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 – 부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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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 관계상 부록도 몇 편에 걸쳐 올리기로 했다. 같은 Hapkido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내용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면 좋겠다. 제목 밑에 파란 색 글씨로 요점을 적었고, 주목해야 할 곳은 굵은 글씨, 밑줄 표시를 했다.

* 문단 구분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글은 필자가 보기 좋은 곳에서 문단을 나누었다.

* 원문은 한자(漢字)만 썼는데 한글 전용세대를 위해 필자가 한글을 함께 적은 곳도 일부 있다.

 


○ 1962년 『合氣術』(김정윤 저, 구미서관)

인도 → 중국 → 한반도 → 일본 (→ 최용술 선생을 통해 한국 재유입) / 최용술 선생의 무술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뜻에서 목차 앞에 최용술 선생의 사진을, 본문 마지막에 최용술 선생의 일본 수도기(修道記)를 넣었음

 

제1장 총설(總說)

  제1절 합기술(合氣術)의 유래(由來)와 사적소고(史的小考)

 

일본유술(日本柔術)의 역사이전(歷史以前)에 유술(柔術)의 역사(歷史)를 보면 그 근원(根源)은 인도(印度)일 것이라고 본다. 유술(柔術)이 일본(日本)에 전(傳)하여진 것은 유술(柔術)이 동남아지방(東南亞地方)에 유행(流行)하고 있던 것이 중국(中國)으로 전(傳)하여졌고, 중국(中國)에서 한반도(韓半島), 한반도(韓半島)에서 일본(日本)으로 전(傳)하여진 것으로 본다. 지금(只今)도 인도(印度), 버어마, 말라이 등지(等地)에서는 합기술(合氣術)이 유행(流行)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합기술(合氣術)의 유래(由來)는 옛날 동남아지역(東南亞地域)에서 유행(流行)하던 무술(武術)이 불교(佛敎)의 전도자(傳道者)로 하여금 일본(日本)으로 전수(傳受)되어, 일본인(日本人)이 발달(發達)시킨 것으로 본다.

* 필자 주 : 김정윤 선생(이하 선생)은 ‘최용술 선생의 무예는 이런 것이다’라고 알리기 위해 『合氣術』을 쓴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선생은 『合氣術』에서 ‘이 무술 이름은 Hapkido’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뒤이어 Hapkido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의 내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Hapkido 관련 자료의 제일 앞머리에 올린 것이다.

선생의 회고록 『大東武』에는 『合氣術』을 쓰게 된 경위가 나온다. 원래 다른 사람이 (최용술 선생의 무술에 대해 쓰겠다며) 최용술 선생의 허락을 받아서 준비하던 책이 있었다. 그런데 선생이 확인해 보니 참고하라고 건네준 일본 책을 그대로 번역한 다음 일본 연대를 단기(檀紀)로, 등장인물 이름을 최용술·김정윤으로, 일본 지명을 우리나라 지명으로 바꾸기만 한 것이었다. 회원들이 출판비용을 모아서 진행한 일이었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고, 결국 김정윤 선생이 집필을 맡게 되었다.

선생은 “책 표지 이름에 合氣術이라는 일본 이름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끝내 다른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당시 원정의(源正義**) 영감의 종가(宗家)에서 쓰고 있던 合氣術을 서명으로 했다. 아름다운 한소리로 이름을 짓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 源正義(미나모토 마사요시) : 다케다 소가쿠의 무호(武號)

선생은 『大東武』에서 덕암 영감(최용술을 칭함)의 무예는 이름이 없었으며, 덕암 영감도 “나는 合氣道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 1969년 『합기도』(지한재 감수, 명광식·김종택 저, 문무출판사)

인도중국 고구려 고려 조선(암흑시대) 최용술 지한재 / 최용술 선생이 어디에서 수련하고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마치 Hapkido(중국에서 들어온 뒤로는) 줄곧 우리나라의 무예였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음

 

제1편 합기도(合氣道)의 개관(槪觀)

  一. 합기도(合氣道)의 기원(起源)과 유래(由來)

 

합기도는 엄밀히 말하면 종교 즉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있게 되었는데 불교를 전파하는 승려(僧侶)들과 귀족(貴族), 혹은 왕실(王室)의 왕족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비술(祕術)로 몸에 익혔기 때문에 대중 속에 파고들기보다는 상류계급의 호신술로 오랜 동안 전해 내려왔던 무술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합기도는 중국무술이나 아니면 일본무술의 한 종류라고 단정하는 예가 많으나 그런 소견(所見)은 합기도가 어떻게 이 땅에 생성 되었는가 하는 사실을 모르는 소치이다.

 

합기도가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로 각광을 받아온 역사는 실로 오래다. 다만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지 못했을 뿐 그 전통은 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부터 전해 내려왔다.

 

인도(印度)에서 생겨난 불교가 후한(后漢) 영평(永平) 10년(BC 67)에 중국(中國)으로 건너갔고 중국에서 이 땅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高句麗 小獸林王) 2년인(372) 6월이다.

 

결국 합기도가 우리민족의 고유한 무술로 그 비술이 승려들과 귀족들 혹은 왕족들의 호신술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때가 고구려시대 부터라는 연혁은 바로 이런 역사적 평가가 근본이 된다.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합기도는 불교가 전성기(全盛期)에 처했던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고려(高麗) 중엽까지 성행하다가 불교가 쇠퇴해진 고려말기부터 이조시대(李朝時代)에 이르러 합기도 역시 빛을 잃게 되었다. 불교가 쇠퇴해진 이유는 그 시대에 유교(儒敎)가 팽창했고 유교가 정책에까지 영향력을 끼쳐 무(武)보다는 문(文)을 숭상하게 되었기 자연 합기도는 몇몇 사람들만의 애완물이 되었으니 이 시대를 합기도의 암흑시대(暗黑時代)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기와 이조시대를 거쳐 합기도는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고작 사문(寺門)의 비술이나 특수 귀족 가문의 비술, 혹은 몇몇 왕족들의 호신술로 명맥을 유지해 왔었으니 지극히 통탄할 일이었다.

 

  二. 우리나라의 합기도(合氣道)

 

이렇듯 민족고유의 무술인 합기도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현 합기도계(合氣道界)의 도주(道主)이신 최용술(崔龍述) 선생님께서 9세의 어린 나이에 한 귀인(貴人)을 만나 합기도의 무궁한 기법(技法)을 전해 받게 되었다.

 

도주 최선생님은 귀인으로부터 합기도의 기법을 배우기 위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양하기를 3십여년, 결국 모든 기법을 몸에 익혔으며 최선생님이 기법을 익혀 산속에서 나왔을 때 조국이 광복 되었다.

 

도주 최선생님은 귀인으로부터 3십여년간 입산수도(入山修道)하여 배운 합기도의 기법을 수제자(首弟子)인 현 대한합기도협회 총관장(大韓合氣道協會 總館長)인 지한재(池漢載) 선생에게 전수했으며 지선생은 도주의 가르침을 받아 합기도의 무궁한 기법을 체계화(體系化)했고 또 과학적(科學的)으로 분석하여 오늘날의 합기도로 기반을 굳게 했다.

 


○ 1979년 『合氣道 술기교본(초단편)』(최상헌 저, 진영출판사)

우리 민족 고유의 무예였다는 견해(고려~조선시대와 일제 침략기에 위축된 적이 있음) 민족 경전 삼일신고*를 언급함

* 필자 주 : Hapkido의 기원을 『삼일신고』에서 찾는 것이 왜 허구인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합기도신문』에 올린 졸고(拙稿), 「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무리수 –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총9편>」을 참조하기 바람.

제1장 합기도의 개관

  Ⅰ. 합기도의 기원과 유래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수렵활동과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단히 싸워왔으며, 싸움의 방식과 도구 또한 문물의 발달과 집단사회의 확대 발전에 따라 발전되고 체계화 되었으며 이러한 수렵과 싸움이 무술의 모태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합기도는 우리 겨레의 최고* 경전인 삼일신고 진리훈편의 기화(氣化), 지명(知命), 합혜(合慧)라는 구절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기(天氣), 지기(地氣), 인기(人氣)를 단전에 모아 그 힘을 자유자재로 운용하여 다양한 술기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수행과정으로서 수련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命**)를 깨닫고 지혜로움을 얻게(合慧) 되는 수도인 것이다.

* 필자 주 : 여기서는 最古라는 뜻

** 필자 주 : 知命이라고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책에는 命만 적혀 있다.

 

이는 고구려의 각저총·무동총·삼실총* 등의 벽화에서도 편린을 접할 수 있고 백제시대에는 삼랑도·수벽타·국선 등으로 이어져 왔으며, 신라 시대에는 화랑도로 계승발전되어 왔으나 고려시대에는 숭문경무 풍조에 의하여 무술이 일부 소수 계층에 의하여 전래되었으며, 이조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 필자 주 : 세 가지 모두 고구려시대의 무덤이며, 지금은 중국 국경 안에 있다. 여기서 무동총은 ‘무용총’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병자양난 이후 정조의 명에 의해 이덕무·박제가 등이 무예도 보통지*라는 무술서를 편찬하여 무예에 관한 의식이 고조되는 듯 하였으나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다시 그 맥이 위축되어 소수 무술인들에 의하여 실기 위주로 그 맥을 이어오다 현대에 이르러 발전을 거듭하여 개인의 호신은 물론, 국민 체위 향상과 국방 무술 나아가서는 국위를 선양하는 무술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필자 주 : 원문은 ‘무예도’와 ‘보통지’로 띄어 썼다. 본래 제목은 ‘武藝圖譜通志’로, 띄어 쓰지 않는다. 굳이 띄어서 쓰고 싶다면 ‘무예 도보 통지’라고 해야 맞다.

 


○ 1989년 『合氣道』(김의영 저, 도서출판 금광)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인데, 신라 시대 인물 신라삼랑원의광이 일본에 전수한 것이 국내로 재유입되었다는 說>, <상고시대부터 삼국, 고려를 거쳐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 간 도공들이 유술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이 국내로 재유입되었다는 說>,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창시한 현대 무도라는 說>을 늘어놓기만 하여 Hapkido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알 수 없음

 

. 合氣道의 歷史

 

합기도란 격기(格技)의 일종으로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초된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업어치고, 누르고, 조르고, 꺾고, 비틀고, 치고, 찌르고, 차기 등의 생활 활동이 생존과 자아방어에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략) 그것이 곧 원시적인 합기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무예(武藝)가 매우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고구려 산상왕(山上王)* 벅화(壁畫)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백제의 수벽타(手擗打 : 제왕운기)라든지 석굴암의 금강력사(金剛力士) 등은 모두 상고이전 태고로부터의 기(氣) 운용의 기량에서 나타난 힘의 표현이다.

* 산상왕(山上王) : 고구려의 10대 왕(재위 197∼227)

 

오늘날과 같은 합기도, 유도, 태권도, 씨름 등과 같이 체계화된 방식의 대련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대 사람들이 수박(手博)과 각저(角觝)를 얼마나 즐겼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합기도는 일본(日本)의 유도(柔道)와 합기도(合氣道) 연구에 平生을 바친 와세다(早稻田) 대학의 도미끼(副木謙治) 교수 설에 의하면. “가마꾸라(鎌倉) 시대에 합기도가 신라 삼랑원의광(新羅三郎源義光)을 그 시조로 하여 막부(幕府)의 미나모도가(源家)에 전하고 이어서 다께다가(武田家)에 남아 7대를 지나 다께다소오가꾸(武田惣角)에 전하고 이어서 우에시바(植芝盛平)는 그의 고제(高弟)이다”라고 그의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의 합기도의 원류는 신라시대 이주(移住)한 사람으로부터 전수되었음이 分明하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신앙의 대상인 삼신 즉,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 다시 말하면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인 三位一體 한얼님 三神을 수호 수행하던 고유한 천신도(天神道)의 수도사(修道師)들이었음을 이에 확인할 수 있다.

* 필자 주 : 위 문장은 문법이 전혀 맞지 않는데다, 앞뒤 문장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짐작하건대 “Hapkido는 역사가 오래 되었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신라시대에 삼국통일(三國統一)의 기반이 되었던 것은 화랑도(花郞道*)의 무예수련(武藝修練)과 원광의 세속오계(世俗五戒)라 하겠다.

* 필자 주 : ‘화랑의 무리’라는 뜻에서 ‘화랑도(花郞徒)’가 더 어울린다고 본다.

 

이때는 불교(佛敎)가 국교(國敎)였고, 원효(元曉), 의상(義湘) 등 여러 대승들이 화랑(花郞) 출신이었다는 점과 석굴암수문불상(石窟庵守門佛像)에 겨루기 자세가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신라 사람들이 이러한 무술(武術)을 얼마나 즐겨 행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정중부 등 무사들이 정권을 잡자 군인들의 훈련과목으로 유술(柔術)을 필수(必修)토록 하였는데 여기에는 신법(身法), 각법(脚法), 수법(手法) 등 25가지 기술이 행하여졌다고 한다. 이것을 지금의 합기도, 유도, 씨름 기술로 하면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예(技藝)가 공개되지 않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여러 가지 백반공예가 일본에 건너가서 유술(柔術)이 발전하는 계기되었다.

 

오늘의 합기도는 유도, 검도, 창술, 봉술 등의 수업을 쌓은 우에시바 모리히라*(植芝盛平) ()에 의해 60여 년 전에 체계화되고 완성된 가장 새로운 무도이다.

* 필자 주 : ‘모리헤이’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인다.

 


○ 1992년 『합기도교본』(조원상 편저, 도서출판 진솔)

줄곧 우리나라의 무예였다는 견해(고려~조선 시대에 위축됨) / ‘신라삼랑원의광을 통해 일본에 전파되었다가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왔다는 說을 부정함

 

총론

  1. 합기도의 역사

 

한민족의 오랜 전통 속에서 계승되어온 무술은 그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비록 발전의 높낮이는 있지만 그 민족의 전통적인 유산으로 이어져 가야만 합니다.

 

합기도는 우리 고유의 무예로서 우리 겨레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삼일신고 진리훈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찍이 단군시대의 궁사, 기사 등과 함께 체술로서 시작된 합기도는 선제공격보다는 외부의 공격에 대하여 방어, 제압하는 우리 민족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무도로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초기와 조선시대에는 문을 숭상하고 무를 경시하는 풍조로 인하여 일부 소수계층에 의해 전래되어 오던 것이 1950년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확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삼국시대에 신라를 통해 일본으로 전파된 합기도는 여러 사람을 거쳐 발전되다가 1942년에 합기도란 정식명칭을 득하고* 19506.25 동란시 우리나라로 되돌아와 일부에서는 그것이 정통인 것 같이 주장하나 원래는 우리 백의민족의 얼이 깃든 우리의 정통무예입니다.

* 필자 주 : 1942년에 합기도란 정식 명칭을 득한 것은 ‘진짜 合氣道(Aikido)’에서 일어난 일이다. Hapkido인들이 合氣道가 아닌 무술 이름을 合氣道로 붙였기 때문에 모두가 Hapkido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진짜(Aikido)와 가짜(Hapkido)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