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합기도, 올바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위 영상은 합기도 창시자와 뒤를 이은 합기도 도주(道主)의 1960년대 모습입니다.

창시자에 대한 이야기는 밤을 세워가며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가 살아온 역정과 합기도에 대한 일화는 단순하게 열거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닙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릴때 격투기를 했던 사람이기에 합기도에 대한 기술적 체계와 그 깊이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 하나만 헤아리는데도 오랜세월이 걸렸습니다.

나는 우에시바 선생의 합기도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무도의 차원과 깊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전에 해왔던 격투기나 사이비 합기도를 계속해 왔더라면 60을 바라보는 지금 내 나이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합기도 창시자는 세계 2차대전 중에 만주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으나 여러가지 힘든 고초를 격은후에

종교로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생명있는 모든 것을 보호하라’는 ‘만유애호’의 기치아래 합기도를 창시하기에 이릅니다.

그가 제시하는 기술과 그 기술과 일치되는 정신적인 가르침은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창시자의 한국인 최초 수련생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입니다.

영친왕은 합기도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평화에 대한 정신과 높은 기술에 매료되어 그의 집에 수시로 초대해서 배움을 가졌다고 창시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친왕은 합기도 창시자에게 2차대전이 끝날무렵 적지않은 금액의 하사금을 주어 합기도의 저변확대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창시자는 초기 제자들을 매우 강하고 힘든 훈련을 시켰고, 합기도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그의 제자들을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세계각지 특히 선진국들은 우에시바 선생이 직접 보낸 덕망높은 제자들에 의해 합기도가 제대로 보급되고 정착될 수 있었습니다.

서구유럽의 합기도 지도자와 대표는 창시자의 직계 제자가 많습니다. 따라서 평화를 갈망하는 창시자의 합기도 정신이 기술과 함께 변질되지 않고 올바로 전달 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광복이후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우에시바 모리헤이에 의해 시작된 합기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심지어 합기도라는 명칭마져 도용되기에 이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합기도를 종합무술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고 태권도와 다를 것이 없는 경기를 하며 합기도의 진정한 모습을 폄하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일반 스포츠와 같은 경기단체가 되어 돈벌이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창시자의 직계제자인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에게 30년 가까이 사사한 윤대현 사범에 의해 한국에서 이제서야 정통한 합기도의 정신과 기술을 바로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60년대 창시자의 말년 합기도 연무모습입니다.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이 우께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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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환 편집장
대한합기도회 사무국장 및 대한합기도회 중앙도장 도장장 2013년 러시아 월드컴벳게임즈 한국대표로 참가 세계본부도장에서 내제자 생활을 했음 ※ 중앙도장 위치 ※ - 서울시 동작구 사당로 28길 6 (3층) - 4.7호선 총신대입구(이수)역 9번출구 도보 3분거리 - 수련문의 : 02 - 3444 -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