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할렐루야 [9월 24일 토요일 본부강습회 수련후기]

노래하는 시인 레너드 코헨 Leonard Cohen
Maybe there’s a God above
아마 저 높은 어딘가에 신은 계실 거에요
But all I’ve ever learned from love
하지만 내가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곤
Was how to shoot at someone who outdrew you
당신보다 총을 빨리 잡은 자를 먼저 쏘는 법이었지요
And it’s not a cry that you hear at night
그리고 그건 결코 당신이 밤에 듣는 울음소리가 아니에요
It’s not somebody who’s seen the light
그건 결코 빛을 본 누군가가 아니에요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그것은 차갑게 식고 망가진 할렐루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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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your man 과 Take this waltz 를 부른 노래하는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 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던 가수였는데 1934년 생으로 지난 2016년에 별세하셔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학생때 부터 좋아했었는데 노래 자체가 굉장히 저음이라, 어렸을 때는 목소리가 그 음역대로 내려가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저도 나이가 드니 신기하게도 점점 저음을 낼 수 있게 되어 노래방에서도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레너드 코헨의 노래중에는 ‘할렐루야’ 라는 곡이 있습니다. (유투브:https://youtu.be/50yKwV7tu7s)
흔히 우리가 잘 아는 할렐루야는 기쁨에 넘쳐 부르는 헨델의 오라토리오(줄거리가 있는 연속찬양) ‘메시아’ 에서의 할렐루야 입니다. 이 곡은 교회에 한번 나가지 않았던 분들도 모두 알고 있는 곡이고 말 그대로 신을 찬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밝고 경쾌하고 웅장하죠.
그래서 레너드 코헨의 곡을 제목만 보면 헨델의 할렐루야랑 비슷한 것 같은데,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는 세상에 알려진 후 이거 신성모독이 아니냐 하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내용이 어둡습니다. (윤대현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저도 레너드 코헨의 가사가 이런 내용인 줄 몰랐습니다.)
“사랑 좋아하네. 신이랍시고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가르쳐 준 것이라고는 내 뺨을 때린 놈을 쏴 죽이라는 것 뿐이잖아.”

라며 신을 향해 원망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부르고 있는 차갑게 식고 망가진 할렐루야는 무엇일까요.

이번 강습회 때 윤대현 선생님은 레너드 코헨의 노래에 빗대어 무도의 가치를 설명하셨습니다.

“아이키도는 처음부터 ‘이기기’ 위한 무도가 아니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위치로 전환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이길 수 있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에게 승리하기 위한 무술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를 이기고, 괴롭히고, 심지어는 죽인 다음 내가 이겼습니다. 할렐루야!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아이키도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임에 분명합니다. 최근에는 정보가 많아져, 링 위에서 승부를 겨루는 이종격투기가 이 세상의 실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윤대현 선생님께서는 과거 격투기 챔피언이셨기 때문에 이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수’ 들의 현실이고, 선수들의 실전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내 실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 현실에서의 무도는 어떤 방향일까요.

어떠한 가치로 생각해야 할까요.

상대를 이기고 승리의 기쁨에 넘쳐 부르는 할렐루야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절망의 끝에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내딛으며 부르는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삶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무도의 의미는 상대를 죽이고 베어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나를 바로 설 수 있게 해 주고, 한걸음 더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오승吾勝 으로서의 가치였던 것입니다.

10년전 수련모습
 근 3년 만에 본부 도장 강습에 다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기술은 더욱 더 부드러워지고 정교해지고 원숙해지셨습니다.
선생님의 기술은 몇 년 동안 계속 같은 테마를 반복 중입니다. ‘허리’의 사용법이 그것입니다. 강력한 중심을 연결해 컨트롤되는 기술은, 오래 전 제가 본부도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계속 반복적으로 강조하시던 주제입니다.
춘천도장 회원들에게도 허리의 사용법을 강조합니다. 아이키도는 회오리를 만들어 그 회오리 중심의 나를 위치시키고 상대방을 회오리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3년만에 다시 참석한 본부 강습회에서 다시 느낀 것은, 윤대현 선생님의 회오리는 강도 자체가 달랐습니다. 윤대현 선생님과 비교해 보니 제 중심은 그냥 학교 운동장의 돌개바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중심은 마치 허리케인 카트리나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태풍의 차원이 다른 것이죠.

한동안 윤대현 선생님의 기술은 미궁 속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보여주시는 데도, 그것을 어떻게 따라 해야 할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이키도 춘천도장 수련전경

그런데 이제는 물론 기술의 표현력은 한없이 부족하지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연습을 해야 할지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발견조차 오랫동안 선생님께서 계속 반복하시던 말씀 속에 답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품위品位. 기술을 펼칠 때 반듯한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위氣位. 기술이 끊어지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극위極位. 단급위에 맞는 즉 레벨에 따라 급이 다른 파워풀한 기술과 숙련도. 상대방에 대한 압박을 계속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사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다른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전에는 이 말씀을 그저 “승단 주의사항” 정도로 받아들였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와 닿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선생님처럼 기술을 펼칠 수 있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가 저 세가지에 다 나와있었기 때문입니다. 분산되어 있었던 모든 개념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쓰러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니, 너무 즐겁다.

2011년에, 아이키도 수련 274일을 지나고 있을 때, 윤대현 선생님과 밤새 수련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작은 개인적인 소망은 윤대현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아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아이키도의 최고봉이신 선생님의 위상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강습회때는 마치 개인지도처럼 많이 잡아주시고 많이 던져주시고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번 강습회는 정말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수련 후 뒤풀이까지 생애 최고로 충만했던 본부강습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아이키도의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윤대현 선생님 항상 건강하세요.

사단법인 대한합기도회
아이키도 춘천도장

도장장 / 선임지도원
이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