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다-고바야시 야스오 총사범

아래 글은 합기도 고바야시도장 신문 최근호에 올려진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의 글입니다.
2016년 미국강습회에서 지도하고 있는 고바야시 야스오 총사범

긴급사태 선언이 10월에 해체되어 그동안 못 나오던 회원들이 점차로 수련에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도장은 작년 4월과 5월, 2개월간 도장을 폐쇄했습니다. 수련 재개 후에는 도장 입구에 소독제를 두고 마스크를 쓰고 수련하며, 수련 후에 바닥을 소독하는 등 감염방지대책에 힘써왔습니다.

그러나 수련 중엔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감염될까봐 계속 쉬는 회원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도장 내에서 감염된 사례는 하나도 없었기에 여러분의 협력에 고마움을 표시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힘내서 지도해 나갈 것입니다.

제가 도쿄 고다이라에 자리 잡은 것은 1964년 첫 번째 도쿄 올림픽이 열린 해입니다. 도쿄 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이었기에 저에게 깊은 추억이 있습니다. 도쿄 치요다구 구단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도쿄무도관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유도가 정식 채택되고 유도 시합이 일본 무도관에서 치러졌습니다.

일본인은 누구나 유도는 모든 체급에서 일본이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의 체급은 지금과는 다르게 경량급부터 무차별급까지 4개의 체급이 있었습니다. 중량급까지 세 체급은 일본인 선수가 우승했습니다만 무차별급에서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 선수와 일본의 가미나가 아키오 선수의 시합은 누르기 기술로 가미나가 선수가 졌습니다.

이 일로 유럽에서 유도 보급이 단숨에 확대됐다고 합니다. 실은 저와 가미나가 선수는 메이지 대학에서 학부는 다르지만 동기였습니다. 저도 어릴 적엔 강도관에서 유도를 했습니다. 가미나가와 직접 시합을 한 적은 없지만 얼굴은 알고 있었습니다. 가미나가는 초단 승단 심사에서 19명을 이겨 그 자리에서 3단으로 승단을 했습니다.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여 유도부에 견학하러 갔을 때는 가미나가가 유도부에서 연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유도부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만 누가 가보자는 말에 합기도 본부도장에 견학 갔다가 시합 없이 수련하는 합기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1955년 4월에 18세의 나이로 합기도 본부도장에 입문하여 메이지 대학에 합기도부를 만들고 수련을 계속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졸업 후엔 합기도부 감독이 되고 지금은 명예감독입니다. 1969년 4월, 자택에 도장을 열고 올해로 52년이 됩니다. 나이는 9월 20일에 85세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이에게 합기도를 전하자’를 모토로 가족의 도움에 힘입어 합기도를 보급해 왔습니다. 해외로도 합기도의 고리를 넓혀 세계 40개국의 합기도 도장 및 조직과 교류를 갖고 있습니다. 올해 생일에는 고바야시 도장 회원들은 물론 미국, 유럽 각국, 중국, 대만, 등 해외 합기도인들도 축하 메일과 카드를 보내주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지도하는 고다이라, 도코로자와 도장의 회원과 중국의 하 선생은 생일 케이크도 보내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매년 고다이라시에서 받는 건강검진에서는 나쁜 수치가 하나도 없어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도 몸조심하고 잘 지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재미있게 수련할 것입니다.

고바야시 히로아키 도장장도 합기도 본부도장이 발행하는 <합기도 탐구> 제62호에서 <다음 세대의 지도자에게 듣다>라는 기사의 첫 번째 주자가 되어 고바야시 도장이 합기도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매일 심신을 갈고 닦으며 앞을 향해 나아갑시다.

고바야시 도장(小林道場) 총사범 고바야시 야스오 8단

마스다 마나부 사범(좌)와 히로아키 도장장(우)을 지도하는 총사범(19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