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kido 지도자님, 헷갈리지 않으세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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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환논법(또는 순환논증)의 오류

 

<예문>

甲 : 자네는 가난해. 왜냐하면 경제적으로 궁핍하기 때문이지.

乙 : 그럼 선생님, 저는 왜 경제적으로 궁핍한 건가요?

甲 : 그건 자네가 돈이 없기 때문일세!

乙 : 왜 제가 돈이 없을까요?

甲 : 그야 자네가 가난하기 때문이지!

 

* 주 : 甲은 가난하다 = 甲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 甲은 돈이 없다

 

 

돌고 돌아 제자리. 이것을 순환논법 또는 순환논증의 오류라고 한다.

한 문장, 한 문단, 한 단원처럼 범위가 좁은 곳에서는 순환논법을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내용이 긴 자료, 또는 여러 개의 연재물이 순환논법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 이 사실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소주제 안에서 작은 논리가 순환하고, 대주제의 설계 속에서 이런 소주제들끼리도 순환하는 자료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무예신문’에서 순환논법의 예를 찾을 수 있었다.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인용할 글을 쓴 사람은 Hapkido 지도자이다. 그는 2014년 8월 10일 ‘한국무예신문’에 「합기도, 정체성 등 논쟁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 정통성·독자성·생산성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Hapkido 관련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처럼 Hapkido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통성·독자성·생산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며 지금도 연재하고 있는 글의 서언(序言)에 해당한다.

 

이후 그는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1)~(4)」, 「합기도의 독자성 가치 지향(1)~(6)」, 「합기도의 생산성 가치 지향(1)~(4)」, 「합기도 역사적 정립의 올바른 방향 제시(1)~(7)」, 「합기도의 호신술기 체계의 확립(1)~(3)」, 「합기도 수련의 이념과 원리의 올바른 정립(1)~(3)」, 「‘합기도’ 무명(武名) 개명 논란, 이젠 종식시켜야 한다」, 「합기도의 세계화 시리즈(1) : 합기도 세계화의 특징들」을 ‘한국무예신문’에 기고했다. 마지막 글을 올린 날짜가 2016년 6월 12일인 것으로 보아 연재를 잠시 중단한 것 같다.

 

각 소주제별로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1)~(4)」 :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정통성을 지향해야(혹은 찾아야, 갖춰야 등) 한다.*

 

* 주 : 글쓴이는 「합기도, 정체성 등 논쟁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 정통성·독자성·생산성의 가치」에서는 “Hapkido의 정통성이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역사성과 근원적인 기반을 가진 정통성으로서의 가치를 뜻한다. Hapkido의 정통성 문제는 Hapkido와 Aikido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함으로써 Hapkido가 어떻게 한국의 대표적 근대 무술로 정립되어 왔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1)~(4)」 편에서는 Hapkido의 역사 문제, 무명(武名) 논란 같은 내용을 주로 언급하고 아래 「합기도의 독자성 가치 지향(1)~(6)」 편에서 ‘Hapkido와 Aikido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루었다.

 

  •  「합기도의 독자성 가치 지향(1)~(6)」 : 이론이나 기술면에서 다른 무도(특히 Aikido)와 구별되는 독자성을 갖추어야 한다.

 

  •  「합기도의 생산성 가치 지향(1)~(4)」 : 단순한 호신술, 격투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교육 효과, 건강·양생의 효과, 인격 수양의 효과 같은 실용적인 가치도 지향해야 한다.

 

 

「합기도, 정체성 등 논쟁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에 직접 연결되는 글은 여기서 일단락됐다. 그리고 다음 제목으로 글이 이어지는데, 앞서 연재했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글쓴이의 의도도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분석한 바는 그렇다는 뜻이다.).

 

  •  「합기도 역사적 정립의 올바른 방향 제시(1)~(7)」 : Hapkido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과 내용이 통한다.

 

  •  「합기도의 호신술기 체계의 확립(1)~(3)」 : Hapkido는 Hapkido만의 독특한 기술 체계가 있다. Aikido 기술과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 →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 「합기도의 독자성 가치 지향」과 내용이 통한다.

 

  •  「합기도 수련의 이념과 원리의 올바른 정립(1)~(3)」 : 우리나라 무예 철학에 맞는 수련 이념과 원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과 내용이 통한다.

 

  •  「‘합기도’ 무명(武名) 개명 논란, 이젠 종식시켜야 한다.」 : Hapkido, 지금처럼 合氣道를 계속 쓰겠다. 이름을 바꿀 필요 없다. → 별개의 글이지만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과 내용이 통한다.

 

  •  「합기도의 세계화 시리즈(1) : 합기도 세계화의 특징들」 : Hapkido는 合氣道라는 한자어에 Hapkido라는 발음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 연재중이라 어느 글과 상통하는지 판단을 보류한다.

 

 

글쓴이가 작성한 수십 개의 글, 수많은 문장 중에서 ‘이 한 줄’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합기도 정체성 확립 위한 바람직한 정통성 가치 지향(2)」의 첫 문장 “합기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통성 가치지향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합기도 역사적 정체성의 명확한 정립의 실패이다.”를 선택하겠다. 나는 이 문장이 글을 쓴 사람은 물론 다른 Hapkido 지도자, 연구자들의 고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합기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통성 가치지향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합기도 역사적 정체성의 명확한 정립의 실패이다.”를 그림으로 간략히 표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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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Hapkido의 정통성을 지향해야(혹은 찾아야, 갖춰야 등)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Hapkido(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문장들이 꼬리를 물고 돈다. 순서를 바꿔도 마찬가지.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Hapkido의 정통성을 지향해야(혹은 찾아야, 갖춰야 등)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Hapkido(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Hapkido(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Hapkido의 정통성을  지향해야(혹은 찾아야, 갖춰야 등)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Hapkido의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Hapkido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눈치 채셨는가. 그림에서는 3단계 순환인 것 같았지만 실제는 두 문장이 순환하는 것이다.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해서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 그래서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해서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 이렇게 무한 반복하는 구조이다.

 

* 주 : 여기서 ‘정통성 가치 지향’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정통성 가치 지향’의 목적지는 ‘정체성 확립’이다.). 덧붙이자면 ‘정통성’이라는 단어 선택도 잘못된 것 같다. 글쓴이가 Hapkido의 정체성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 해결책으로 무언가를 제시하기 위해 찾아낸 단어가 ‘정통성’인 것으로 짐작한다. ‘정통성’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권력 지배를 승인하고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ㆍ심리적인 근거’이다. 따라서 Hapkido계라던가 특정 Hapkido 단체 내에서 리더나 지도부의 정통성을 논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Hapkido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필요한 가치로 정통성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사실 글쓴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Hapkido는 정체성이 부족하다.” 아니겠는가.

 

 

많은 내용 중에 문장 하나를 꼬투리 잡아서 글쓴이의 연재물 전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처음에 「합기도, 정체성 등 논쟁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 정통성·독자성·생산성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Hapkido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Hapkido 정체성 논쟁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한 해법 중 하나였던 ‘정통성 가치 지향’이 허상이었던 것이다. ‘음… 정통성 가치를 지향하면 Hapkido의 정체성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으로 글을 읽었던 사람은 결국 ‘Hapkido의 정체성에 많은 논란이 있다’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사실 이 Hapkido 지도자는 Hapkido가 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지 원인을 알고 있다. 다른 글 「합기도 역사적 정립의 올바른 방향 제시(1)」에서 그 이유를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한다.

 

한국무예로서의 합기도의 오랜 역사적 정체성은 아직 명확(明確)하지 않다. 그것은 일본의 대동류유술과 아이기도와의 관계에서 대한 정확한 구분(區分)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아이기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대동류유술과 다른 유파의 무술을 수련해서 새로운 형태의 무술을 창시하게 되었다”고 정확한 역사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합기도는 일본과 동명(同名)의 명칭(名稱)을 사용하면서 역사적 정체성의 혼란(混亂)을 야기(惹起)시키고 있다.

 

합기도는 한국의 신체문화적인 특수성이 포함(包含)되면서 일본의 아이기도와는 다른 형태의 기술과 수련체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해방이후의 합기도는 일본 무도의 특성(特性)에다가 중국무예와 한국 고유 무예가 융합(融合)되어 다양한 발차기 및 권법(拳法), 형(型) 등이 접목(椄木)되어 대동류유술이나 아이기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닌 무예로서 변형되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동류유술과 아이기도(合氣道)와 전혀 다른 한국의 독창적(獨創的)인 기술의 수련체계를 이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명이체의 현상을 보이면서 명확한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무예로서의 합기도의 역사적 정립을 위해서 그 전에 명확히 해야 할 두 가지 전제조건으로, 첫째는 최용술이 다케다의 제자라는 사실의 진실공방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다. 최용술이 한국의 근대무예로서의 합기도의 형성에 결정적(決定的)인 역할(役割)을 한 창시자의 위치(位置)에 있기 때문이다. 최용술이 대동류유술을 다케다 소유가꾸로부터 직접(直接) 지도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합기도의 근대무예로서의 정통성 정립에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 주 : 글쓴이는 계속되는 글에서 최용술 선생이 다케다 소오가쿠(武田惣角)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직접 지도받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취한다. 최용술 선생은 생전에 “나는 스승 다케다 소오가쿠에게서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을 증명할 만한 사료는 없다. 따라서 글쓴이가 이 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둘째로는 ‘합기도’ 무명의 사용여부에 대한 결단(決斷)이다. 여전히 합기도가 일본의 아이기도와 한자어(漢字語)가 동일한 무명을 지니고 있기에 일본무도와의 차별화 또는 독립화에 가장 큰 장벽(障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Hapkido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유로 꼽은 첫 번째는 최용술 선생의 행적을 되짚고, 그의 회고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계속해서 찾아나가는 노력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잘못된 무명(武名)을 고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잘 파악해 놓고는 “Hapkido는 지금처럼 계속 合氣道라는 이름을 써도 무방하다. 대신 Hapkido가 같은 한자어 이름을 쓰는 Aikido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고, 사회에 공헌하는 생산성 있는 무도로 발전하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라며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다 보니 사달이 났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문제 접근 방식이 결국 논리가 제자리를 맴도는 글을 만들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