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종과 불복종(2-1)-조현일 에세이

합기신사

1930년대 말이 되자 일본제국정부는 창시자의 다수의 제자들에게 징병법에 의한 소집영장을 발부합니다. 창시자의 슬하에서 무도를 연마하던 수많은 제자들이 영장에 응하여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전장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급격한 팽창주의를 국가의 독트린으로 삼고 있던 당시의 일본제국은 무도의 정신과 이념을 무시하고 많은 유파의 수많은 무도인들을 전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군사제국 정부의 요구로 해외로 파병되어 타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하라는 지령이 비윤리적이라 생각하는 자는 양심거부를 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당시의 전세계의 어느 국가의 국민과 신민臣民도 황제, 왕, 정부의 명에 윤리의 잣대를 대는 선진적인 계몽의식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1942년에 이르자 창시자는 제국정부의 전시정책의 일환으로 활동하던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의 통제에 불응하기로 결정합니다. 제국주의 전쟁의 앞잡이가 되기를 거부하고 오늘날의 카사마笠間인 이바라키현 이와마岩間의 산속으로 은거해 버립니다. 집요한 징병 강요에 대한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1944년 스사노오와 타케미카즈치를 비롯한 신령43위를 무신武神으로 모시고 합기신사合氣神社를 세워 평화의 무도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오늘날 전세계에 보급된 아이키도의 산실로 삼았습니다.

홍세화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1995)는 당시 세간에 ‘똘레랑스’라는 프랑스어를 유행시켰습니다.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이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는 ‘관용’의 정신을 설파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관용’에 따라 의견차이가 있을 때마다 둘 다 옳다고 인정해야 할까요? 물론 취향의 차이라면 양측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뉴진스를 좋아하면 BTS의 음악을 잘 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팬클럽이 상호비방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뉴진스를 좋아하며 ‘Ditto’가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랙핑크를 열렬히 추종한다고 모차르트와 비발디가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며, 초코민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딸기바닐라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이 ‘옳지 않다’고 힐난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취향은 서로를 존중하는 선택지 외에는 있을 수 없으며 합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합의하는 일이 애초에 가능할 지도 생각해 볼 만 합니다. 가끔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고 ‘숙의熟議’에 다다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쓰레기처리장이나 생물폐기물처리장,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 여부 등의 문제를 공론 조사하는 경우 정부와 지자체는 숙의의 과정을 거칩니다. ‘숙의’는 사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사고와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러한 의견불일치가 해소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철학자들은 ‘비판적 토의’를 도입합니다.

논증의 규칙에 따라 상대방이 동의하는 바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토론의 방법론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비판적 토의’는 엄밀한 논증의 규칙을 따라야 하며 합리적 의사소통을 위한 합리적 상대를 요구합니다. 즉 상대방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주체라면, 몽니를 부리거나 자신이 동의한 바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 도출된다 하더라도 이 주장을 수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이 옳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더라도 이를 거부합니다. 소신이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와 고집불통/소통불가능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입니다.

출처:스톡벡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협박/겁박과 무력/폭력과 같은 비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접근방식을 합리적이라 부를 순 없겠죠. 매스미디어와 언론을 이용하여 특정 사상에 편향을 가지게 만드는 집단 세뇌나 교묘한 퍼포먼스를 통한 대중의 집단적 동정심을 유발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방법은 비효율적이기도 하거니와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른다는 기본원칙에는 합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면에서 깨어나면 아무리 무지한 대중과 인민도 묘한 설득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합리적이지 않았던 의사결정에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의견의 차이를 연구한 미국의 철학자 에리히 푀겔린Erich Hermann Wilhelm Vögelin은 편향이나 선호에 가까운 가치관과 패러다임에 ‘판단틀framework’이라는 용어를 붙입니다. 푀겔린은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상이할 경우 의견차이의 해소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이 서로 충돌할 경우 비판적 토의는 이러한 다수의 세계관에서 일관적이지 못한 면을 무한한 대화를 통해 발견하려는 시도이자 과정입니다. 이러한 비판적 토의를 거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쩌면 두 세계관은 서로 존중해주어야 할 ‘취향’과 비슷할 지도 모릅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제가 대학학부시절이던 90년대 초의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저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노스탤지어에 젖거나 혀를 끌끌 차며 보셨을 겁니다. 미술대학 산업디자인 전공이던 저희 과 학부생들은 얼핏 느끼기에도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영혼들이라 시위를 주도하던 대학중앙서클에서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나름 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도서관 앞에서 이루어진 열혈 시위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의식이 부족했던 저의 활동은 할당받았던 스티커를 전봇대와 화장실에 붙이는 소소한 시위에 그치긴 했지만, 수많은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젊음을 불살랐던 시대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철학자 토마스 힐 주니어는 1979년의 논문 ‘상징적 시위와 계산된 침묵Symbolic Protest and Calculated Silence’에서 철학적 깊이와 실용적 의미를 함축한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위를 통해 불의가 종식된다고 기대할 수 없을 때도 사람들은 왜 심각한 불의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가? 더 나아가 시위 참가를 이유로 해를 입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시위를 벌이는가?’

힐 주니어의 시위(혹은 체제에 대한 저항)에 대한 질문은 정치적 시위의 불편하지만 의미심장한 진실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적 저항시위 참가자들의 노력이 결국에는 권력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도리어 저항시위참가자 개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저항시위의 부정적인 측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항시위가 단순히 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멈추지 않고 이를 초월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는(저항시위의 긍정적 측면) 양면적인 시각입니다.

저항 행동을 감행하는 개인은 체제 중심의 사고틀을 깨고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고 자각하려는 의식적 주체입니다. 부당한 법률이나 인종차별적인 정책, 또는 적대하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당장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항 행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개인이 저항 행동을 통해 정의에 대한 신념을 스스로 강화하고 불의를 배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는 시위의 본질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드러내기 위함에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듀보이스의 견해는 저항 행동을 하는 개인이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기 보다는 타인의 동정심에 호소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한 동시대의 사상가 워싱턴Booker T. Washington과 대조를 이룹니다. 듀보이스는 저항행동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비롯되는 불의와 무례함을 넘어서야만 스스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사회학자들은 저항행동은 개인 주체가 스스로를 존중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자아존중이 개개인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데 기여하는 안정된 가치관이라고 해석합니다. 두 사람 모두의 주장을 눈여겨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은 저서 ‘법고전산책(오마이북, 2022)’에서 그리스 3대비극 중 하나인 ‘안티고네’에 나타나는 법사상을 소개합니다. ‘안티고네’의 작가인 소포클레스는 황제 페리클레스가 막강한 권력으로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던 아테네가 정치와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방면에서 가장 화려했던 전성기에 활동하던 극작가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황금시대’라고 부르죠. 테베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크면 아버지를 살해할 운명이라는 신탁에 의해 버림받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프로이트의 컴플렉스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아침엔 네 발, 점심때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건 누구?’ 라는 아재개그 비슷한 농담을 던지고는 답을 모르면 무조건 잡아먹어버려 테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스핑크스를 죽여버리고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아버지를 죽이고 테베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와 결혼까지 하게되어 저주의 신탁을 그대로 실현시켜버렸습니다. 자신의 슬픈 운명을 비관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빛을 저버리고 유랑하다가 병사합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셈이죠. 성정이 따뜻했던 안티고네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동정하여 마지막까지 오이디푸스의 곁을 지켰습니다. 안티고네에게는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라는 오빠들이 있었습니다. 권력을 쥐고 싶었던 폴리네이케스가 테베에서 축출되었다가 군대를 조직해 테베를 침공하자 에테오클레스가 이에 맞서 테베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결국 이 전쟁에서 두 오빠들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왕위다툼에서 승리한 이오카스테의 동생인 크레온Creon은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에 대해선 성대한 장례를 치루어주지만 쿠데타를 기획한 폴리네이케스에 대해선 시신이 들판에서 부패하도록 방치하라는 왕명을 내립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매장하지 않은 시신의 영혼은 명계冥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반역자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처벌이었습니다.

오빠의 주검을 수습하는 안티고네

크레온은 누구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수습하려고 한다면 광장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돌로 쳐 죽이겠다고 엄포를 내립니다. 하지만 ‘성정이 따뜻한’ 안티고네는 오빠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비참함을 막기 위해 광야에 나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장례치루려 합니다.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Ismene는 그 말을 듣고 공포에 치를 떨며 ‘크레온 왕의 명령을 어기면 (…) 끔찍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게 분명해. 언니, 우린 한낱 여자의 몸이고, 남자들과 대항해 싸우기엔 역부족이야. 우린 강한 권력 앞에 어쩔 수가 없어. 매장을 금하는 왕의 명령과 법, 아니 이보다 더 나쁜 경우라고 해도 복종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안티고네가, ‘이스메네, 강요하진 않겠어. (…) 하지만 불쌍한 오빠를 꼭 묻어줄거야. 이로 인해 죽는다고 해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 넌 마치 인간의 법만을 생각하고 신의 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같구나. (…)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라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죠. 안티고네는 비록 나라의 반역자라고 해도 천륜의 도리로 사자를 매장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왕의 명령, 곧 법을 의도적으로 거스릅니다.

안티고네는 신의 법, 즉 도리가 ‘인간이 만든 법’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안티고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들판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하고 장례를 치루어 줍니다. 이를 보고받은 크레온은 격분하여 안티고네를 체포하여 심문합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명령을 어긴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십 년을 개처럼 봉사한 이실장을 땅에 묻어버리려고 한 형님에게 질문하는 이병헌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하지만 이병헌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한 장면

도대체 내 어떤 행동이 이 사람에게 모욕감을 준 건지… 크레온도 마찬가지로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면전에 당당하게 말합니다. ‘당신의 명은 신의 명령이 아닙니다. 인간을 다스리는 신의 정의는 왕명이나 법과 무관합니다. (…)
신의 불문율은 과거나 현재의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숨 쉬는 영원한 법이지 않습니까? 인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신의 불문율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 이를 두고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날 어리석다고 보는 당신이 나보다 더 어리석은 이가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이에 분개한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굶어 죽이라고 명하고는 ‘법을 업신여기고 왕의 권위를 조롱하는 자를 난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

설사 정당한 일이 아니라 해도 백성들이 순순히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 불복종보다 더 치명적인 악은 없을 것이다. 불복종이야말로 나라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라며 강경한 처벌을 정당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크레온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정당하지 않더라도 왕명은 곧 아테네의 법이니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법을 무시하는 범죄자일 터인데 이런 자를 옹호하는 일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죠.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지 않았던가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티고네가 자살하기 직전에 테베의 원로들의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정의라는 큰 명분 아래 그대의 길을 나아갔지만, 지나치게 대담해 파멸에 이르고 말았구나. (…)

권력의 힘은 막강합니다. 지나친 고집과 확신이 그대를 파멸로 몰아넣었소.’ 안티고네의 왕명에 대한 저항은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되는 ‘시민불복종’의 사례입니다. 물론 왕명을 거스른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었겠지만, 무력을 사용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폭력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체제의 강요에 하늘이 내린 인간의 기본권리(그 당시엔 신의 율법)가 우선한다는 법개념을 주창한 첫 사례였다는 거겠죠.

출처: 포스트

숲속 오두막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모든 ‘자연인’들의 귀감인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러한 시민불복종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제시한 인물입니다. 독실한 청교도 신자였던 소로는 미정부의 주도로 진행되던 멕시코전쟁를 반대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인두세’라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하였습니다. 인두세는 소득과 납세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일률적인 세율로 매기는 당시 미국의 세금제도였습니다.  덕분에 소로는 구두 밑창을 고치러 시내에 나갔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하루동안 구금되었습니다. (결국 고모가 대납을 해줘서 풀려났죠. 미국은 세금을 내지 않으면 무덤을 파 금반지를 빼가는 무시무시한 나라입니다.)

세금 안냈다고 감옥에 다녀온 소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1849)이라는 법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에세이를 집필합니다. 간디와 킹 목사 등 이후의 수많은 비폭력저항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글입니다.
‘먼저 인간이 되고, 그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선했던 사람들도 법을 존중하다가 나날이 불의의 하수인들로 변해가고 있다.’

신민으로서의 의무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권리가 선행한다는 주장인데, 얼핏 듣기에도 다소 과격한 견해로 보이죠. ‘(불의의) 법을 준수하고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악법을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준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 법을 버릴 것인가?’ 만일 불의가 ‘체제’라는 정치기계의 필수불가결한 마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 기계가 고장을 일으켜 멈춰설 때까지 방치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가능성은 불의의 체제의 속성이 개인이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기를 강요할 경우입니다만, 이에 소로는 법을 어기고 기계를 당장 멈추라고 조언합니다. 당시의 노예제도를 폐지하려는 지배적인 정치적 의식이 시간이 흘러 모든 이들이 계몽되기를 기다리는 온건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소로는 불법이더라도 당장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멕시코전쟁을 멈추자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스스로가 노예 폐지론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메사추세츠 주 정부에 대한 지지를 당장 전면 철회해야 한다. (…)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노예를 소유하지 않고 실지로 그 공범자들 집단에서 탈퇴한다면,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될 것이다. (…) 부당하게 사람을 잡아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다.’

이러한 즉각행동에 대한 권유는 자칫 폭력에 대한 의존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이는 소로의 시민불복종이 폭력적인 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불복종과 혁명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체제의 법질서를 폭력과 무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전복시키는 과정을 지칭합니다.

말콤 엑스 (출처:연합뉴스)

미국의 말콤 엑스Malcom X는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주의를 강하게 비난하며 당장의 불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폭력투쟁의 정당성을 설파하였습니다만, 이러한 폭력투쟁은 소수의 정당성을 관철하기 위해 불특정다수를 향해 비정한 폭력을 행사하는 테러리즘과 구별되기도 힘들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일찌기 ‘국민의 창Spear of the Nation’이라는 무장폭력조직을 결성하여 인종차별체제를 타도하려 했지만 27년의 수감생활이후 무장투쟁노선의 불의를 절감하고 비폭력투쟁으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소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혁명권’이라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체제의 폭정과 무능이 극에 달해 견딜 수 없을 때 충성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권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체제, 법률, 재판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지만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며, 법률 위반에 따른 처벌을 수용하는 태도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즉, 거부하고 저항할 권리를 가지는 대신 그 반대급부로 처벌이 있을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연한 결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정의론의 수립에 기여한 사회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에서 시민불복종을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기는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납세를 거부한다면 그 불이익을 달게 받아야 하며 병역을 양심거부한다면 병역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로는 납세를 거부하여 투옥되었고, 간디는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소금행진'(인도인이 소금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없고 반드시 영국인이 만든 소금에 세금을 내고 사서 써야 하는 ‘소금법’에 반대한 390킬로미터의 국토종단행진)을 하고 투옥되었습니다.

간디의 소금행진

미국 앨러바마의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버스의 인종차별적인 흑인전용좌석에 반대하여 투옥되었습니다. 간디는 옥중에서 불의한 실정법을 위배하고 ‘악에 협조하지 않는 행위는 선에 협조하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한 의무’라고 말하며 ‘체제가 무법적이고 부패했을 때 시민불복종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트부르흐Gustav Radbruch는 히틀러 치하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1946)에서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 충돌하는 경우 해결방식은 다음과 같다: 국회에 의해 제정되고 집행이 체제의 권력에 의해서 보장되는 실정법은 내용이 부정의하고 비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정의의 원칙보다는 일단 우선권을 갖지만, 실정법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에 위반하는 경우 ‘정당하지 못한 법’이 되며, 실정법은 정의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 하지만 실정법을 제정할 때 정의의 핵심인 평등이 의도적으로 부정되고 침해되는 경우 실정법은 ‘정당하지 못한 법’이라고도 인정할 수 없으며 법으로서의 성질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법률은 법률’이라는 법률실증주의철학을 거부했던 라트부르흐의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부정한 실정법에 시민불복종을 허용하고 체제에 대한 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죠.

조현일 에세이 〈굴종과 불복종(2-2)〉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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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