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의 역사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는 매년 5월에 개최되어 올해로 62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 해의 가장 큰 합기도 행사를 맞아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고 그 과정을 정리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전쟁 전: 비공개 연무의 시대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의 역사는 세계 2차 대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류의 전통을 따르던 우에시바 모리헤이 창시자는 당시에 합기무도로 알려져 있던 자신의 기술을 상당히 비밀스럽게 유지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창시자인 본인만이 연무를 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군이나 정치계 등 고위 인사들 앞에서만 연무를 보였습니다.
■ 전후: 무도의 부활과 대중 공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 사회를 비무장화 하기 위해 연합군 최고사령부(GHO)는 일본 내 모든 무도 수련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1952년부터 점점 규제가 완화되었고 전국적으로 무도 수련이 재개되었습니다. 합기도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1954년, 쵸주카이(장수회, 長寿会)는 전일본무도대회를 조직하였고 전쟁 이후 비공식적으로 수련을 이어오던 시오다 고조 선생이 합기도를 대표하여 시연을 펼쳤습니다. 연무는 큰 호평을 받았고 여러 재계 인사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55년, 요신칸이 설립되었습니다.
■ 대중 연무의 시작: 다카시마야 백화점 옥상에서
시오다 고조 선생의 활동에 감명을 받은 우에시바 기쇼마루 선생은, 합기도의 대중화와 보급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도 합기도를 보여주기 위해 창시자뿐 아니라 지도자와 일반 수련자들도 연무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전통을 깨는 것이었기에 우에시바 모리헤이 창시자는 처음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기쇼마루 선생은 합기도의 미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설득했고, 결국 창시자는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1956년, 도쿄 니혼바시 다카시마야 백화점 옥상에서 최초의 공개 합기도 연무대회가 열렸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연무를 하는 것은 현재 기준으로 생각하면 다소 특이하게 생각될 수 있으나, 당시에는 가족 단위 주말 외출, 쇼핑, 식사, 공연 관람이 가능한 문화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던 장소였습니다. 이 연무대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시부야의 도큐 백화점, 이케부쿠로의 미쓰코시 백화점 등에서 후속 연무대회가 이어졌습니다.
■ 전국 합기도인의 만남: 정기 연무대회의 시작
합기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기쇼마루 선생은 일본 전역의 수련자들이 함께 모여 교류할 수 있는 더 체계화된 정식 연무대회를 계획하게 됩니다.
1959년, 구 본부도장에서 열린 봄/가을 특별강습 마지막 날, 합기도 연무대회가 개최되어, 약 100여명의 지
도자와 400여명의 관중이 모였습니다.
이후 참가자 수가 늘어나면서 1960년, 장소를 요요기의 야마노홀로 옮겼고, 최대 1,6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는 이후 제1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로 불리게 됩니다.
■ 정식 대회의 형식 확립
1961년, 시부야 이세탄홀에서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가 개최되었으나, 그 해 창시자가 하와이에 방문 중이었기 때문에 정식 회차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 해에는 기쇼마루 선생(당시 본부 도장장)이 마지막 순서로 연무를 펼쳤습니다.
1962년, 아사히신문홀에서 열린 대회가 제2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로 공식 인정되었고,
1963년부터 1976년까지 열린 3~14회 연무대회는 히비야 공회당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1966년에 열린 제5회부터는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었으며,
다음해인 1967년에는 본부도장 신축 공사로 대회는 개최되지 않았습니다.
1969년, 우에시바 모리헤이 창시자가 별세하였고 우에시바 기쇼마루 선생이 도주를 계승했습니다, 그 해 열린 제7회 대회는 추모 대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으며, 7,0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 일본 무도관 시대: 매년 1만 명 이상 참여
1977년 제15회부터 지금까지 연무대회는 매년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1만 여명 이상의 참가자가 꾸준히 모이고 있습니다.
1979년, 우에시바 기쇼마루 2대 도주가 병으로 입원하게 되어 당시 28세였던 우에시바 모리테루 현 3대 도주가 부친을 대신해 마지막 순서로 연무를 펼쳤습니다.
■ 창시자 탄생 100주년과 역사적 기념행사 (1983년)
우에시바 모리헤이 창시자는 1883년 출생했으며, 1983년은 탄생 100주년인 해였습니다.
이 해 열린 제21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는 14,000여명의 참가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연무 후에는 신주쿠 게이오프라자 호텔에서 기념 파티가 열렸으며,
창시자의 음성 녹음과 슬라이드 쇼, 그리고 기념 부조 공개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부조는 현재 본부도장 1층에 전시되어 있으며, 많은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2대 도슈의 마지막 연무와 별세 (1997~1999)
1997년 여름, 우에시바 기쇼마루 2대 도주의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그 해 열린 제35회 대회가 그의 마지막 연무가 되었습니다.
1998년, 병원에서 잠시 퇴원하여 제36회 대회에 참석했으나, 마지막 연무는 우에시바 모리테루 현 3대 도주가 맡았습니다.
다음해인 1999년 1월, 우에시바 기쇼마루 2대 도주는 별세하였고, 같은 해 열린 제37회 대회는 그의 추모 연무대회로 진행되었습니다.
■ 코로나 시대와 대회의 변화 (2020~2022)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회는 전면 취소되었습니다.
2021년 제58회 대회는 도쿄의 방역 지침으로 인해 다카사키 아레나로 장소를 옮겨 약 200명의 제한되어 개최되었습니다. 이때는 지도자만 참가 가능, 각자 우케 최대 2명 동반, 연무 중에만 마스크 착용 해제 가능, 다다미 매트는 반복 소독하는 엄격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22년,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제59회 대회는 다시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으며, 4,0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다만 무관중으로 진행되었고, 도장별 참가 인원도 제한적이었습니다.
■ 2023년: 다시 모두가 모이는 60주년의 해
그리고 2023년, 마침내 방역 지침이 풀리고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전 세계의 합기도 수련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60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는 2023년 5월 27일, 다시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 2025년: 그리고 지금
뒤이은 2024년 제61회 연무대회 역시 일본 무도관에서 무사히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5년 제62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 역시 일본 무도관에서 5월 24일 토요일에 개최됩니다.
이번 연무대회에서는 윤대현 회장을 비롯하여 대한합기도회 회원 10명이 참가하게 됩니다.
이 뜻깊은 자리를 통해 합기도의 역사와 정신을 다시금 전세계 합기도인들과 함께 새기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기욤 에라드 홈페이지에 올라온 미하이 도브로카 5단이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글: 최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