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쿠 씨가 본 윤 선생님의 추억

영화 ‘박열’에서 인권변호사로 나온 타스쿠 씨, 영화의 한 장면

대한합기도회 본부 신촌도장에 12년 전에 타스쿠 야마노우치 씨가 입문을 했습니다.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서울에 살면서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일본인 입니다. 직업은 성우이고 연기자 입니다. TV와 영화에서 단역으로 자주 출연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박열’에서 인권변호사 역으로 나와 한국인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신촌도장에 처음 입문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물었는데 그 대답을 이메일로 정리해서 보내 주었습니다. 원문과 함께 내용을 번역해서 공개합니다.

우측에서 2번째, 배우는 학생으로서 선생에게 집중하고 있는 타스쿠 씨

윤 선생님의 추억

-2010년 봄, 나는 도장을 처음 방문했다.
그때 윤 선생님의 인상은 ‘옷을 입은 호랑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박력이 흘러 넘쳤다.

-윤 선생님이 한국 격투기계의 전 챔피언이며, 게다가 무에타이를 처음으로 한국에 들여온 과거의 영광은 잘 알려진 것이므로 길게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런 인물이 격투기를 버리고, 합기도(Aikido)로 완전히 전향하는 경우는 본국 일본에서도 드문 일이라 나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 그 이유를 묻자 윤 선생님은 대답했다.

“격투기는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오만하게 만들고, 고독과 불행을 가져다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좋은일이 아니었다. 합기도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무술을 만났다고 느껴 꼭 한국에 널리 알리고 싶은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순조롭게 운영하던 격투기 체육관을 후배에게 넘기고 완전히 합기도로 전향했다.

– 하지만 90년대 이전 한국 무도계는 그야말로 반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윤 선생님이 하신 일은 ‘한국 무도계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되어 괴롭힘을 당했다. (차도 방화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편집자주:타스쿠 씨가 입문 바로 전인 2009년7월16일에 차량 방화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아직도 미해결된 사건으로 그 당시 일부 몇몇 사람들은 일본무도에 대한 반감을 가진 자의 소행이라고 의심했다. 아래사진>

신변의 위험을 느껴 때로는 주위를 경계하며 벽에 붙어 다니기도 했다.

도장 입구 차고에 세워진 차량 방화로 폐차장으로 실려가는 카니발

–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곤궁했다.

합기도는 사업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워, 그때까지 살던 집을 팔고, 차를 팔고, 마지막으로는 아이 교육보험까지 해약했다고 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가슴을 펴는 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나는 일본인으로서 고마움과 죄송함을 느낀다.  일본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그 때문에 윤 선생님을 돕고 싶은 일본인이 많다.

– 한때 일 때문에 서울에 살던 일본인 선배 Y씨도 윤 선생님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의 도장에서도 “(공격성을 부정하는)화의 정신”을 말로는 가르치지만,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윤 선생님은 격투기 시절에 이미 실제 체험을 통해서 깨닫고 있다.

– 그 무렵에도 도장에는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윤 선생님처럼 반일의 역풍을 무릅쓰고 일본 무술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연무대회 선전 포스터에 대회 장소 이름을 쓸 수 없다. 쓰면 항의가 쇄도하고 개최를 중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들은 것을 기억한다.

– 나는 그날 바로 입회를 결정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윤 선생님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야마노우치 타스쿠

신촌 본부도장에서 무기술 연무를 보이고 있는 타스쿠 씨

<원문 공개>

ユン先生の思い出

-2010年の春、僕は初めて道場を訪れた。
その時のユン先生の印象は「服を着た虎」。いるだけですごい迫力だった。

-彼が韓国格闘技界の元王者であり、なおかつムエタイを初めて韓国に輸入した過去の栄光は周知のことなので割愛する。

ただ、そんな人物が格闘技を捨て、合気道に完全に転向するケースは本国日本でも珍しいことで、僕も腑に落ちなかった。

-その理由を尋ねると、ユン先生は答えた。

「格闘技は人の攻撃性を育てる。それは本人を傲慢にし、孤独にし、不幸にする。良くないことだとずっと感じていた。合気道を知ったとき、初めて人を幸せにする武道に出会えたと思った。これをぜひ韓国に広めたい。そう思い、順風満帆だった格闘技ジムを弟子に引き継ぎ、完全に合気道に転向した」

-しかし90年代以前の韓国武道界は、まさに反日思想の砦だった。

ユン先生の行為は「韓国武道界への裏切り」とされて多くの嫌がらせを受けた(車にも放火されたという)。身の危険を感じ、時には壁沿いを歩くなどして、気を配っていたらしい。

-さらには経済的にも困窮した。

合気道はビジネスになりにくく、それまでに得た家を売り、車を売り、最後には子供の学習保険まで解約したという。

-「それでも後悔はない」と胸を張るユン先生の姿を見ると、僕は日本人として有難さと申し訳なさを感じてしまう。きっと日本の先生たちも同様で、そのために彼を助けたいと思う日本人が多いのだ。

-一時期仕事のためにソウルに住んでいた日本人の先輩、Y氏もユン先生を特別に思っていた。

「日本の道場でも“和の精神(攻撃性の否定)”を言葉では教えるけれど、深く理解している人は少ない。ユン先生は格闘技時代にすでに実体験を通じて悟っている。そこがすごい」

-その頃も、道場の中には情熱的に稽古をするたくさんの先輩道場生たちの姿があった。ユン先生同様、反日の逆風の中で日本武道を選んでくれた人たちだ。

「演武会の宣伝ポスターに会場名を書けない。書けば抗議が殺到し、開催中止に追い込まれるから」と聞いたことを思い出す。

-僕はその日、すぐに入会を決めた。

それから12年が流れた今も変わらず、ユン先生の弟子であることを誇りに思っている。

山野内 扶
(Yamanouchi Tasu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