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일본도 문화의 재고찰

비전 11월호에 실린 스가와라 선생의 기사

〈아래 기사는 일본 비전(HIDEN) 잡지에 실린 스가와라 테츠타카 선생의 글입니다〉

 

新 시리즈 – 잊혀졌던 일본도 문화의 재고찰

스가와라 종합무도 연구소 「일본도 연구 강좌」 제1회

 

‘고류검술 조작법에서 찾는 일본도의 뿌리’

 

21세기에 들어선지 십수 년, 오래된 좋은 전통 문화가 조금씩 사라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매일 “일본인의 혼이 담긴 곳”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진 「일본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미증유의 민족적 유산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건 아닌가?

무도가로서 오랜 기간 일본도 연구에 매진한 스가와라 종합무도 연구소의 스가와라 테츠타카 소장이 혼신의 필치로 써내려간 「일본도 연구 강좌」. 제1회는 검술기법에서 살피는 일본도의 뿌리이다.

스가와라 테츠타카菅原鉄孝

스가와라 종합무도 연구소 대표, 일본·중국무술 건신협회 부회장. 1960년, 아이키도 개조 우에시바 모리헤이에 입문, 다음해 내제자가 됨(아이키도 7단). 1975년, 텐신쇼덴 가토리 신토류에 입문, 1986년 교사 면허를 받음. 1992년 미야기 야스이치 사범에게서 오키나와 고쥬류 가라데도의 교사 면허를 받음. 1989년부터 씽얀링 노사에게 중국무술 지도를 받음. 중국 등 해외에 아이키도와 가토리신토류를 지도. 현재, 도쿄도 마치다시의 도장에서 후진을 지도하고 있음.

 

 

일본도 파지법의 고찰

 

앞으로 본지에서 시리즈로 전개할 ‘일본도 연구 강좌’. 제1회인 이번에는 일본도의 조작법에 관련하여 ‘일본도의 뿌리’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텐신쇼덴 가토리신토류를 연마하고 있다. 가토리신토류는 일본검술의 3대 원류의 하나로 꼽히며, 오랜 전통을 가진 고류무술이다. 그 기본적인 기법 중에는 ‘일본도’를 고찰하는데 많은 “가르침”을 볼 수 있다.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칼의 “파지법(쥐는 법)”을 살펴보자.

 

검술가가 칼을 손에 둘 때, 무기(칼)과 신체가 일체화하는 것이 기본이며, 그 점에서 볼 때 칼의 운용은 “쥐는 데서 시작하여, 쥐는 데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도는 양손으로 조작하는데, 오른손, 왼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의식적으로 붙여서 쥐고, 양손 사이는 한 주먹 정도 떨어뜨린다. 양손을 떨어뜨리는 것은 다양한 도법에 있어 쥠의 변화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때, 가토리신토류에서는 왼손의 손바닥에 손잡이끝柄頭을 대고, 손잡이끝을 감싸듯이 쥔다. 이것을 ‘알을 쥐듯이 하는 손매무새(테노우치)’라고 한다. 이렇게 쥠으로써 칼이 손에서 빠져 떨어 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거기에서 일본도의 초기형태와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도의 발달과 한손 조작법

 

일본의 도검은 고대에는 직도直刀나 양날의 검을 볼 수 있는데,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도신刀身이 휜 ‘타치太刀’와 ‘우치카타나打刀’가 생겨났고, 이것이 소위 ‘일본도의 스탠다드적인 형태가 된다.

타치는 본래 마상馬上 전용으로 생각되는데, 크고 길어서 지면에 칼끝이 쓸리지 않도록 칼날이 크게 휘도록 만들어진다. 왼손으로는 말고삐를 조작하므로, 한손(오른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볍게 하는 게 중시되어, 전체적으로 칼이 가늘게 만들어진다. 오슈토奥州刀에는 ‘훈바리踏ん張り’라 불리는 형태(칼날이 손잡이 쪽에 비해 날끝 쪽이 좁은 형태)가 있는데, 이는 무게 밸런스를 잡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치카타나는 이러한 타치의 성질을 포함하면서, 말 위에서 지상전으로 전투형태가 변하는 도중에 말의 속력을 얻을 수 없는 만큼, 크고 긴 도신을 양손으로 조작하는 한편, 도신의 휨이 적으면서도 충분한 위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도법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일본도가 원래 ‘한손 조작법’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그 손잡이에 있는 ‘슴베(나카고, 茎)’*에서 알 수 있다.

★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역사적으로 볼 때, 한손으로 쓰는 단검에서 보이는 슴베는, 슴베와 주먹이 크기(높이)가 같다는 걸 기본으로 하고 있다. 쥐는 부분이 주먹의 높이(폭)이라는 걸 기준으로 1로 하여, 칼날 부위의 길이를 1:1, 또는 1:1.5, 내지는 1:2 등으로 정한다. 이것이 유럽에서 나이프의 기준이다. 그리고 일본도 역시 슴베는 주먹 하나 쥐는 사이즈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주먹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그 도검을 자신의 몸에 맞는 길이로 맞추기 위한 것인데, 슴베 1에 대해 칼날 부위의 길이를 쥠의 배수로 정하는 것이다. 신화에 나오는 ‘토츠카 노 츠루기十握剣’*는 그 좋은 예인데,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의 유명한 ‘시치시토七支刀’도 가지가 일곱 개라는 게 아니고, 주먹 7개 길이의 칼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 주먹 10개 길이의 검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장에 갖고 간 일본도 대부분이 손잡이가 파손되었다고 한다. 창고에서 갖고 나온 오래된 일본도 대부분은 손잡이 길이는 양손으로 잡도록 되어있는 데 반해 슴베가 아주 짧았기 때문이다. 손잡이는 양손으로 잡는 사이즈인데, 슴베는 한손으로 잡는 사이즈였던 것이다. 때문에 전쟁 중에 새로 만들어진 칼을 보면 슴베가 종래의 것보다 훨씬 폭이 길게 만들어져있다.

 

장대직도長大直刀 ‘소환도素環刀’*의 영향

★ 환두대도環頭大刀.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직도.

한손으로 쓰는 양날 직검直劍에서 외날이 되고, 독특한 휨이 있는 크고 긴 ‘일본도’가 되는 일본도검의 역사에서, 거기에 큰 영향을 준 것이 동북부에 거주한 에미시蝦夷* 사이에서 사용된 ‘와라비테토蕨手刀’**의 계통(이에 필자는 불가리안, 코자크 계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과, 더욱 크고 길게 된 중국계의 ‘소환도素環刀’의 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 일본의 선주先住 민족인 아이누족.

★★ 손잡이 끝이 고사리蕨 싹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

 

코훈시대(古墳時代, 일본에서 많은 고분이 축조되었던 4~6세기)에 일본에 들어온 대형 직도는 후나야마船山 고분과 칸토関東 지역에서 다수 출토되고 있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경유하여 들어온 소환도의 계통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게재한 것은 일본에 보존된 소환도지만, 필자는 그 실물을 중국 서안의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환도의 사용법은 중량이 있으므로 양손으로 쥔다고 생각되며, 왼손은 손잡이 끝의 고리를 손바닥으로 감싸서 쥔다고 생각된다. 즉, 갑옷처럼 단단한 방어구를 칠 때, 손잡이 끝의 고리를 감싸 쥐고 있으므로 그 충격을 상쇄하는 효과를 가지리라고 생각된다.

이 형태의 연구는, 최초로 철검鐵劍을 만든 기마민족 스키타이가 사용한 ‘아키나케스형 단검 (러시아에서는 아키낙크라고도 함)’에서 보는 게 가능하다. 철검의 시작은 기원전 3세기경이라 여겨지는데, 그 이전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그 이전에는 ‘뼈칼骨刀’이었다. 뼈칼은 동물의 발 무릎부터 아래까지의 부위가 쓰였고, 손잡이 끝은 양羊의 뿔처럼 무릎 관절 양쪽이 튀어나온 듯한 형태였다(즉, 뼈칼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

이 손잡이 끝의 형태는 청동검靑銅劍에서도 만들어졌지만, 청동에서 철검이 될 무렵에는 상대편의 방어구도 발달하고 강화되었기에, 단검으로는 갑옷을 세게 쳐도 쇼크로 튕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양뿔 모양의 손잡이 끝을 둥글게 하여 그 부분을 감싸 잡도록 한 것이다.

 

이 형태를 계승하여 크고 길어진 대륙의 소환도는 일본에 유입되어 북상하면서 동북 지방의 와라비테토와의 휨과 합체, ‘류고즈카토立鼓柄刀(손잡이 가운데를 살짝 움푹 들어가게 하여, 손잡이를 북 모양으로 한 칼)’의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또한, 소환도의 고리 부분을 직접 쥐어보면, 추운 지방에서는 피부가 들러붙어서 무리하게 떼면 껍질이 벗겨져버린다. 그래서 철에 직접 닿는 게 아니라, 목제 손잡이를 대고 쥐는 ‘슴베 형식’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에 더해, 손잡이 끝을 감싸 쥐듯이 잡는 도술刀術은 긴 칼을 다루는 일본검술에 계승된 것이다.

 

환도環刀의 기원과 일본도의 형성

만곡彎曲한* 일본도의 형성 시기는 헤이안平安 중기 무렵이라 하나, 그러한 도검이 일본 국내에 만들어지게 된 과정은 그리 해명되어있지 않다.

★ 활 모양으로 굽은 모양

 

만도彎刀의 기원은 유럽에서 볼 수 있다. 이슬람교의 튀르크와 그리스도교의 로마가 겹치는 장소는 ‘하자르’*이라는 나라가 7세기 무렵에 태어났다. 어느 쪽에도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독자적인 종교(유대교)를 가진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미늘창 모양 양날鋒両刃 철검은 곧으면서도 미늘 부분만 약간 위로 살짝 활모양으로 휘어 있다. 이것이 만도의 기원이라 보아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서기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지금의 카프카스 산맥 북부와 러시아 남부인 우크라이나, 볼가 강 하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튀르크계 주민들이 세운 강대한 유목제국

 

이 장검長劍의 사진은 카프카스 고고학 연구소에서 찍을 수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코자크를 조사할 때 자보로슈웨이 군사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그곳의 학예원도 ‘일본도에 가장 가깝다’고 지적한 것을 잊을 수 없다.

이 장검은 나중에 연해주沿海州에서 출토된 것으로, 실크로드 및 초원루트를 경유하여 상당히 광범위하게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의 만도는 전체가 만곡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코가라스마루小烏丸’지만, 이 미늘창 모양 양날 만도는 손잡이 부분이 위를 향하고 있다.

도검 손잡이의 각도는 민족에 따라 달라지지만, 해외에서는 거의 아래쪽으로 굽는 게 보통이다. 위로 굽는 것은 일본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것은 특히 아이누계 쪽에서 보인다.

하자르가 탄생한 7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와라비테토가 만들어진 듯하다. 와라비테토도 처음에는 직도로서 만곡이 없었으나, 손잡이의 휨을 생각하면 만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시이 마사쿠니石井昌国* 선생은 전국적으로 와라비테토를 조사하여, 직도라 보이는 쇼소인正倉院 절의 보물인 미늘창 양날 와라비테토를 3형으로 하고, 그 외에 1형, 2형이라고 크게 분류했다.

★ 일본도 도감의 저자

이 와라비테토가 휜 것은 8세기 말 무렵이다. 와라비테토는 주로 토호쿠東北 지방 북부, 홋카이도北海道 남부에서 출토되는 사실에서, 이시이 선생은 ‘와라비테토는 아이누가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하여 일본도의 기원으로서 아이누도アイヌ刀를 생각했으나, 아직 통설로서 받아 들여지진 않는다.

필자는 2005년에 홋카이도에서 출토된 아이누도의 X-ray 사진이 들어간 사토 노리야스 佐藤矩康 씨(일본도검 보존협회 삿포로 지부장)의 저서를 나루칙크 국립박물관에 증정할 당시, 동행한 카프카스 고고학 연구서의 연구원이 ‘이건 발카리안의 것이다’라며 놀랐다. 와라비테토 및 아이누도는 발카리안(남동유럽의 발칸 지역 사람. 아리아인의 자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추리하는 게 가능했다. 필자는 오슈토의 기원에는 발카리안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브레(타치)와 샤슈카(카타나)

그런데, 유럽의 미늘창 양날 장검이 나중에 만곡이 강해진 것은 10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 무렵에는 대단히 휨이 심한 만도가 되는데, 이 도검의 만곡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게 러시아의 도검사刀劍史의 통설이다.

이 만곡한 도검을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사브레(사벨, 군도軍刀)’라 칭한다. 사브레는 원래 기마전에서 쓰였고, 마상에서 발도하여 말이 달리는 힘을 응용하여 상대를 베거나, 상대의 공격을 받아흘리거나 하는데, 한손으로 휭휭 돌리면서 조작한다. 그래서 상대에 닿을 만큼 길면서도 가볍고 밸런스가 좋을 필요가 있다. 이 사브레가 휨이 강한 일본의 ‘타치’와 공통되는 점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 무렵에 우크라이나에 나타난 ‘쟈보로슈웨이 코자크’는 튀르크 및 페르시아 등에서 쓰이던 휨이 강한 사브레를 조금씩 변형하여 휨이 적은 ‘샤슈카’를 사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브레의 어원은 체르케스 어의 세리(나이프)+프라(뱀)의 합성어이다. 뱀은 악인이 지옥에 떨어질 때 덮쳐온다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이라고 추정된다. 이에 반해 샤슈카는 ‘긴 칼’이라는 의미다.

코자크 민족이 휨이 강한 사브레(타치 양식)에서, 휨이 적은 샤슈카(카타나 양식)을 쓰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칼을 빼는” 동시에 공격하는 ‘누키츠케(抜き付け, 빼어 붙이기)’를 가능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일본 검술에 있어 ‘발도법抜刀法’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특히 누키츠케를 하는 순간, 칼은 한손만으로 쥐어 조작함에 따라, 해외의 도검에서 보는 한손 조작법에 가깝게 된다.

가토리신토류의 거합술居合術(발도법)에서는 초전初伝에서는 단순히 빼낸 순간에 공격을 가하는 형태로 이해되지만, 오전奥伝이 되면 상대의 공격을 상정하여(방어를 제일로 하여), 빼낸 칼의 칼등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 흘리는 조작법을 의식하도록 한다. 이는 상대의 공격 보다도 일순 빠르게 움직여야만 하는 것으로, 보다 고도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휨反り를 활용하는 일본 검술

 

일본 검술에서는 상대의 칼에 접촉하는 순간, 회전하며 엉켜 붙으며, 목을 치거나, 팔뚝을 취하거나, 베어 올리거나 하는 등 휨을 활용한 다채로운 기법이 내포되어 있다.

결국, 일본도는 “잘 베기 위해서” 휘게 되었다기보다는, 만곡된 휨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칼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적의 공격을 받아 흘리며 반격할 수 있도록 연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의 공격에도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양손으로 쥐는 도술刀術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닌가 한다.

또, 샤슈카를 구사한 코자크의 일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로스토프·돈으로 이동하여 ‘돈·코자크’라는 집단이 탄생. 현재는 러시아에 충성을 다하는 무사도 정신도 갖고 있다

<번역: 성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