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승단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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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무도가

 

지금으로부터 7년전 늦은 가을,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20년 가까이 수련해온 합기도(Hapkido)가 전통무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도대체 합기도는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채 도장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온갖 자료들과 논문들을 탐독하면서 최종 내린 결론은 ‘일본의 합기도(Aikido)를 알아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갔던 본부도장에서 나는, 20년 가까이 메고 있었던 검정띠를 버리고 다시 흰띠를 멜 수 밖에 없었다.

낯선 도복과 낯선 공간, 창피하기 이를데 없는 무급자 신세는 도장 오픈을 앞두고 있던 예비관장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합기도 도장을 오픈하려 했던 사람이, 다시 처음부터 합기도를 배우기 위해 흰띠를 메고 막내신세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말이다.

하지만 그간 믿어왔던 ‘종합무술 합기도(Hapkido)’는 합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장사꾼으로 살것 같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자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게 받아들인 진짜 합기도, 아이키도(合氣道, Aikido)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5년 가까운 세월을 새벽같이 일어나 본부도장으로 출근하면서 배움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었고,
흰띠로 다시 돌아가 불합격까지 경험하면서 받게 된 새로운 검정띠와 하카마는 승단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으며,

진짜 합기도의 첫번째 선생님과 첫번째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스승과 제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 할 수 있었다.

너무나 단단하고 고지식해서 변할 것 같지 않던 가치관들도 하나둘씩 무너져 내림을 느낄 수 있었고, 무도가 종교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까지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아…이런 것이었구나…이런게 무도였구나…그래서들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구나…’

하는 것을 돌고돌아 불혹의 나이가 되서야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알게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저 검정띠에 하카마 한번 입어보는게 소원이었던 무급자에서 어느 덧 세번째 승단심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이제는 어엿한 선생으로 서기위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격려를 보내고 싶기도 하다.

…그간 고생 많았다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고, 언제나 함께 뒹굴 수 있는 도우들이 있고, 이제는 나를 믿고 따라주는 도장식구들도 있으니, 부디 행복하기만을 바랬던 무도가가 서서히 행복해져가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어느날 다시 돌아볼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던 그때를 참으로 다행이라 여길 것 같다.

그때 그 용기를 내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도복은 장롱 한구석을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을 것임으로…더이상 배움을 청할 수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 스스로의 자만심에 도취해 있었을 것임으로…

 

분당 오승도장 도장장, 행복한 武道家 최태용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