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검지애(交劍知愛)를 느끼다. – 국제우호연무대회 참가후기

“으윽 -”
1 월 26 일 오후 5 시 50 분 경 . 아침부터 오른쪽 배에 살짝 느껴지던 통증이 쥐어짜는 듯한 심한 통증으로 바뀌며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
순간 ‘아 ! 내일 일본으로 출국해야하는데 …’
아픈 내 몸보다 내일 출국하지 못하면 어쩌지란 걱정이 먼저 앞섰다 .
검술로는 첫 참가하는 국제행사이고 , 직접 스가와라 선생께 모쿠로쿠를 받고자
대명절에 !! 그것도 며느리가 !! 그 본분도 외면한 채 !! 몇 달 전부터 계획한 무도여행이건만 !!

아픈 부위가 맹장이 위치한 부위여서 혹시 맹장이 터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고 바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송경창 지도원은 환자복을 입고 응급실 한 켠 침대에 누워있는 날 발견하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당장에라도 일본 여행을 취소할 태세였다 .
혈액검사 , 소변검사 , CT 및 엑스레이 촬영을 한 끝에 맹장은 아니라는 결론과 연휴가 끝나면 외래로 다시 내원하여 OO 과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진단이 나왔다 .
‘휴 ~ 응급한 상황은 아니구나 .’
하복부 통증은 여전했지만 일본에 가서 얌전히 구경만 하고 온다는 조건 (ㅠ .ㅠ )을 걸고 여행자 보험까지 가입하고 나서야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일본에 가서도 운동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와야 한다는 사실에 상심한 나는 , 그저 그렇게 영혼 없이 제주에서 김포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그런 날 안쓰럽게 보던 송경창 지도원이 무려 4 개월 치 용돈을 털어 나에게 선물을 안겨주었다 !!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하하 !
선물 사줬더니 얼굴이 폈다며 그 어떤 약보다 효능이 좋은 약이라고 문영찬 지부장과 희야 언니가 여행 내내 놀렸지만 , 사실 신랑의 마음 씀씀이가 예뻐 부러 밝은 표정을 지은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고 해도 믿지 않겠지 …나 명품백 밝히는 그런 뇨좌 아니라고 !!…한 번 외쳐는 보자 .).
그랬더니 놀랍게도 통증이 점점 잦아들었다 .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더니 !!
점점 호전되어 가는 내 몸 상태에 어쩌면 운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으며 첫 날을 마무리했다 .

스가와라 선생의 배려로 도장에서 숙박을 해결한 한국팀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수련 준비를 하였다 . 비공식 수련이었기에 핀란드팀과 한국팀만 참가한 채 오전 수련이 진행되었다 . 출국 전 약속한 대로 설렁설렁 몸을 풀고 구경만 하던 나는 핀란드의 에릭 선생과 문영찬 지부장의 오모테노타치를 보고는 그만 ! 봉인이 풀리고 말았다 .
‘아 ! 한번 붙어보고 싶다 .’는 투지가 활활 타오른 것이다 .
홀린 듯 그 모습을 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난 이미 에릭 선생을 붙잡고 말하고 있었다….오네가이시마쓰 !
저 멀리서 송경창 지도원의 눈초리가 뾰족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뭐 애초에 못 지킬 약속이었음을 서로 알고 있지 않았던가 !! (사실 검을 맞대고 있을 때는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내가 아픈지도 몰랐다 .)
내가 느낀 에릭 선생의 놀라운 점은 상대가 자신의 실력보다 1~2 단계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잠재력을 끌어올려준다는 점이다 . 내 실력에 맞춰 설렁설렁 해준다거나 상대가 너무 빠르고 강해 자포자기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 검을 맞댈수록 상대가 진지하게 나를 상대해 준다는 느낌과 함께 ‘어 ? 한번 해볼만한데 ??’ 란 의욕이 생기며 전력투구하게 된다 .
에릭 선생과 검을 맞댄 회원들의 눈빛을 보고 있자면 이런 느낌을 나만 받지는 않은 듯 했다 . 각기 다른 실력을 가진 상대에게 같은 느낌을 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선생의 20 년 수련 내공이 맘 속 깊이 와 닿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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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팀과 핀란드팀의 오전 비공식 수련을 마치고>

그날 저녁 .
행사 리허설 및 공식 수련에는 일본 , 미국 , 러시아 , 불가리아 , 핀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약 60 여 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였다 . 수련 시작 전 나라별 참가자 소개가 있었는데 스가와라 선생께서 윤준환 사무국장을 ‘한국 윤대현 선생의 아들이다 .’라고 직접 소개해주시고 , 한국팀은 가토리 검술은 늦게 시작하였지만 열심히 수련하여 실력이 좋은 팀이라고 소개해주실 때는 기죽지 마라 말씀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
다음 날 있을 행사 때 자신의 검술 파트너와 카타를 맞춰보는 것을 시작으로 불꽃 튀는 수련이 시작되었다 .
스가와라 선생께서 please 를 몇 번 씩 외치시며 살살하라고 하셨지만 그 말을 지키고 싶은 회원은 몇 없는 듯 했다 . 쉬이 만날 수 없는 고수들이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투지가 느껴졌다 .
나 역시 일본의 사이토 선생을 시작으로 스웨덴의 피터 선생 부부 , 이번에 교시 멘쿄를 받으신 해외 선생 두 분 , 그리고 모쿠로쿠를 같이 받게 된 몇몇 분들과 검을 맞대며 신나게 운동을 했다 . (아참 ! 내가 아팠었지 ..? 이때쯤 되니 아팠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좋아져 있었다 . 내가 신이 나니 몸도 덩달아 면역력이 급상승 한 게 아닌가 싶다 .)
나카노 선생이 오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오지 않으셔서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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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수련 및 리허설을 마친 후>

드디어 행사 당일 !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들다는 그날이다 …하하
2013 년에 신혼여행 차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검술회원이 아니었기에 행사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겉돌았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
태극권의 움직임이 참 아름답다 느껴졌고 , 검을 맞대고 수련하던 이들이 아이키도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 지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
모쿠로쿠 및 교시멘쿄를 행사 당일 스가와라 선생께 직접 사사받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영광이지만 대외적으로도 참 중요하구나를 느꼈다 .
‘어제 나와 검을 맞댄 이가 이번에 모쿠로쿠 혹은 교시멘쿄를 받는구나’를 세계에서 모인 회원들에게 각인시키고 ,
또 그렇게’ 2 년 전에 모쿠로쿠 혹은 교시멘쿄를 받은 이가 이번에 보니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더라. 나도 더 정진해야지’란 다짐을 하게 되고 …
그렇게 쌓인 교검지애로 서로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축하선물이 있을까 .
만약 올해 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 2 년 후의 난 , ‘모쿠로쿠인지도 모르는 한국의 어떤 회원 ’ 정도일 것이다 . 올해 첫 발을 디뎠으니 다음에 참가할 때는 이번에 보여줬던 내 실력보다 더 향상된 모습을 보이면 되는 것이다 . 그렇게 나의 발전을 각인시키고 한국팀의 발전을 각인시키다보면 언젠가 한국팀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다른 나라 회원들에게 기대의 대상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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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덤한 교시멘쿄와 달리 모쿠로쿠를 받게 되어 한없이 즐거운 그들 >

그날 저녁 파티는 문영찬 지부장의 친화력이 빛을 발한 시간이었다 .
행사 다음날 오전에 특별수련을 하고자 하는 회원이 있으면 도장을 오픈하겠다는 스가와라 선생의 메시지가 있던 터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는 해외 유명 선생을 찾아다니며 다음날 함께 수련하지 않겠냐며 영업 (?)을 뛰었다 .
그렇게 피터 선생의 스웨덴팀 , 세르게이 선생 , 일리야 선생의 러시아팀 , 에릭 선생의 핀란드 팀 그리고 미국팀과 한국팀으로 이루어진 특별 수련팀이 꾸려졌다 . 앗싸 ~

이렇게 성사된 특별수련에서 난 또 한 번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러시아 세르게이 선생 .
가토리신토류의 교과서를 보는 듯 날카롭고 정확하며 한 검 한 검에 잔심을 표현하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 그리곤 …붙어보자 !!
세르게이 선생과 하면서 나는 내가 어떨 때 미리 움직이는 지 어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지를 알 수 있었다 . 공격이 정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내 눈을 꿰뚫듯 쳐다본다 . 물론 선생의 검 끝은 나를 곧 찌를 것처럼 나를 향해있다 . 그럼 그 순간 내가 어떻게 움직였어야 하는지를 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입이 아닌 검으로 말을 하는 무서운 분 .

일리야 선생은 최근 일 년 간 검을 손에 쥐어보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
음 …그런 상황에서 그런 실력이면 이 분 또한 정말 어마어마한 분이신 듯하다 . 검을 맞댔을 때의 느낌은 핀란드의 에릭 선생과 비슷했다 . 내가 약간 벅찰 정도 , 한번 붙어보자는 투지가 생기고 , 하고나면 재밌었다고 느껴지게 상대해 주셨다 .

그리고 스웨덴의 피터 선생 .
전날 공식 수련에서 몇 번 검을 맞댄 이후로 막내딸 대하듯 스스럼없이 먼저 오셔서 같이 하자고도 해주시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해주셔서 참 고마운 분이셨다 . 내 수준에 맞게 즐겁게 검을 이끌어주시기에 끝나고 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

매번 해외 무도 여행을 나갈 때마다 그동안 참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구나를 느끼곤 한다 .
기본 20 년 이상 가토리 검술을 해온 해외 유명 선생들의 내공을 내가 하루아침에 따라 잡을 순 없겠지만 , 꾸준히 정진해서 나도 언젠가는 나와 검을 맞댄 이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그런 상대로 기억되고 싶다 .

 

2017-01-31 15.12.09
<급히 성사된 특별 수련을 마친 후>

벌써부터 2 년 후가 기대된다 .
arigato Sugawara sensei~!

 

2017-01-28 12.51.51
<여보야 2년후에 또 오자. 돈 많이 벌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