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전국합기도연무대회 및 강습회, 국제승단심사 참가후기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 도끼처럼 다가와 영혼이 송두리째 뒤집힌 소설의 기억이 있을 듯합니다.

제 나이 또래의 집단기억으로는 고교 국어시간에 접한 황순원의 ‘소나기’를 들 수 있습니다.
빨간 물이 든 분홍 스웨터와 곤색 스커트를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윤초시네 증손녀를 내려다보며
호두 옴이 올라 벌건 손을 숨기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에 울먹하지 않은 이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탓에 어느덧 청년이 된 소년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수수밭의 추억이 흐릿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두번째 도끼는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이었습니다.
퇴폐적이지만 우수에 잠겨있는 복학생의 우울감에 당시의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반영을 발견할 수 있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포스트모던의 분위기가 80년대의 황폐한 정신을 풍부한 이미지와 메타포로 가득채우는 충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이후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는 문학적 도끼를 휘두르는 하루키입니다.
가장 최근의 하루키 소설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지만, 아직 번역본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중인지라, 가장 근작은 ‘기사단장 죽이기’입니다.

이 소설은 하루키로서는 이례적으로 1부와 2부로 나뉜 글에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일본어로는 ‘顕われるイデア’와 ‘遷ろうメタファー’, 우리말로는 ‘현현하는 이데아’와 ‘전이하는 메타포’로 번역되는 이 제목은,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저는 ‘동적인 메타포에 의해 떠오르는 개념’이라는 표제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키에게 있어 메타포는 문학적인 도구를 넘어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마술적인 힘을 가진 ‘실체’이기에 소설을 읽는 이는 책을 내려 놓고도 현실감을 상실하고 술에 취한 듯한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2023년 9월 10일과 11일에 걸쳐 대한합기도회大韓合氣道會의 주최로 경희대학교 네오르네상스관에서 진행된 이가라시 카즈오五十嵐和男 8단의 강습회는 국제승단심사와 제29회 전국합기도연무대회 그리고 대한합기도회 윤대현 회장님의 국제강습회와 연계된 종합행사로 기획되었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지부와 본부에서 고된 걸음을 하신 수많은 아이키도 무도가로 가득 채워져 문자 그대로 성황리에 치루어진 강습회는 오랜 경험과 뛰어난 공력의 일대종사가 펼쳐내는 한편의 소설이었습니다.
무릇 소설은 해당 언어권의 글자로 표현되는 고립된 문학 형식이지만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읽는 이를 감동시키는 도구는 이마주image, 보다 구체적으로는 메타포를 통한 개념의 전달이며,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이야기’라는 형식을 띠게 되죠.

이가라시 사범은 돌연 품안에서 손자의 장난감상자에서 잠시 빌려오신 ‘기어’와 ‘경첩’을 꺼내셨습니다.
형광녹색의 자그마한 기어 2개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회색 경첩. 기어를 맞물리신 사범께서는 ‘인간의 몸은 기계와 같습니다’라고 선언하시고는 이어서 ‘경첩’의 이음새를 보여주시며 다시 한번 ‘인간은 기계입니다’라는 간결하지만 심오한 화두를 던지시고는 밝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어리둥절한 우리들에게 사범께서는 두 손을 포개시며 ‘우물 정井’을 그리시고는 ‘모든 것은 기계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한번 순진무구한, 분야에 통달한 대가가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극히 단순한 메타포를 통해 설명하기 복잡한 개념을 이야기에 실어 명쾌하게 전달하는 통쾌한 가르침에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하루키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상상을 메타포라는 도구에 실어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하루키의 글은 전세계 수백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지만 각국의 독자들은 그나름대로 하루키의 이마주를 해석하고 감동합니다. 이가라시 사범께서는 기어와 경첩, 그리고 정井의 메타포를 통해 언어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아이키도의 개념와 원리를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언어의 불확실한 벽을 넘어 우리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사범의 이야기는 언어의 형식을 띠고 있지 않기에 번역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개념으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할 것입니다.

메타포를 통한 이야기 구조의 절묘함은 전달된 이마주가 개개인의 정신구조의 특이성에 의해 독자적으로 전이하는 데 있습니다. 언어로 표현불가능한 개념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은 하카마를 허리에 두르고 후배들 앞에 선 유단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풀기 힘든 딜레마이겠습니다만, 이가라시 사범의 커뮤니케이션은 칼을 든 무사로서의 카리스마와 인자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이중적인 페르소나가 제시하는 시각적인 메타포를 경유하고 있습니다.

이가라시 사범의 교학체계를 육안으로 본 우리들은 아마도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진무구한 할아버지의 미소를 띤 무사께서 우리의 품안에 던진 진중한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하여 각각의 깨달음으로 전이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강습회를 통해 직접적인 교화를 받은 우리들의 신성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1946년생이신 이가라시 사범은 최근에도 우리나라에서 지난 수십년간의 강습회를 통해 뵙고 있는 고바야시 야스오小林保雄 선생님의 첫번째 내제자로 77세의 고령에도 수련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으시는 근면한 배움을 추구하는 전인적 그랜드마스터이십니다.

일찌기 강剛에서 출발하시어 유柔를 거쳐 류流를 이루시고 리理를 깨우치신 사범의 가르침의 무거움을 인식하고 단절없이 올바르게 다음 세대에 전달할 책임과 사명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범이 전달하신 메타포가 씨앗이 되어 우리나라의 아이키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진화한 개념의 현현顯現에 또다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실 그 날을 기대합니다.

글: 중앙도장 조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