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과 선택적 역행(3-3)-조현일 에세이

낭만적 사유 ‘노스탤지어’

옛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혹은 노스탤지어라고 부르는 낭만적 사유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음성을 받아쓰고 심지어 키워드를 제공하면 멋들어진 문장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탑재 디바이스를 손목 위에 올려놓고 사는 오늘날의 우리 중에는 아직 종이에 연필로 탄소 덩어리를 긁어 만드는 물리적 문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로 곡이름만 부르면 재생가능하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 플레이어의 바늘을 올려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필름을 감아 넣어 셔터를 눌러 순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순히 오늘날의 테크놀로지를 혐오하여 과거로 회귀하기를 희구하는 이도 있지만, 물리적인 경험과 소중히 여겼던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의 급격한 변화에 저항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지속적인 문화의 발전 와중에서 기술을 역행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가정합니다. 또한 기적적으로 역행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이를 퇴보와 침체로 간주하죠. 기술에 역행하는 태도와 선택 자체가 미련하고 반계몽적이라 비난하기도 합니다. 기술의 선택적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영화 ‘정이’ 한 장면

바다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해중생물이 세슘에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우리 몸속에 들어와 피폭을 일으키는 현상황을 돌이켜보면 어차피 테크놀로지에 대한 선택적 역행은 불가능하다고 체념하는 이도 있겠죠.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화승총을 버리고 칼로 회귀한 역행 결정은 의도적인 통제적 선택이었습니다.

일본 지배계급은 일단 칼을 선택하고는 다시는 화승총으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17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다양한 사회경제분야에서 완만하지만 계속적인 기술적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1842년에야 상수도를 갖춘 뉴욕에 비해 동경은 1654년에 이미 완성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장이 억제된 경제가 풍요롭고 문명화된 삶의 양식과 양립할 수 있다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진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

진보는 멈출 수 없다거나 테크놀로지의 지향성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등의 서양의 과학 패러다임은 일본의 선택적 역행을 기술의 수동적 희생으로 간주하고 ‘진보’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고까지 칭송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페린의 말을 빌자면, ‘진보는 (…) 우리가 인도할 수 있고 지휘할 수 있고 심지어 멈출 수도 있으며, 인간은 기억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망각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무도를 통한 자기 의식과 신체 감각의 발견은 (물론 힘겨운 계고(훈련)의 연속과 단련이 전제되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개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초심자는 아이키도의 계고가 옛 수련 방식을 답습하는 비과학적인 신체적 훈육이라 불평하기도 하고 정신적 측면만을 편향적으로 수행하는 타무도의 경험자는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계고의 수행이 전근대적이라 힐난하기도 하지만, 창시자와 도주가 디자인한 계고의 방식을 따르는 수련인들은 모두가 ‘선택적 역행’의 사상에 동의한 분들일 것입니다.

창시자와 도주가 디자인한 계고의 방식

정신적으로는 칼을 손에 쥐고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폭력적인 무기를 들고 있지 않는

극히 효율적이자 제국주의적 전투방식인 화승총을 더이상 손에 들기를 거부한 근대의 무사계급의 선택적 역행의 정신은 아이키도의 계고에서는 보다 승화되는 과정을 거쳐 정신적으로는 칼을 손에 쥐고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폭력적인 무기를 들고 있지 않는 고도의 추상성으로 표방됩니다. 무사 계급의 귀족들이 고귀한 선택적 역행을 통해서도 이루지 못한 ‘폭력의 완전한 포기’라는 ‘역행’이 아이키도의 형으로 표현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계고에 참여하는 우리는 모두 선택적 역행의 숭고한 가치를 현현하는 상징임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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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

조현일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