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탐방기2] 원주도장을 다녀오다!

이 기획을 처음 시작할 때 첫 탐방지로 서울에서 좀 가까운 지방 도장을 생각했고, 그 중 하나로 꼽은 도장이 원주 오승 도장이었다.

 

3월 19일 12시 나의 출발지는 연세대 원주 캠퍼스. 원주시 외곽에 있는 연세대 캠퍼스에서 원주 시내 구도심에 있는 원주 오승 도장이 있는 지하상가 정류장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관장님께서도 12시 좀 넘어서 나오신다고 하시기에 곧 오실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내려 전화를 드리니 30분쯤 걸리신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관장님께서 식사를 하고 오시는 줄 알고 요기라도 할 양으로 주변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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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휴일 중인 지하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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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골목에서 영업 중인 시장

 

 

 

 

 

 

 

 

 

 

관장님께 나중에 들었는데 이곳이 원주시의 구도심으로 오래 전엔 원주시에서 유일한 번화가였다고 한다. 상가는 쉬는 날 같았는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시장은 또 영업을 한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시장 가판 칼국수 집에 앉아서 만두칼국수를 먹으면서 골로프킨의 복싱 경기를 보고 있는데 관장님께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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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가판에서 팔고 있는 만두칼국수

 

 

 

 

 

 

 

 

 

 

 

식사 중이라고 금방 먹고 간다고 했더니,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먼저 먹었냐며 어디냐고 물으신다. 시장 내 가판이라고 하니까 안 그래도 거기서 같이 먹으려고 하셨다며 곧 오신다.

얼큰한 맛이 일품인 만두칼국수. 제주도 회원 분들도 올해 스키 캠프 이후에 여기서 해장하고 가셨다고 한다.

푸짐한 식사 후엔 관장님께서 사주시는 밀크티도 한잔 받아가지고 도장으로 갔다.

지하상가 거리로부터 몇백 미터 들어간 건물 지하에 있는 원주 오승 도장. 입구부터 신촌 본부 도장이 떠오르는 원주 오승 도장이었다. 도장 풍경을 몇 장 사진 찍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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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오승도장 입구/ 전화번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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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내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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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내부 2

 

전찬규 관장님의 이야기

어려서부터 합기도를 배운 관장님은 합기도 OO 연맹 소속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셨고 대학을 졸업한 27살에 미국을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원주에서 도장을 열어 10년간 운영하셨다. 합기도 도장을 할 때엔 잘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엔 사범이 세 사람이나 되고 수련생도 많았는데 유난히 대학부 성인부가 많았다. 그런데 관장님은 힘이 좋은 젊은 친구들에게 기존 합기도 술기가 점점 통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온갖 편법을 이용해 강제로 제압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까지 해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등 모든 종목을 도장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스스로가 짬뽕 무술을 창조해내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 당시 염치는 조금 있어서 태권도 4단에 국기원사범교육 등도 받고 선수 출신들에게 겨루기 훈련법 및 지도법도 배우곤 했다. 또 대학 때는 유도 또한 마사회 감독 출신에게 전공수업으로 지도를 받았다.

그래서 정통 합기도를 시작하신 거냐고 물으니 중간에 계기가 많았다고 하신다.

“무엇보다도 한국 합기도에는 호신술을 지칭하는 이름이 없는 것에 회의가 들었어요.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칼넣기, 손목 뒤집기 등의 명칭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1수, 2수, 3수라는 식으로 각각 부위별 술기에 번호를 먹여서 가르쳐요. 손목을 잡혔을 때 이십 몇 가지 기술이 있고 기술을 거는 위치에 따라 손목 1수, 2수 이런 식이죠. 가르칠 때도 손목 술기 몇 번까지 배웠냐? 심사 볼 때는 손목 술기 3~4번까지 본다. 이런 식이죠.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다른 도장 가면 또 달라서 도장을 옮기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그렇게 계속 회의를 품은 채로 합기도를 가르치던 관장님은 미국으로 7년째 시합을 다녔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무술들을 로얄마샬아츠라고 해서 존중을 해주는 게 많다고 한다. 초창기에 갔던 사람들이 열심히 한 덕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판은 합기도 도장인데 짬뽕 무술이 됐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우리나라 무술인데 중국 무술, 일본 무술, 한국 무술을 섞은 짬뽕이 되어 있다. 그 와중에 관장님은 OOO라는 일본 선생을 만났다. 이전의 스승이던 총관장이 거합도를 OOO 선생에게 배웠고, 관장님더러 배워보라고 해서 배웠는데 배우다 보니 이거는 무슨 유파인지 궁금증이 들었다.

“검술의 유파가 뭐에요? 하고 총관장에게 물었는데 유파의 이름을 안 가르쳐 주더군요. 나중에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 보니까 그 기술의 명칭은 영신류 거합이었어요. 그래서 총관장에게 이런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더니 그걸 거야 아마. 그렇게 답을 해요. 한참 후에 또 누가 만들었냐고 물어보니 이번엔 자기가 만들었으니까 OO거합이라고 해요. 총관장의 자기 호가 OO이라서 그렇게 말한 거죠.”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전찬규 관장님은 한국 합기도에 실망하고 회의를 품게 됐다. 호신술의 정체성에 대한 거. 스승이라는 분이 엄연히 있는 거합술의 기술을 자기가 창시했다고 말한 거.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구나 하는 선입관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이후 전찬규 관장님은 원주에 있는 도서관, 서점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했다. 책도 많이 사고, 비디오도 많이 사서 합기도에 대해 공부를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나와 있는 합기도 관련 자료들이 다 그렇듯이 그놈이 그놈 같고 다 이상했다. 모든 책의 저자들이 자기가 다 그 무술의 창시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마지막으로 윤대현 선생님께서 쓰신 『화의 합기도』를 읽었다. 책을 보니 도복이 특이하고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달랐다. 특히 전찬규 관장님이 평소 궁금했던 것이 그 안에 있었다. 그때가 2007년 초였다.

바쁘게 일상을 보내느라 2년이 지난 2009년에야 『화의 합기도』 책자를 다시 뒤져 신촌 도장으로 전화를 했다. 원주에서 합기도 하는 관장인데, 회장님이 쓰신 책을 봤다, 일본 합기도가 어떤 건지 보고 싶다라고 하자 윤대현 선생님께서 토요일 지도자 강습회를 하는데 오라고 하셔서 가셨다고 한다. 책에는 검도복과 하카마를 입고 있기에 거합도 할 때 입었던 하까마와 검도복을 입고 가셨다. 전 관장님의 복장만 보고 사람들은 유단자인 줄 알았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강습회를 시작했는데 준비 운동부터 생소했어요. 몸 풀고 나서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데 그때 기술이 엇서 한손 잡기 측면 호흡던지기였어요. 물론 국내 합기도에도 손목 술기 중 바깥손목 술기가 있긴 하죠. 하지만 그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당시 제 첫 나게(기술을 거는 사람)는 송은석 관장님이었어요. 저 나름 매우 세게 송 관장님의 손목을 잡았는데 너무나도 쉽게 바닥에 패대기쳐졌죠. 그렇게 4번 패대기 당한 다음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교대해서 송은석 관장님이 제 손목을 잡았는데 꼼짝도 못하겠다는 거에요. 그렇게 한참을 끙끙 대고 있는데 그 광경을 보신 선생님께서 옆쪽으로 빼셨어요. 그래서 이번엔 하얀 띠 유급자랑 했는데 유급자도 못 당하겠는 거에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다시 저 옆에 있는 여자 분과 상대하게 하셨는데 그 여자 분은 바로 신미애 사모님이었어요! 사모님께선 씨익 웃으시더니 저를 바로 패대기를 치셨어요. 그리고 그렇게 4번 패대기 당한 후에 다시 사모님께서 제 팔목을 잡으시니까 역시나 꼼짝을 못했어요. 사모님께서 검 잡듯이 중심을 딱 잡고 계시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는 거에요. 물론 그때는 그 이유를 전혀 몰랐죠.“

그렇게 첫 수련을 마치고 차를 몰아 서울을 빠져나오면서 전 관장님의 머릿속엔 만감이 교차했다. 화가 나면서도 왜 이제야 이걸 알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눈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게다가 이교를 당해서 손이 아파 핸들을 꺾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차를 만남의 광장에 대고 잠깐 쉬었다. 그리고 원주 도착해서 며칠 있다가 선생님께 등록하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하도 전 관장님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윤대현 선생님께선 약간 거리를 두고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기존 유사 합기도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와야 한다고. 그렇다고 이전 사람들과의 관계를 딱 끊으라는 건 아니지만 정통 합기도를 하려면 제대로 정리하고 와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은 전 관장님은 바로 한국 합기도 계통 단체와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그때까지 4~5개 단체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연수, 세미나, 단증 발급까지 일절 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정통 합기도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존 수련 체계 자체를 다 바꿔버렸다고 한다. 발차기, 쌍절곤, 기계체조 등을 모두 없애고 토요일 본부 강습회에서 기술을 배워오면 그걸 원주 도장에서 가르치고 수련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자 사범들이 먼저 반발하기 시작했어요. 기존에 하던 발차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더군요.

이에 제가 ‘검술이나 장술을 더 열심히 해야 될 거야’라고 답하니까 사범이 한 명 바로 도장을 나갔고 회원들도 다 떨어져 나갔어요. 그리고 두 번째 사범도 얼마 있지 않아 나갔어요.”

하지만 전 관장님은 굴하지 않고 정통 합기도를 계속 배워서 가르쳤고 그해 9월 전국 우호 연무 대회에 참가하셨다.

 

이렇게 진통 끝에 시작했지만 시작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도장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당시 먹고 살 길이 너무나 막막했어요. 결국 도장 문을 닫고 직장을 찾았죠.

평생 운동만 하고 살던 사람이 사회 생활을 시작한 거죠. 그렇게 처음 시작한 일이 샷시 공장 직원.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이라 생소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마냥 죽으란 법은 없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조금씩 일이 손에 익고 월급도 올라갔어요.

그리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성인 회원 3~4명이 계속 운동을 하자고 해서 국내 합기도 선배의 도장을 저녁 시간 때 빌려 8시~10시에 수련을 했어요. 그 후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옮겨서 수련을 또 했고요. 그렇게 두 군데의 도장을 빌려서 더부살이를 2년 하다가 지금의 도장 자리를 찾았죠.”

 

지인이 지하공간이 빈 데가 있다고 해서 와 봤더니 까페 여주인이 가게를 팽개치고 도망가서 지하층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혼자 집기 버리고 정리하는 데만 한 달 걸리고 내부 공사에는 세 달이 걸렸다. 그동안 전 관장님은 낮에는 샤시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퇴근해서 2~3시간 동안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그 사이 기존 회원들은 직장 발령, 부상,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다수가 수련을 쉬고 있었다.

도장 문을 열자 아주머니 한 명이 와서 같이 운동을 했는데 한 겨울에 난로도 없이 운동을 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초기엔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셨지만 건강상의 사유로 얼마 후 그만두셨다.

 

그리고 얼마 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서 도장이 침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바닥을 전부 걷어내고 다시 깔아야만 했다. 천하의 전찬규 관장님도 그때는 정말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전부 닦아 내고 페인트 칠해서 새단장을 했다. 그때부터 한두 명씩 회원이 꾸준히 들어왔고. 관두는 사람들 중에서도 조금씩 남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조금씩 발전을 하여 현재는 초단이 3명으로 늘어난 원주오승도장은 8년 만에 유단자가 4명이 되었다.

“단순히 운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저와 윤대현 선생님과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길을 가도록 하기까지가 힘들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정통 합기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을 보고 가는 사람, 즉 ‘도우(道友)’라고 하시는데, 국내 합기도에선 다 자기가 창시자라고 하면서 다른 도장에 놀러가는 것조차도 싫어해요. 정통 합기도를 수련하는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여기저기 놀러 가고 어울릴 수 있는 사이이기에 좋은 거죠.”

 

후배들을 위한 조언

앞서 말한 대로 직업으로 운동을 하던 전찬규 관장님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고 도장은 운동이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평생 할 것이라고 하신다.

“사회 생활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좀 더 편한 직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좋은 직업을 잘 찾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을 학교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좋겠어요. 일본에서 선생님들도 취미로 오랫동안 하다가 나중에 지도자가 된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기존의 대한민국의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뭔가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고 한참을 돌아 제대로 된 길을 찾은 느낌이에요.

물론 전국의 클럽장이나 도장장님들을 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과정이 있고, 언제고 힘들 때가 있을 거에요. 그러다가 실력이 좋아지고 시스템이 딱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오히려 지금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27살에 알았으면 어땠을까? 직장을 다니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운동을 취미로 하라고 조언하신다. 우선 직장을 잘 다니면서 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동안 윤대현 선생님도 하신 경험, 그런 이야기를 하신 게 이래서였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하신다.

“이렇게 직장과 운동이 분리된 지금은 집 사람도 전혀 터치를 안 해요. 도장이 자생적으로 유지가 되니까. 처음에는 무지 싫어했어요. 지금은 존중해 주고 강습회 때 손님들이 오면 잘 챙겨줄 정도가 됐어요. 집 사람은 현재 4급으로 내년이면 둘째가 초등학교 가니까 다시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제주 지부장님 사모님, 윤대현 선생님 사모님같이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볼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이 도장은 절대 망하지 않는 도장이라고 자랑(?)하신다. 세 들어 있는 건물주가 왜 이 운동을 하는지 이해를 해줘서 수입이 없으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실 정도라고 한다. 다른 운동이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도장을 시작하고 1, 2년 진지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시고 납득을 하셨다고 한다. 더욱이 30여 년 전부터 태극권을 수련하셨던 분이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고, 열정을 갖고 무도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주신다는 설명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찬규 관장님은 국내 합기도 6단이지만 그 단증을 모두 찢어버렸다고 하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어느 협회고 찾아가서 등록하면 아마도 반갑게 맞아주며, 7단 승단도 가능할 것이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원주 오승 도장이란 간판을 달면서 합기도와 관련된 것들은 그날 다 소각했어요. 남겨두면 찜찜하고 굳이 남겨 두고 싶지 않은 것들이죠. 국내 합기도는 감사패도 주고 메달 세트, 트로피. 세팅이 많이 되어 있어야 사람들이 대단한 줄 알아요. 하지만 정통 합기도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죠. 그저 단증과 오승 도장이란 이름을 허락한다는 인증서 하나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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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서, 단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전찬규 관장

 

전 관장님은 사실 국내 합기도를 해봤기 때문에 정통 합기도를 설명해 주기 편하다면서 국내 합기도를 해봤던 사람들이 정통 합기도를 배워 잘됐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통영 금강 도장의 김주환 관장도 합기도 OO연맹 협회에서 많이 봤다며 요즘 도장을 잘 운영하고 실력도 쑥쑥 늘어 흐뭇하다고 하신다.

그 김주환 관장을 정통 합기도를 배우기 위해 다시 만났을 때도 전 관장님은 충고를 하셨다.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합기도 배웠던 사람들은 양다리, 세 다리 걸치려고 하는데 젊은 나이니까 열심히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전 관장님이 정통 합기 도장을 처음 열었을 때도 아이들이 10~20명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빚이 커져서 정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현재 전 관장님은 건설 장비 조작하는 일을 하신다. 일이 쉽지는 않지만 나름 잘 적응해서 자격증도 땄고 생활비가 없어서 허덕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게 완성체는 아니고… 20~30% 수준이지만 나름 만족스럽다고 하신다. 사실 누구나 다할 수 있는 것인데 보다 일찍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랬다면 지금쯤 50% 정도에는 이르렀을 텐데 하는 후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은 도장을 무리해서 멋지게 꾸미고 쾌적하게 만들고, 이런 거보다 지출이 덜 나가고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즐겁게 운동하는 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통 합기도를 취미로만 접근할 것은 아니고 현재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추세를 봤을 때 10년 안에 정통 합기도가 각광받을 때가 올 거에요. 한국 합기도와 태권도가 성인반을 다시 만드는 시대가 된 만큼 성인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무술을 가르치는 정통 합기도야말로 고령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무술일 거에요. 저도 원주 시내 문화센터 등에 강좌를 개설할 계획이에요.“

 

정통 합기도를 수련하면서 좋은 점은?

 

“그럼 전 관장님이 느끼는 정통 합기도의 좋은 점은 뭔가요?” 필자가 묻자, 전 관장은 자신의 고민거리들이 해결됐다고 답한다.

“국내 합기도를 할 때는 총관장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 수직적인 관계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하지만 정통 합기도를 배우는 지금은 달라요. 윤대현 선생님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고바야시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고 이 좋은 운동을 배우고 가르치고 싶다고 하세요. 나와 같이 가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시죠. 그 단순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좋아요. 함께하고 있다는 것.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좋아요.”

 

스키 캠프

본지에서도 한번 다뤘듯이 원주 오승 도장에서는 매년 2월 강습회와 함께 스키 캠프를 열고 있다. 어떻게 스키 캠프를 열게 되셨는지 물어봤다.

“도장 인증서를 받고 강원도 강습회를 했는데 도장 문을 닫으면서 2년간 못했습니다. 3년 후에 다시 시작하고 난 후에 제주 지부장께서 특색 있는 강습회를 하면 갈 텐데… 스키 한번 추진해 봐라. 그럼 제주 지부 식구들도 많이 데리고 오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게 벌써 3회째에요. 해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내년에는 동계 올림픽이랑 겹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매년 규모를 키울 생각인데 원주 지부에서 거의 참석하지 않은 올해는 28명이 참석했고 내년에는 50명 정도 예상해요.”


전찬규 관장에게 정통 합기도란
?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인터뷰도 어느덧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지막 질문으로 정통 합기도는 관장님에게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정통 합기도 때문에 죽을 뻔도 했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크게 가졌어요. 도장이 망한 후 한 달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나는 끝이구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처음 샷시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130만 원 받았는데 그 월급을 받아서 강습회 간다고 차비까지 20만 원을 달라고 한 거에요. 그러자 집사람이 나를 제 정신인가 하는 눈으로 보더라고요. 강습회 가기 전날인 금요일에 짐을 싸요. 내가 좋아서 짐을 챙기면 집 사람이 ‘그렇게 좋냐’ 묻길래 ‘어’ 대답했죠.

그러니까 집 사람이 ‘그래 갔다 와’라고 하더라고요. 제 어머니께서 망해 먹고도 운동을 계속한다고 말을 들으시고는 ‘왜 계속하냐’ 그러시니까 집사람이 ‘저 사람은 합기도 안 하면 죽는다’라고 말했대요. 그렇게 인정해 주기까지 몇 년간 열심히 몰입해서 운동하는 걸 보여줬죠. 정통 합기도는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가르쳐준 기회였어요. 그만큼 절실했고, 잘 맞아떨어졌고. 좋은 계기가 됐어요. 한국 합기도와 반대로 정통 합기도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강해져요. 가토리 신토류를 배우면서 목검도 다를 줄 모르는 놈이 거합을 했었구나 생각해서 예전에 배웠던 거합을 잊어버렸어요. 검리를 잘 이해하고 그걸 통해서 거합을 해야 하는데 검리는 하나도 모르고 폼으로만 한 거죠. 그래서 바로 집어치우고 제대로 순서대로 배웠어요.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급하지가 않고 한 만큼 하는 늘어나니까. 정통 합기도도 돈이 많이 들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투자하며 배우는 거죠. 제주도의 회원 분들도 일본 한번 가기 위해서는 저금을 한다고 들었어요.

마음만 급해서 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처럼 생활의 안정과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빙 돌아온 거 같아요.

선생님이 오랫동안 배워오셨던 것을 편하게 배우고 있으니 참 감사하죠.

이 운동 자체가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어요.”

 

이름이란

전찬규 관장님을 뵙고 서울에 돌아온 후 인터뷰 정리를 하면서 필자는 새삼 이름의 중요성을 느꼈다. 국민적인 애송시인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름이 갖는 의미는 전창규 관장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크다. 지금 한국 합기도계와 대한 합기도회가 ‘합기도’란 명칭 때문에 오랫동안 지리한 갈등을 겪는 이유도 결국은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 남녀는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쓰지만 결국 이름을 잊으면서 서로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린다. 그만큼 이름이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합기도계는 본인들의 정체성에 걸맞는 새로운 이름을 찾고 진짜 합기도를 하는 이들에게 합기도란 이름을 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찬규 관장님이 진짜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듯이 각자에게 알맞는 이름을 찾고 그를 통해 서로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 한국 합기도와 정통 합기도가 공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원주오승도장 수련문의 전화 010-5348-7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