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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합기도를

  • 김의수 기자
  • 입력 2026.06.15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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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合氣道小林道場 小林 保雄 八段)


합기도 고바야시 도장의 모토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합기도를"입니다. 왜냐하면 합기도는 몸에 좋고, 수련하는 것이 매우 즐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쿄도 지요다구 구단우에(九段上)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구단 언덕을 올라가다 도중에 오른쪽으로 꺾으면 일본 무도관이 있고, 안 꺽고 길을 건너면 코너에 있는 건물이 저의 본가입니다. 집 앞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오무라 야스지로의 대형 동상이 있습니다.

합기도(Aikiso)를 수련하다 “몇 단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농담 삼아 "태어났을 때부터 9단 위쪽입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제 합기도 단수는 8단입니다.


 구단우에의 본가에서 언덕을 내려가 5분 정도 걸어가면 스이도바시(水道橋) 역이 나옵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역 앞 파출소 옆에 유도의 성지(聖地)인 강도관(講道館)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발걸음으로도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유도 수련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강도관에서 거합도(居合道) 연맹 회장이신 단자키 도모아키(檀崎友彰) 사범님의 아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신기한 무도가 있으니 보러 가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단자키 사범님은 예전엔 스모선수였습니다. 전쟁 전에 만주에서 열린 무도 대회에서, 당시 현역 역사(스모 선수)였던 텐류(天竜) 씨가 합기도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선생의 연무를 보고 '사람이 저렇게 쉽게 던져질 리가 있나?'라는 의구심을 품고, 자신을 던져 보라며 직접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신장 150cm 정도인 우에시바 선생의 손을 잡은 순간 던져지고 만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 후, 텐류 씨는 합기도에 입문하여 열심히 수련하셨다고 합니다. 우에시바 선생과 텐류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을 저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단자키 사범님은 합기도 본부 도장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둘이서 신주쿠의 합기도 본부 도장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낡은 목조 주택으로, 다다미 70장 크기의 도장에는 칸막이가 쳐진 공간에 피난민 두 가족이 살고 있었고, 도장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다다미 50장 정도였습니다. 다다 히로시 사범님이 지도하고 계셨으며, 7~8명의 사람들이 서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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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히로시 선생의 연무에서 우케를 받고 있는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 

 

"던져지면 지는 거다"라는 승부 중심의 유도와는 다른 분위기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견학했습니다. 수련이 끝나고 저희가 돌아가려고 할 때, 다다 히로시 사범님이 "맘에 들면 오너라"라고 툭 한마디 던져주셨습니다. 이 한마디가 제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한 해의 4월, 입학과 동시에 합기도 본부 도장에 입문하여 합기도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도장 수련 시간은 아침과 저녁 6시 반부터 7시 반까지였으며, 각 수련시간에 참여하는 인원은 10명에서 15명, 많아야 20명인 시대였습니다.

 

합기도는 전쟁 전에는 일반인에겐 비공개였으며, 일부 군 관계자들만 수련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에는 2대 도주이신 우에시바 깃쇼마루 선생이 증권회사에 근무하시면서 대중보급에 나섰습니다.

  당시 깃쇼마루 도장장님이 했던 일은, 도장에 찾아오는 대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합기도부를 만들게 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메이지 대학에 합기도부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수련과 본부 도장 수련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약 2년 후, 깃쇼마루 선생은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합기도 보급에 나섰습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해 대학이나 기업에 합기도 설명회와 연무회를 열었습니다. 저는 기술을 받는 역할로서 선배들과 함께 동행하곤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제가 직접 도장을 열었을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저는 취직시험 보는 날인데도 본부 도장 아침 수련에 참가하느라 취직시험을 까먹었습니다. 대학 취업과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학교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향후 취업 추천을 하지 않겠다"라며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현재와 달리 당시에는 대학의 소개로 취업 시험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집에만 있는 저에게 아버지가 "야스오, 일은 안 하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혼날 줄 알았는데 "일자리가 없어요"라고 답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놀아"였습니다. 아버지는 오로지 일만 하셨기 때문에 자식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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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기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기술을 받고 있는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

 

제 바로 위의 형은 성적이 우수하여, 회사에 취직한 후 일본인으로서는 몇 안 되는 공학박사와 농학박사 학위 2개를 취득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더 큰 기대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자, 본부 도장의 지도원들과 함께 매일을 도장에서 수련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본부 도장 지도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본부 도장에서 임명장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학생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대학이 폐쇄되었을 때, 이를 기회 삼아 대학 합기도부원들의 수련 장소로서 고다이라(小平)의 자택 주차장에 손수 도장을 만든 것이, 현재 합기도 고바야시 도장의 시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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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합기도를"이라는 모토 아래, 도쿄 고다이라시를 중심으로 미타마(三多摩) 지역 및 인근 지역에 합기도 보급을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 두 번째 도장을 개설한 이후, 신기하게도 찬동자들이 많이 생겨, 지도할 장소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대학 합기도부의 졸업생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도장으로 찾아와 지도원으로써 뜻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저와 지도부원들이 열정적으로 합기도 보급에 전념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형과 여동생 그리고 수련하러 온 회원까지 합쳐 다섯 명이 도장을 세울 땅과 자기집 부지에 도장을 지어 무상으로 쓰게 해주었습니다.

 

현재 도장장인 아들 히로아키도 대학을 졸업한 후, 청년 해외협력대의 합기도 대원으로서 인도네시아에 2년간 파견되었습니다. 저도 합기도의 해외보급에 노력하여 현재 50개국 가까운 합기도 조직 및 개인 도장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합기도 고바야시 도장은 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성대하게 55주년 기념행사와 저의 미수(88세) 및 도력(道歴) 70년 잔치를 열 수 있었습니다.

 

올해 저는 구순(九旬, 90세)을 맞이합니다. 10월에는 졸수(卒寿, 90세) 잔치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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