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신문

동양무도의 철학적 기반(3) -大體와 小體-

DSC08145(1)

 

<大體小體>

宋代 철학자 주자(朱熹: 1130〜1200)에 의해 집대성 된 성리학(性理學)은 훗날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됐다. 이것은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 사단칠정논쟁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退溪 이황과 高峯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과 같은 조선선비들의 치열한 학문적 논쟁이 되기도 했다.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性)이 우주만물의 이치(理)와 같음(性卽理也)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성리학의 핵심인 존재론적 명제는 이기론(理氣論)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시름할 때 고민하는 주제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생이란 무언인가?를 놓고 볼 때 성리학적 理, 氣의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치(섭리, 필연, 불변), 도덕적 인격, 자기수양, 性, 太極(시간과 공간을 초월), 形而上

*물질(변화, 우연, 운동), 생리적 기능, 體, 陰陽(시간과 공간), 形而下

 

氣가 눈에 보이는 존재 그 자체이자 물질이라면 理는 궁극적 원리의 실체이자 우리가 구현해 나가야 하는 삶의 진정한 가치들이다. 요즘 시대가 아무리 물질 만능이라고는 하지만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과 먹고 자고 마시는 생리적인 것 즉, 氣적인 삶에만 치우친다면 죽기 직전에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삶의 가치는 바로 理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이러한 理를 통한 인격의 완성에 있다.

 

󰡔孟子󰡕 「告子上」 15章에는 이것에 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公都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혹은 大人이 되며 혹은 小人이 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大體를 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그 小體를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이다.” 公都子가 말하였다. “똑같은 사람인데, 혹은 그 大體를 따르며 혹은 그 小體를 따름은 어째서 입니까?”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귀와 눈의 기능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물건(外物)이 물건(耳目)과 사귀면 거기에 끌려갈 뿐이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것이니,

먼저 그 큰 것(心志)을 세운다면 그 작은 것(耳目)이 능히 빼앗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대인이 되는 이유일 뿐이다.”

 

대체는 理이고, 소체를 氣이다. 孟子는 눈과 귀는 생각 없이 外物에 쉽게 이끌리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하였다. 반면에 마음이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수양을 통해 耳目의 욕심을 제거하고 고요함을 유지한다면 외물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그 大體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理도 필요하고 氣도 필요하다.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 理와 氣가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이다. 이러한 딜레마적 의문에 대해 󰡔大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건(物)에는 本과 末이 있고 일에는 끝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道에 가까울 것이다.

 

대체가 근본이자 먼저요, 소체가 말단이자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근본인 대체를 먼저 닦으면 소체는 자연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志를 마음(心之官)으로 氣를 몸(耳目之官)으로 봤을 때 孟子는 “志는 氣의 장수이고 氣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이니, 志가 최고요 氣가 그 다음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몸은 잘 다스려서 大體를 따르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언제나 고요한 마음으로 맑은 정신을 잘 간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의 氣를 孟子는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 그 氣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정직함으로써 기르고 헤침이 없으면 天地의 사이에 꽉 차게 된다.”라고 하여 浩然之氣는 마음이 그 바름을 얻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지극히 크고 굳센 충만한 기운이다.

이것은 莊子가 말한 “눈으로 보는 것이 없고,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 없게 하여 네 정신이 네 몸을 지키면 몸이 장생(長生) 할 것이다. 네 안을 삼가고 네 밖을 막아라!”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그는 “志를 분산시키지 않고 사용하면 정신이 응결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志’는 곧 意念이고, 의념을 집중하면 곧 정신을 응결시키는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孟子가 제시한 대체(心)와 소체(氣)의 실천론은 유가(儒家)의 적극적 가치실현과 의리정신(義理精神)의 배양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그 특징을 한다.

 

*대체(大體) – 심지관(心之官), 사(思), 사즉득지(思卽得之), 대인(大人)

*소체(小體) – 이목지관(耳目之官), 폐어물(蔽於物), 불사즉부득(不思卽不得), 소인(小人)

 

무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는 일이다. 본래 志라는 한자를 보면 士(선비, 무사)와 心(마음)이 합쳐진 글자로서 선비/무사의 마음을 뜻한다. 풀이하자면 무사가 한 마음으로 뜻을 세워 용맹정진 한다는 것이다. 그 한 가지 마음과 뜻은 바로 대체, 義理(의리)이다. 무릇 무사란 이러한 대체를 따르는 삶을 통해 늘 지극히 크고 굳센 호연지기가 충만해야만 한다.

우리가 무도수련을 통해 욕심을 제거하고 자기극복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무도인 이라고 할 수 있다. 무도수련을 하면서 욕심이 커지고 오로지 소체를 따르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수련을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心身一如(몸과 마음은 하나)의 차원에서 무도는 몸(氣)을 먼저 성실히 닦아 올바른 마음/정신(大體, 理)을 구현하자는데 있다.

무도수양을 통해 공부가 높아질수록 삶에 집착하지 않고, 삶을 올바로 관조하며, 생명의 비본질적인 것들(소체)이 아닌 생명의 본질(대체)적인 것에 충실해진다. 진정한 도덕적 자기 주체로 서는 것이다. 겸손하게 하늘이 부여한 소중한 나의 삶, 생명을 온전히 하는 것,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어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군자이고 대인이다.

 

필자는 평소에 책, 논문들과 씨름하며 쌓인 火氣와 세상사의 시름을 아이키도(Aikido)를 통해 달래고 있다. 도장에 나가 선생님의 가름침 속에 선후배들과 함께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 덧 시름도 사그라들고 내안에 소체로 꽉 차있던 마음이 대체로 다시 채워져 있는 것 같아 행복해 진다. 이것이 나를 자꾸 도장으로 가게끔 만드는 원동력이다. 소체만 따르는 삶은 피곤하다. 대체를 추구하는 삶은 단순하다. 담박(淡泊)한 삶을 살면 비로소 삶에 소중한 것(들판의 핀 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소리, 경외감, 연민, 감사의 마음, 무도할 때 흘린 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삶,  이것이 의미있는 삶 아니겠는가.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25-34)

Exit mobile version