계맺기이다.

일본 무술의 역사성과 우수성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고 배울 점과 인정할 점들을 공정하게 인정하는 자세는 신비화된 민족주의적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성숙한 무술인의 자세일 것이다. 민족주의의 위험을 경계하고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아이키도는 진정 ‘평화의 무술’이다.

한국에서도 1988년 이후부터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아이키도가 보급되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