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검술 수련에서 시다치(仕太刀)와 우치다치(打太刀)가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 생사투(生死鬪)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한 판에 승부를 거는 검도나 유도 경기에서 서로 밀리지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부딪치지 않는 기술을 펼치는 합기도(Aikido)에서도 한판 승부가 있다. 그것은 검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류 검술의 원류인 가토리신토류와 현대 검도의 원류인 북진일도류를 모두 견학할 수 있는 곳은 신촌도장이 유일하다. 두 개를 함께 배우는 것은 아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아이키도 회원들이 가토리신토류를 익히고 있고, 주말에는 검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북진일도류를 수련하고 있다.

두 유파 모두 특별하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아이키도는 고류검술 쪽에 더 가깝고, 현대 검도는 북진일도류 쪽에 더 가깝다. 북진일도류의 특징은 아래 유투브 주소에서 6대 종가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상에 나오는 6대 종가는 매년 한국 회원들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ER8VE_0CtA

검술이 연무시범을 보일 때는 죽는 역할은 선배인 시다치(したち)가 담당한다. 마지막에서 후배인 우치타치(うちたち)가 항상 이기게 되어 있다. 선배가 죽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에서는 대부분 선배를 이길 수 없지만 연습 때는 언제나 져준다. 그것은 후배가 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교검지애(交劍之愛)에서 비롯된 것이다.

切りむすぶ
      太刀の下こそ
地獄なれ
      一足すすめ
あとは極樂

위의 시문(詩文)은 검술 유파인 야규신가케류(柳生新陰流)에서 가르치는 훈계와 같다. 해석을 잘못하게 되면 ‘검 아래는 지옥이고, 한발 나아가 피하면 극락’이라는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정확한 설명은 ‘칼끝이 닿는 순간, 마음이 칼 아래 눌리면(겁을 먹으면) 지옥이고, 죽을 각오로 한발 나아가면 극락이다’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훈계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비겁하게) 살고자 한다면 죽을 것이다 와 같은 의미가 있다. 검술 훈련은 그러한 의미에서 생사투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멋지게 보이려고 검술을 배우곤 한다. 하지만 시합에서 단 한판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처럼,

나갈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에서 최후의 선택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훈련하며 수양하는 목적은 심신(心身)을 단련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합에 나가서 승리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평생 한 번 일어날지 모르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계고(稽古,훈련)할 때는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칼이 맞닿는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주저하는 것이 곧 지옥이다. 생사투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무사안일(無事安逸)은 의욕과 열정이 없다. 훈련에 참여하는 자가 진정한 무인(武人)이다. 참기 힘든 것을 감내(堪耐)하지 못하면 무술은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선배는 교검지애로 후배를 이끌어주어야 한다.

검술 훈련에서 선배가 닦달하듯 후배를 위협하며 괴롭히는 것은 후배의 기를 꺾고 성장을 막는 행위이다. 그것은 배우는 학생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후배에게 정확한 기술로 이기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초심자에게는 어렵지 않은 기술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기술이 어려우면 마음이 무거워져 포기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