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년 11월 20일, 동남풍을 장담하고 군막을 나서는 공명公明은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노숙과 함께 남병산으로 말을 달립니다. 노숙은 맘이 놓이지 않아 연신 혀를 찹니다. 정말 자신 있으십니까, 주도독周瑜께는 수급을 내놓는 군령장까지 써주셨지만, 아무래도 저는… 가느다란 미소만을 품은 량諸葛亮은 남병산南屛山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는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동남방에 붉은 흙으로 칠성단七星壇을 쌓도록 명합니다.
둘레 24장丈에 각 층고 3척尺의 3단으로 이루어져 총 9척 높이의 칠성단의 1층은 28수宿의 깃발을 꽂아 놓도록 합니다. 상商나라 말에서 주周나라 초에 개념이 형성되어 전국시대에 완전한 체계를 갖춘 3원28수三垣二十八宿를 기본구조로 하는 천문에서 동서남북은 창룡蒼龍, 백호白虎, 주조朱鳥, 현무玄武의 신화속 영물들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중국과는 살짝 다른 체계인가 봅니다.) 칠성단의 3단은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을 상징하여 1단에는 동방의 푸른 용에는 각角, 항亢, 저低, 방房, 심心, 미尾, 기箕의 일곱 깃발을 꽂고, 서방의 흰 호랑이에는 규奎, 누婁, 주胄, 묘昴, 필畢, 자紫, 삼參의 깃발을 꽂고, 남방의 붉은 새에는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의 깃발을, 북방의 검은 거북이에는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2단에는 황기黃旗 64기를 꽂아 주역의 64괘卦를 상징하였습니다. 3층 최상단에는 갑자甲子 길진吉辰을 맞추어 목욕제계를 한 공명이 도의道衣를 걸치고 신발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올라섰습니다.
1단에 세우는 군사 4인으로하여금 속발관束髮冠을 쓰고 검은 비단 도포에 제사때 입는 봉의鳳衣를 입히고 박대博帶라 불리는 허리띠를 두르고 붉은 신을 신기고 방거方据라는 네모난 소매를 걸고 닭깃으로 장식을 삼은 봉을 들고 풍신風神을 초대하도록 하고, 오른쪽에 선 또 한 사람에게는 북두칠성을 그린 호대號帶라는 명주실을 감은 장대를 들도록 시키고 뒤쪽의 군사에게는 보검을 들게 하고, 또 한 사람에게는 향로를 받들도록 하였습니다.
2단에 세우는 군사 24인에게는 정기旌旗, 보개寶蓋, 대극大戟, 장과長戈, 황모黃茅, 백월白鉞, 주기朱旗, 조현槽縣을 들고 사방을 둘러싸도록 일렀습니다. 공명은 기괴한 예식禮式을 올리는 자신을 당황한 얼굴로 빤히 들여다보는 노숙에게 분부합니다. 자경(노숙의 자)께서는 군중으로 돌아가시어 공근(주유의 자)의 조병을 도와주시오. 만약 제 기도에 응답이 없다 하더라도 괴이히 여기지 마시오. 돌아선 공명은 깃발을 들고 칠성단을 에워싼 군사들에게 군령을 내립니다. 누구도 단을 떠나서는 안 되며, 머리를 맞대고 잡담을 해서도 아니된다. 함부로 어지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내 명령을 거스르는 자는 머리를 자른다. 엄숙한 량의 무거운 겁박에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노숙은 동남풍을 불게 하기위해 기원의 예식을 치루려는 공명을 뒤로하고 말머리를 돌리면서도 혹시 흠모하는 군사 공명과의 마지막 조우가 아닐까 슬퍼하면서도 오림烏林의 적벽에 수천 척의 전함을 띄우고 자신의 모국 오吳를 위협하는 조조曹操의 선단을 불태우기 위한 군사작전을 감독하기 위해 고삐를 휘두르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방통의 기지로 조조의 수군의 전함을 모두 쇠사슬로 연결시켜 놓았고連環, 노장 황개의 고육苦肉으로 선단에 불을 놓을 준비는 이미 끝난 지 오래지만, 삭풍이 부는 겨울에 동남풍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화공火功을 쓴다면 불은 조조의 선단을 향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오의 선단을 향해 번질 것이니 동남풍 없이는 승산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어렵게 유비로부터 모셔온 군사 제갈량은 오늘 자신의 기도로 동남풍을 장담하고 있습니다.
량은 일찌기 스승으로부터 기문둔갑奇聞遁甲을 배워두기도 하였거니와 천문에 능해 11월 20일 밤에 삭풍에서 동남풍으로 풍향이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에는 '11월 해의 만남은 북방 현무에서 이루어지며 저녁에 벽수, 아침에 진수가 하늘의 정남正南에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11월 20일에는 한랭전선과 온단기단이 만나 습도가 상승하고 따라서 상당한 기압차로 기압골이 형성되어 강한 바람이 부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천문에 능한 이라면 상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강풍이 부는 상황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람의 방향이 동남풍이지 않으면 안되죠.
양자강揚子江 중류의 호북성湖北省 포기현蒲圻縣에 위치한 적벽은 아열대 습윤 계절풍 기후의 특성을 갖고 있어, 겨울철 북서쪽에서 이동하는 고기압이 지나가면 동남쪽으로부터 따뜻하고 습한 기단이 올라오면서 안개가 끼고 기압골이 형성되어 높은 확률로 동남풍이 불게 되는 지형적 특성을 띠게 됩니다. 양자강 중류의 임상臨湘, 악양岳陽, 화용華容 등 지역의 최근 수십 년간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아도 11월의 겨울에 동남풍이 불 확률은 20%를 넘습니다. 또한 '후한서後漢書'에는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208년 겨울 일식日蝕이 일어나 기압 배치가 바뀌면서 동남쪽 바다에서 양자강 쪽으로 아열대 기압이 북상해 동남풍이 강하게 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조조 진영이 위치한 적벽 서북쪽은 지대가 낮고 넓은 늪지대이고, 촉오 동맹군이 주둔하는 적벽 동남쪽은 상대적으로 해발이 높은 밀림지역입니다. 당연히 평소와는 달리 겨울에는 강북의 기후가 온화하고 강남은 냉한해져서 동남에서 서북으로 풍향이 바뀌는 대류현상을 기대할 수 있었겠죠. 강남을 기반으로 하는 오의 노숙과 주유, 그리고 오림의 기후를 미리 예습한 공명은 이러한 지역적 상식을 알고 있었겠지만, 중원에서 군사를 일으켜 형주에서 패잔병들을 강제로 끌고 내려오는 조조는 이 지역적 특성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수전에 능한 동오의 수군들은 도독 주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남풍만 불어 준다면 뱃머리에 대못을 박고 마른 갈대와 장작에 어유魚油를 적시고 인화성이 강한 유황과 염초를 깔고 청포 유단으로 덮고는 청룡아기靑龍牙旗를 꽂은 준비된 화선火船 20척이 달려나가 쇠사슬에 묶여 꼼짝달싹 못하는 조조군의 군함들을 활활 태워버릴 요량이었죠. 하지만 아직 동남풍은 불고 있지 않습니다.
의심많은 주유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명의 말이 틀렸나보오. 엄동설한에 어찌 동남풍이 불리오. 하지만 노숙은 공명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명의 장담이 틀릴 리 없습니다, 도독.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3경(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이 지나자 홀연히 바람소리가 잦아들더니 잠시의 적막이 흐르고, 드디어 깃의 끝자락이 서북쪽을 향해 나부끼기 시작합니다. 공명의 기원 예식이 효험이 있었구나. 주도독은 노장 황개의 화선을 앞장세워 총공격을 일갈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누구나 아시다시피 불을 보듯 뻔하고 잘 알려진 전개입니다.
80만의 조조 수군의 함선은 모두 불타 적벽 강바닥에 가라앉았고 패퇴한 조조를 화용도에서 잡아 목을 베어야 했었지만, 그놈의 의리 때문에 관우는… 하지만 관우가 화용에서 조조의 머리를 취하였다면 역사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은 무의미합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났으며, 역사에서 '만일'은 언급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죠. 제가 재미있고 궁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이미 동남풍이 불 것을 알고 있었던 공명이 어째서 그토록 공들여 하늘에 제의를 지냈을까…의 이유입니다. 기상학적 현상의 발생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주유와 노숙을 기만하기 위해서였나요? 스승에게 배운 기문둔갑술을 시험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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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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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산업디자인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 졸업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이과대학 과정수료 (물리학)
2003년 3월 - 2007년 11월 극동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개발부 부장
2007년 12월 - 2012년 12월 주식회사 엔폴드 대표 (일본 동경 소재)
현재 도서출판 접힘펼침 대표 (용인시 기흥구 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