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도(武道)의 탄생 배경

무(武)는 강하다는 뜻이므로 무술하면 ‘강한 기술’을 말합니다. 따라서 무술(武術)이라고 하는 것은 테크닉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무술은 무사들의 전유물이었고 테크닉은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이나는 것이 었습니다. 일본 역사를 살펴보면 봉건사회 귀족들은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문(文)을 숭상하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피를 부르는 것을 싫어 했기에 싸움은 사무라이가 담당했습니다.

이후 무사의 반란으로 성이 원(原)씨인 미나모토 요리토모에 의해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시대가 시작 되었고 쇼군(將軍)의 지위가 천황보다 높아지고 사무라이의 권위도 올라갑니다. 에도막부 시대가 쇠락하면서 1868년 천황을 중심으로한 개혁파들이 일으킨 메이지 유신으로 사무라이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이때까지 자연신도(自然神道)를 믿었던 일본인들에게 천황을 신으로 믿게하는 국가신도로 바뀌고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源 賴朝,1147~1199)
미나모토 요리토모(源 賴朝,1147~1199)

가볍게 생각해 보면 무(武)는 힘에 의해 쓰러지고, 문(文)은 협잡(사기)꾼들에 의해 망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로마치와 전국시대 그리고 에도시대까지 무술 유파는 30여 개가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전쟁이 멈추고 300년간 평화가 찾아 오면서 개인적인 유파가 생겨나고 30여개 였던 무술 유파가 700여 개로 늘어납니다. 전쟁시기에는 별로 없던 유파들이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더 많이 나타난 겁니다.

하남출판사에서 출판한 ‘고류검술과 아이기도’ 책에 소개했습니다만 간략히 말하면 고대 일본에서 발생한 무술 유파가 700여 개가 있었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지고 현재는 120여개 유파가 남아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것이 검도, 유도, 공수도, 합기도 같은 무도입니다. 무술이 무도로 바뀐 것은 일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상대가 죽어야 끝이 납니다.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난다.(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출처:네이버 블로그 이미지 캡쳐)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난다.(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출처:네이버 블로그 이미지 캠쳐)

무사는 검을 다루었고 검을 다루는 사람을 무예자(武藝者)로 일본어로는 부게이샤라고 합니다. 즉 검으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무위(武威)에 대한 권위를 가진 무사가 기교나 부리는 재주꾼으로 여기는 것을 싫어했고, 술(術)이나 예(藝)는 한쪽이 죽어야 끝이나는 테크닉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유파가 생길 때는 다른 유파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예부터 무사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해 왔는데 불교와 유교 그리고 신도와 무사도를 통틀어서 도(道)라고 보았습니다. 무술은 강한 테크닉을 말하지만 강하기만 한 것은 철학이 없기 때문에, 테크닉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더 추구하는 무도가 되었습니다. 무도는 사무라이 시대를 거치면서 겪였던 치열한 싸움이 아닌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도(道)로서 ‘무도’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도 수행이 하나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 그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무도가 된 것입니다. 인간성 향상의 이정표로서 무도의 역할이 커졌지만 아직도 무도를 테크닉으로만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도
무도
윤대현
국제합기도연맹(IAF) 한국대표 아시아합기도연맹 한국대표 (사)대한합기도회 회장 국제합기도연맹 공인 6단 신촌 본부도장 도장장 국제합기도연맹(IAF) 공인사범 도장연락처: 02-3275-0727 E-mail:aikido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