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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7편 적의 총알을 피하다

  • 김의수 기자
  • 입력 2024.11.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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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 제7편 적의 총알을 피하다


러일전쟁도 몸 성히 개선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우에시바는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1년 반 정도 전쟁터에 있었지만, 총알 한 방 안 맞았다. 왜냐하면 대포가 날아오는 것이 우에시바에게는 '잘 보였기' 때문이다.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우에시바는 포탄이 땅에 떨어져 폭발하기 전에 100미터는 달려서 도망쳤다.


“사실 내가 달리는 속도가 대포보다 더 빨랐다"고 대선생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 우에시바의 부대가 다롄을 수비하고 있을 때, 두 명의 하사관이 번화가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하사관을 도중에 만난 우에시바는 경례를 했지만, 상대는 이를 못 보았다.


“상관에게 경례를 안 하다니 죽고 싶나?”


두 사람은 중사와 상사였다.


눈앞에 우에시바를 세워놓고 달려들어 머리를 내리쳤다. 쓰러진 것은 두 하사관이었다. 두 사람 모두 손을 다쳤다.


“너 이 새끼, 상관을 때렸겠다.”


“아닙니다, 때린 건 중사님과 상사님입니다. 만약 못 믿으시겠다면 한 번 더 때리십시오.”


두 하사관은 다시 한 번 우에시바를 때리려고 했지만, 둘 다 손가락 뼈가 부러져서 그러지도 못했다. 영내로 돌아와 중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결국 우에시바는 두 하사관과 함께 군법회의에 불려갔다.


“때린 게 아니라, 맞은 것이다.”라는 우에시바의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때려보라고 명령을 받은 것은 우에시바 소속 중대의 이와카미 상사였다. 이미 상사로 진급한 이와카미는 군법회의에서 우에시바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 자의 머리라면 때리는 쪽이 다친다"고 증언했다.


이후 '돌머리'라는 별명이 '무쇠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이런 일화는 책 한 권이 될 만큼 많다. 그러나 이것이 합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우에시바가 합기에 눈을 뜬 것은 1909년, 그가 홋카이도 개척을 꿈꾸며 다나베 사람들을 55명 이끌고 기타미노쿠니 시라타키무라에 정착했을 때였다.


 


 

 


시라타키무라(현 시라타키마치)의 니마타라는 마을 외곽에 있는 부락에 정착한 우에시바는 55명의 지도자가 되어 개간을 주도하고, 나무를 베고 거석을 쓰러뜨리는 등 괴력을 발휘하여 어느새 그에게 '시라타키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라타키왕의 지배 구역은 가미유베쓰쵸의 십리 사방에 이르렀는데, 어느 날 엔가루쵸까지 용무를 보러 갔다가 그곳의 히사다 여관에 묵고 있던 중, 강인한 인상을 가진 무예가 한 사람를 만났다.


“나는 다케다 소카쿠라는 사람이다. 자넨 소질이 있어 보이는군. 내 뒤를 이어받을 수도 있겠다. 비법을 가르쳐 줄 테니 제자가 되라"는 말을 듣고 우에시바는 즉시 입문하여 다케다를 시라타키에 있는 집으로 모셔왔다.


이것이 우에시바의 일생을 결정지은 합기도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武田惣角
武田惣角 (다케다 소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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